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표여도 난 괜찮아~

어리숙한 기억이 키운 단단한 마음

by 김상궁

국민학교 1학년 2학기에 무슨 기준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반장후보에 올랐었다. 당시 한 명씩 나와서 ‘내가 만약 반장이 된다면~’으로 시작하는 말들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내겐 너무 갑작스러웠다.
‘어떡하지? 내 차례가 되면 무슨 말을 하지?’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자~다음 마지막 후보~ 김정민이 나와서 말해보렴~?”
선생님은 맨 앞줄에 앉아있던 내게 허리를 숙여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셨다. 나는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앞으로 나갔다.

내 키가 작아서인지 뒤에 앉은 아이들은 고개를 빼꼼 빼서 보거나 목을 쭉 늘려 나를 향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그리고 교실 안은 선생님의 쉿~소리에 갑자기 조용해졌다. 내가 말을 해야 할 차례가 드디어 온 것이다.
“어... 그.... 나는... 반장이..... 되면....... 흑흑”
모두가 나를 주목하는 이 분위기를 나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괜찮다고 다독이시면서 제 자리로 들어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창피함을 넘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느덧 투표용지가 배부되었고 나는 일초의 고민도 없이 당당히 내 이름을 써냈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기 때문이다. 표를 모아 수를 센 후 예비반장이었던 친구와 도우미 친구가 후보들의 이름 밑에 바를 정 자를 써가며 개수를 하였다.
반장인 친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너 다섯 표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내 이름 밑에는 내가 쓴 내 표 한 장이 유일했다. 그렇게 반장에는 내 친구 민아가 뽑혔고 나는 쓸쓸한 한 표만을 받은 가여운 아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또 무슨 맘이 들어서였는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나 반장 됐어!!”
“어머~~~ 진짜???”
빨래를 개고 있던 엄마는 깜짝 놀라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 애들이 너를 그렇게나 많이 뽑아 줬어?”
‘아닌데.. 한표 받았는데.. 이제 다음 말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아뿔싸! 그런데 엄마가 바로 민아 아줌마에게 전화를 거는 게 아닌가?
“우리 정민이가 반장이 됐대 글쎄!”
전화기 너머로 민아 아줌마도 무척 놀란 모양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얼마 안 있다가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민아 아줌마였다.
“에이~~~~ 정민이 한 표 나왔대~반장은 우리 민아가 됐어. 정민이는 후보 발표 때도 많이 울었다고 하는데.. 정민이가 뭘 잘 못 안거 아니야?”
‘정말 얄미운 민아 아줌마다. 뭘 그렇게 꼬치꼬치 다 일러바치는 건지..'
“.. 아.. 그래? 어.. 그래 알았어~”
엄마는 조용히 전화를 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화산 폭발 직전의 엄마 얼굴이 너무 무서웠다.
“너 혹시 반장후보 오른 게 반장이 된 거라고 생각한 거니?”
엄마는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어..”
엄마는 깊은 한숨을 푹 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이런 나를 항상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심해도 하셨다. 나중에 들어 안 얘기지만 엄마는 교실에 화분을 갖다 놓아주신다던지 요즘으로 치면 어림도 없을 촌지도 선생님께 드리며 나에 대한 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담임선생님은 나를 학기 초보다는 덜 혼내시고 가끔은 교탁 앞으로 따로 불러서 연락장의 뉘앙스를 다시 설명해 주시곤 하셨다.


2학기 반장선거 이후 엄마는 한차례 더 학교에 찾아오셨는다. 키가 작은 나는 복도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엄마를 보며 너무 신이 나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간 삭개오처럼 책상 위로 올라가 펄쩍펄쩍 뛰며 엄마를 불렀다.
“야호~~ 우리 엄마다~~ 엄마~나 여깄 어!!”
그런데 그런 나를 바라보는 엄마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조용히 복도 끝으로 사라지시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지? 엄마는 내가 반갑지 않나?’
그러고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단단히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너는 왜 거기서 책상 위에 올라가니? 네가 애기야? 어? 다들 책상에 얌전히 앉아 있던데 엄마 봤다고 거기서 책상 위를 올라가면 어떡하니 응? 어휴... 진짜... 2학기가 되었는데도 왜 아직도 어린애처럼 구는 거니 응?”
나는 속으로 너무 야속했지만 겉으로는 울지 않았다.
‘반가워서 그런 건데.. 엄마 잘 보이라고 올라간 건데.. 책상 위에 올라가면 왜 안 되는 거지?’

이런 작고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나의 1학년 시절을 가득 채운 탓에 나는 어리숙하면서도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얼빠진 아이 취급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나는 하나도 부끄럽지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난번 에피소드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외갓집에서의 넘치고도 넘치는 사랑 덕분에 면면의 사건들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쉬이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태도는 이후 나의 자녀들을 양육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아주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그냥 아이가 스스로 해 볼 수 있게 내버려 둔다던지 여간 잘못한 실수가 아니라면 크게 반응하지 않는 등 아이들에게는 나름 관대한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궁금한 게 너무나 많은 호기심 천국 아이였다. 하지만 내가 살았던 시대가 그랬고 빡빡한 살림에 세 자녀를 키워야 하는 엄마에게도 나의 질문에 대답해 줄 만한 여건이 못되어 주었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엄마가 된 나는 옛날 우리 엄마와는 다르게 많은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생겨났고 아이들의 궁금증에 대답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자녀들은 유독 질문이 많은 아이로 자라났고 궁금한 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꼭 알고 넘어가야 하는 그런 태도를 갖게 것 같다.

결국 내가 겪었던 여러 실수와 경험들이 나의 자녀세대에 와서 큰 자양분이 되고 있는 걸 나는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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