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로 시작된 나의 음악 이야기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소위 부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전축’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 부잣집이라 불릴 만한 친구집이나 큰집에 가면 거실이나 안방 한가운데 전축이 꼭 있었다. 당시 전축의 모습이라 하면 양 옆에 큼지막한 스피커가 놓여있고, 그 가운데는 유리장안에 엘피판과 카셋테잎을 넣을 수 있는 본체가 들어가 있는 형태였다.
아무튼 우리집에는 이런 전축이 없었다. 그래도 TV가 있었기에 음악을 들을 수는 있었는데 그 시절 나는 음악이 뭔지는 잘 몰랐지만 유독 어린이 동요대회나 가요톱텐에 나오는 노래들을 듣고 흥얼거리기를 좋아했었다.
봉천동에 이사한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가 가까웠던 때로 기억한다. 아빠는 자그마한 라디오 하나를 사 오셨다. 크기는 위에서 말한 전축의 크기에 30분의 1 크기나 되었을까? 아빠는 이 라디오를 안방의 장식장 위에 올려놓으며 말씀하셨다.
“여기 이 네모난 곳에 카세트 테이프를 넣으면 노래도 들을 수 있어~~ 신기하지?”
며칠 후 우리 세 자매는 아빠가 사 온 카세트 테이프 두 개를 얼른 꺼내보았다. 당시는 연예인들이 부르는 캐럴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아빠는 똑순이 캐럴과 심형래 캐럴 테이프를 사가지고 오셨다. 똑순이 캐럴테이프의 패키지에는 어린 김민희가 똑순이 머리를 묶은 채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붙어있었고, 심형래는 산타클로스 복장에 바보 분장을 하고 산타 봇다리를 짊어진 모습이었다.
우리는 너무 신기해하며 카셋테잎을 넣었다 뺐다 하며 버튼 누르기도 연신 해 보였다.
“뭐부터 들을까?”
“똑순이~~ 똑순이부터 들어보자!!” “그래~~”
40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A면 첫 곡이 기억이 난다. 실로폰으로 두들기는 경쾌한 전주가 시작되고 똑순이는 ‘창밖을 보라’를 아주 야무지게 목청껏 불렀다. 이렇게 나의 카세트 테이프 사랑은 시작되었다. 나는 추운 겨울 안방에서 이불을 깔고 누워 엎드린 채로 카세트 테이프가 데굴데굴 돌아가는 모양을 관찰하며 그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가까이 귀에 대고 듣곤 했다.
내 기억에 나의 상상력은 이 무렵이 최고조였는데 어떤 상상들을 했냐면...
내가 카셋테잎을 넣고 재생버튼을 누르는 순간 똑순이 김민희든 바보 심형래든 자신의 집에서 밥을 먹고 있다가 혹은 어딘가에 외출을 했다가도 바로 내 라디오 안으로 튀어 들어온다는 그런 상상이었다. 이 상상이 분명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런 상상을 꽤 오래도록 즐겼던 것 같다.
이처럼 겨울에는 캐럴 삼매경에 빠져 있다가 엄마가 사 온 교회성가곡 메들리 테이프도 즐겨 들었던 것 같다. 만화를 하는 시간이 아니면 우리 세 자매는 항상 라디오를 틀어놓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음악을 가까이하며 성장했다.
이후 철산동 아파트에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된 막내이모는 레드컬러의 멋스러운 에로이카 라디오를 사 왔다. 이 라디오는 몇 년 동안 우리가 즐겨 듣던 그 라디오와는 다르게 스피커의 성능이 매우 뛰어났다. 에로이카 라디오는 몸집은 작았는데 마치 작은 거인처럼 큰 소리를 내는데 내 귀에 꽤나 괜찮게 들렸다. 이모는 이 라디오와 함께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100선'이라는 테이프 박스까지 함께 구입하였다. 그리고 매일매일 다른 음악들을 틀어놓는 이모 덕분에 나의 클래식을 듣는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봄의 왈츠구나~?”
“이모~~ 그럼 다음 곡은 요한 시트라우스 왈츠로 들을까?”
“그래~~ 한번 또 다른 걸로 틀어봐~”
그 덕분에 나는 당시 어딜 가든 다른 친구들보다 클래식을 좀 아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또 고등학생이 되었을 90년대 초반에는 CD플레이어가 하나 더 얹어진 형태의 작은 아남전자 라디오를 이모부로부터 선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이모부가 사주신 내 생애 첫 CD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앨범이었다. CD로 음악을 듣게 된 그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뭔가 테이프보다 깔끔하고 날카로운 듯한 쨍한 그 음악은 당시 내 귀에는 매우 센세이셔널하게 들렸던 것 같다.
이렇게 여러 라디오들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우리 집에 찾아와 주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 웅장한 스테레오를 자랑하는 전축은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2003년에 결혼하고 얼마 있다가 남편이 말했다.
“본가에 있는 인켈 전축을 우리 집으로 가져올까 봐~부모님께서 사용하지 않으신다고 가져가라고 하시네?~”
“그 큰걸? 어디다 두게??”
“작은 방에 두지 뭐~”
그렇게 내 생애 그토록 갖고 싶었던 전축은 결혼 후 퇴물이 된 모습으로 우리 신혼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슬프게도 이 덩치 큰 전축은 인테리어효과도 하나 없이 초라하게 작은방 구석에 쳐박힌 신세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나는 이 전축으로 음악을 잘 듣지도 않았다. 그 시절에는 이미 컴퓨터에서 음악을 다운로드하여 들을 수 있었기에 전축에 굳이 테이프이나 CD를 넣어 음악을 들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퇴역군인과도 같은 이 전축은 당시 컴퓨터나 오디오 가전을 사들인다고 방송을 하며 동네를 돌아다니던 트럭 기사분에게 전화를 걸어 약간의 돈을 받고 팔리게 되었다.
그렇게나 갖고 싶던 전축이 내게 온 그 타이밍은 안타깝지만 너무 늦어버린 때였음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요즘 다시 레트로가 유행을 타며 LP판을 고가에 사고파는 때가 오니 남편이 말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 전축을 더 가지고 있어 볼걸 그랬다.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이러나저러나 가지고 있었어도 그 전축은 결국 팔리게 될 가여운 운명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