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엄마의 얼굴
나의 어린 시절, 엄마는 매우 무서운 얼굴에 목청이 큰 여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리를 많이 질렀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우리를 매질하는 데는 선수였다. 어느 날은 빗자루, 또 어떤 날은 파리채를 손에 잡고 스윙을 하면 휭휭~~ 무서운 소리가 나는데 나는 엄마가 ‘자신의 어깨가 얼마나 강한지’ 매번 스스로 테스트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엄마는 공부를 안 해도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혼내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서 나와 동생들은 신나게 집에서 놀다가도 엄마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책상에 정자세로 앉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한 나는 집에서 엄마에게 과외를 받았다. 엄마는 받아쓰기를 불러주고 쓰게 한 뒤 직접 채점을 하기도 하였으며 집으로 배달되어 오던 시험지를 매일매일 한 장씩 풀게 하였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철저하게 관리하지는 않았고, 엄마의 컨디션에 따라 공부량이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였다.
나는 특히 산수를 매우 어려워했는데 이것이 엄마와 나의 관계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1과 2를 더하는 단순 계산은 문제가 아니었다. 숫자가 늘어나고 두 자리 숫자끼리 더해서 십의 자리가 바뀌는 순간부터 내 영혼은 탈곡기안의 낱알들처럼 탈탈 털리기 시작하였다. 엄마는 가르치는 데는 분명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저 엄마의 첫 제자로 가엾은 어린양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더하기는 그냥저냥 해볼 만했지만 문제는 바로 빼기였다.
적은 수에서 큰 수를 빼기 위해 앞자리에서 10을 가져와야 한다는 건 7살이던 내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던 지점이었다.
‘너 바보지? 이것도 못해? 10을 가져오라고 몇 번을 얘기해~~’
엄마는 기차를 10줄은 삶아 먹은 듯한 큰 소리로 나에게 답을 재촉해 댔다.
나는 벌벌 떨며 겨우 10의 자리를 가져와 숫자를 만들고 일의 자리 빼기까지는 해냈지만 대체 왜 앞의 자리가 한자리가 줄어드는지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수에 대한 개념도 떨어지는 데다가 엄마의 다그치는 소리가 나를 더 주눅 들게 했던 것이다.
‘너 이거 다 못하면 내일 학교 못가!!’
엄마는 으름장을 놓으며 공책의 네 쪽 분량에 엄마가 직접 출제한 뺄셈 문제들을 다 풀게 했다. 그때의 시간은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야 해요’라는 9시 울림이 울리는 9시 정각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정말 학교를 못 가게 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 그렇게 울면서 겨우겨우 문제를 다 풀고 나니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목구멍에 ‘꺼이꺼이’ 숨넘어가는 소리가 계속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하였다. 당시 우리집은 장롱 쪽으로 머리를 두고 반듯하게 누워 벽면을 보면 달력이 걸려있고 그 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명화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은 나중에 알았지만, 르누아르의 ‘두 자매’였다. 하지만 나는 그 그림 속 왼쪽에 있던 여인이 엄마이고 그 옆에 있는 아이는 딸처럼 보였다. 난 언제나 자려고 누우면 그 그림을 10분 이상 감상하다가 잠이 들곤 하였는데 나의 상상은 그 그림 속 여인이 나의 엄마이길 바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꽃밭을 배경으로 멋진 레드빛 모자를 쓴 온화한 얼굴에 분홍빛 볼, 옅은 미소에 차분한 색감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베개를 베고 누운 나를 항상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그림 속 엄마는 얼마나 착하고 부드럽게 말할까? 소리를 지르지 않고 뺄셈의 10의 자리를 친절하게 말해주는 엄마가 분명할 거야!’
혹은 ‘아니면 저 그림 속 엄마와 딸이 우리 엄마와 나는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방금 전까지 나를 호되게 혼내던 엄마는 이미 사라지고 없고 그림 속 잔잔한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나의 엄마라고 확신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한참 흘러 어른이 된 후 엄마에게 그 그림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그때 방에 걸려 있던 그 액자 어디서 난 거유?’
‘아~~ 그거 누가 이사 왔다고 집들이 선물로 준거였어. 그 그림이 기억나니?’
‘그럼~~ 생생하게 기억나지. 그 그림이 르누아르의 ’두 자매‘라는 아주 유명한 명화예요. 명화~! 누군지 모르지만 그 가난하던 시절 심미안이 있던 분이네? 그 르누아르 그림 덕에 나는 그 좁은 집에서도 호사를 누리면서 잠이 들었자누~’
엄마는 더 이상 예전의 호랑이 엄마가 아니다. 이빨과 발톱이 다 빠진 호랑이처럼 이제는 그저 옛날 얘기를 하면 생글생글 웃으며 듣기만 하신다. 이제야 엄마의 얼굴이 르누아르의 그림 속 그 여인이 되어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