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활? 즐겁지 않은 생활!
1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있었던 이야기다.
‘여러분~내일 〈즐거운 생활〉 시간에는 만들기 할 거니까 요구르트병과 양파를 꼭 준비해 오세요! 만약 집에 양파가 없다면 요구르트병에 올려놓을 동그란 모양의 무엇이든 가져와도 됩니다~’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필을 집고 준비물들을 꾹꾹 눌러썼다. 연락장 준비물 칸에 내가 얌전히 써놓은 것들은 대략 요구르트병, 양파, 색종이, 풀, 가위 등이었다.
〈즐거운 생활〉 책 속에는 하얀색 프릴 블라우스를 입은 이쁜 얼굴의 여자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요구르트병 인형을 만들고 있었고 그 모습을 네 컷의 사진으로 설명과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책 속의 그 여자아이는 실수라고는 한 번도 안 해 본 듯 능숙한 가위질과 풀질로 양파에 눈. 코. 입을 오려 붙인 후 요구르트 몸통에 넥타이와 셔츠, 바지 등을 만들어 입혔다. 하지만 양파의 뿌리는 그대로 인형의 머리털이 되어버린 형상인 데다 가분수의 요구르트인형은 너무나 볼품없어 보였다.
‘나는 이것보다 훨씬 더 멋지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뭐?’
그렇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열었더니 요구르트 5개가 비닐에 쌓인 채로 얌전히 놓여 있어 얼른 비닐을 뜯고 빨대 없이 요구르트를 야무지게 쭉 들이켰다. 그리고 양파를 찾아보려는데 도무지 보이 지를 않아서 양파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느라 집안 여기저기를 뒤적거렸다. 하지만 양파와 비슷하며 동그란 그 무언가는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를 않는 거였다.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아~~ 두루마리 휴지를 이용하는 건 어떨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 천재였다. 두루마리휴지를 술술 풀어서 약간의 물을 묻혀주면 눈을 뭉치듯 둥그런 형태의 모양이 잡힐 거라는 기가 막힌 상상을 한 뒤, 나는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였다.
왜냐하면 엄마에게 말하면 당연히 그깟 양파 하나는 내어줄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색다른 인형을 만들어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은 고작 양파로만 머리를 만들겠지? 나는 휴지를 잔뜩 뭉쳐서 근사하고 멋진 요구르트인형을 만들어 낼 거야!’
그렇게 나는 종이로 감싸인 새 두루마리 휴지를 가방에 넣고 이것저것 준비물들을 챙겨 넣었다. 다음날 1교시는 <바른생활>이었고, 2교시가 <즐거운 생활> 시간이었다.
나는 야심 차게 준비한 준비물들을 책상에 꺼내놓았다. 아뿔싸!! 그런데 어제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나빼고 모든 아이들이 양파를 준비해 온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주눅이 들어버리면서 휴지를 책상 위에 꺼내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젯밤 나의 머릿속 상상과는 다르게 휴지가 얼굴이 되는 건 불가능할 거란 확신이 생긴 것이다.
그때 내 짝이 외쳤다.
‘선생님~~ 얘 좀 보세요~ 양파를 안 가져오고 휴지를 가져왔어요!’
그때 그 시절 친구들은 어쩌면 그렇게 선생님께 고자질하거나 뭔가를 일러바치는 일에 충성스러웠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뾰족구두를 신고 내 앞으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어오셨다.
‘정민이 너 왜 양파를 안 가져왔어? 이 휴지는 뭐야?’
어쩐 일인지 선생님은 차분하고 따뜻한 말투로 내게 말을 건네셨다.
‘.... 휴지를.. 말아서 물에 적시면.. 어.. 그러면.. 음.. 동그랗게 뭉.. 쳐. 서.. 얼굴모양으로 만들 수 있을 거.같..아서요..’
나는 한 번만 더 말을 걸면 울어버리려고 울기 위해 목구멍에 가득 힘을 주고 있었다.
선생님은 한참을 내 준비물을 보시더니
‘그래~그럼 한번 해봐!’
나는 엄마가 나를 혼낼 때 ‘잘~~ 한다’ 라며 말하는 역설적인 화법이 생각나면서, 이 말이 도대체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선생님은 좁아터진 교실의 책상 사이사이를 비집고 걸어 다니며 아이들의 만들기를 도와주시느라 내가 만드는 건 관심도 없어 보였다. 하긴 77명의 요구르트병 위의 양파대가리를 하나하나 돌보아 줄 여력이 선생님에게는 없어 보였다.
모두가 자신의 인형을 만드느라 바빠지자 나는 신명 나게 휴지를 술술 풀어 수돗가에서 받아온 물을 적셔 계속해서 뭉쳐댔다.
'동그래져라~~~제발 눈덩이처럼 동그래져라!!!'
하지만 슬프게도 휴지는 점점 찢어지고 툭툭 떨어지며 동그란 얼굴모양은 커녕 변기속에서 물에 녹아져버리는 휴지처럼 축축 쳐졌다. 몸통에는 색종이로 리본도 잘라 붙이고 팔도 붙여가며 나름의 몸뚱아리는 완성했으나 그놈의 얼굴은 도통 만들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냥 양파를 가져올걸.. 엄마한테 말할걸.. 나도 양파만 있었다면 기가 막힌 양파 얼굴을 만들 자신이 있었는데...’
결국 나의 미술 첫 작품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내 작품은 뒷줄에 앉은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는데 큰 일조를 하였다. 그 뒤로 한동안은 양파만 보면 두루마리 휴지가 생각나고 두루마리 휴지만 보면 양파가 생각나는 통에 이 날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박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