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창경원 나들이

나만의 물개를 보다

by 김상궁

“정민아~오늘은 창경원에 동물들 보러 가자~”

엄마는 김밥을 싸느라 아침부터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아빠는 큰집 식구들과 함께 창경원으로 꽃놀이 갈 채비를 하였다. 어린 나는 엄마가 한껏 꾸며 아주 앙증맞기 그지없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의 모습이다. 연한 핑크빛의 보넷모자를 눌러쓰고 끈으로 턱밑 바짝 리본을 묶은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두 눈을 바라보며 나는 '빙긋' 웃어 보인다.

그렇게 공휴일 아침에 우리 가족을 비롯한 큰집의 대식구는 창경원으로 총출동하였다.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야 겨우 서울대학교 병원 바로 앞 창경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리바리 싸놓은 짐을 챙기랴 어린 나를 번갈아가며 업고 안고 어른들은 연신 떠들어대며 창경원까지 가는 길도 지루해하지 않는 모습이다.

만원 버스에서 겨우 내린 가족들은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창경원 홍화문 앞에서 길게 늘어선 대기줄에 끼어 섰다. 오늘 유독 창경원에 관람객이 많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얼마 전 뉴스에 물개를 비롯한 여러 동물친구들이 이곳 창경원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창경원에 들어가는 데만 거의 삼사십 분이 걸렸지만 같이 온 어른들의 표정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들은 돌아가며 나를 안고 나의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자신들도 마치 어린이가 된 듯 해발짝 웃는다. 그렇게 웃는 그들을 보면 나는 또 더 크게 웃어 보인다.


창경원 안에는 벚꽃이 한창이다. 곳곳에 심겨 있는 벚꽃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이들, 솜사탕을 파는 리어카 장수, 아이스크림을 직접 콘에 담아 파는 이들, 아이들이 끌고 다니는 장난감을 파는 사람들까지 창경원 안은 동물원이 아니라 사람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해 보였다.


“여기 돗자리를 필까요?”

엄마의 말에 어른들은 그러자며 짐들을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했다. 돗자리 두 장을 넓게 펼치니 모두가 안고도 너끈한 데다가 각자 싸 온 찬합들에는 김밥과 불고기에 과일이 더해져 모두의 배를 채우고도 남는 음식이 가득하였다.

“다들 여기 있으소~나는 정민이 데리고 물개 보러 갔다 올 테니~”

아빠는 사과를 잘근잘근 씹는 나를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람 많으니 조심히 다녀와요~”

“정민아~~ 물개 보고 오면 나중에 꼭 큰엄마한테 말해준나~~”

나는 “응~~~~~”하고 웃으며 아빠 품에 안겨 어디론가 향했다.

그 와중에 길가에 아이들 손에 들려쥔 솜사탕이 궁금했던 나는 아빠 어깨를 때리며

“저거~~~ 저거~~~~”라고 말했다.

“그래~~ 물개만 보고 오면 저 솜사탕 하나 사주께!”

아빠와 나는 물개가 있다는 위치에 서긴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빠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게 물개를 보여주고 싶었던지 나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말했다.

“정민아~아빠가 번쩍 들어 올릴 테니 물개 실컷 봐라~~ 알았지?”

나는 끄덕끄덕거리며 알았다는 표시를 해 보였다.

사실 아빠키도 워낙 작으니 뭐 나를 들어 올려봤자겠지만 그래도 아빠는 용을 쓰며 발 뒤꿈치를 들어 올리고 나를 머리 위로 목마를 태워 '휙휙' 들어 올렸다.

“정민아~~~ 저기 보이는 게 물개다~~ 봤나~?

“엉~~~~ 물개!! 물개애!!!!”

“옳지!! 그게 물개야 물개~~ 신기하지~~ 실컷 봐라~~~ 아빠가 계속 들어 올리고 있을게”

사람들도 나처럼 물개를 보았는지 연신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고 있었다.

아가였던 나는 그때 본 그게 분명 물개라고 확신하였고 나 또한 물개박수를 함께 쳐보였다.

아빠는 돌아오는 길에 나를 걷게 하며 손에 솜사탕을 들려주었다. 태어나 생전 처음 먹어보는 솜사탕의 맛은 잊을 수 없는 달콤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창경원에서의 하루는 오후 늦게나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문제는 그날 이후의 소동이었다.

“엄마~~~~ 물개~~ 무~~~ 울개!!!!”

“뭐라고?? 뭐가 물개야???”

엄마는 방에 앉아있다가 얼른 부엌으로 나왔다.

단칸방에 딸린 부엌 바닥에는 엄마가 틀어놓은 물이 대야 한 가득을 넘기고 폭포수처럼 넘치고 있었다.

“저거.. 저거 무울개!!!”

엄마는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지 뒤로 나자빠지며 큰 소리로 깔깔대고 웃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내가 그날 본건 물개가 아니라 바위 사이사이에서 흘러넘치던 '물폭포'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물개라고는 단 한 마리도 못 봤다. 그날 이후 나는 큰 집 싱크대에서 바가지에 물이 넘쳐도 ‘물개다’, 비가 와서 마당에 물이 하수구로 빠져 들어가는 걸 봐도 ‘물개다~~ 물개’, 냄비에서 물이 끓어 넘쳐도 '물개~'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날 나는 창경원의 물개는 보지 못했지만 더 소중한 것들을 보고 왔다. 그날 가족들의 웃음소리, 나를 이뻐라 해주던 온 가족의 정성, 물개를 보여주려고 나를 힘껏 들어 올리던 태산 같은 아빠의 목덜미, 난생처음 맛본 분홍빛 솜사탕의 푹신한 촉감이 아직도 내 마음 언저리에 몽글몽글 봄날의 꽃처럼 피어오르는 듯하다.


-이 이야기는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어릴 때 저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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