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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y Oct 03. 2016

빵빵한 배

뿌리가 되어 줄 기준과 여유


더듬더듬. 글의 시작은 늘 그렇다. 두어 번 썼다 지웠다 하고 나서 내 분수를 깨닫는다. 난 시적이고 예쁜 말은 잘 만들어낼 줄 모른다. 출근하는 휴일이라 남들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일요일을 보내야 하지만 내가 보는 달력에도 떡하니 쓰여 있으니 휴일의 기분을 조금은 즐기고만 싶다. 


어린 나이에 아픈 경험을 하게 되면서, 나는 그런 상황을 만든 내 자신이 무척 싫었던 것 같다. 뚜렷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가진 어떠한 문제적인 성향이 나를 아프고 힘겨운 상황으로 빠트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심리학적 용어가 그때의 나를 속시원히 정의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1년은 무작정 본연의 내 그런 성향에 상반된 사람이 되려고 했었던 것 같다. 고분고분하고 물렀던 나는 오기를 부렸고, 쉬이 타인을 의지했던 나는 홀로서기에 모든 것을 집중했으며, 할머니 마냥 보수적이었던 나는 세상없는 쿨한 여자가 되어보았다. 


이전과는 다른 여자로 살 던 어느 날 문득 돌아본 나는 예쁘지가 않았다. 행실 가벼운 고집쟁이였고, 내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으며, 내가 제일 아파 눈앞에 보이는 다른 이의 아픔도 안아주지 않았다. 1년 동안 굳게 믿고 쌓았던 내 세계가 또 한 번 무너졌다. 이제 나 어쩌나, 오갈 때를 몰라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발전적이었다고 믿었던 1년이 실은 질풍노도의 시기였다는 걸 깨닫던 날 기도도 할 줄 모르는 종교 바보인 나는 혼자 절에 갔었다. 두툼한 방석에 얼굴을 박고 10초 20초, 눈동냥으로 배웠던 절하는 모양새를 흉내 내며 계속 절을 하다가 훌찌럭-훌찌럭 울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결코 변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바보 같다 피했던 과거의 나를 만들었고 내 근본은 거기 있었다. 그러면서 타인의 시야에 서있는 달라진 내 모습에 자신이 없고 불안해 내 가치를 알아줄 능력이 없는 사람 앞에서 마저도 어쩔 줄 몰라하며 눈치를 봤었던 것 같다. 1년간의 나는 여유라고는 없는 옹졸한 사람이었다.


마친 저녁 약속 장소 근처에 계시던 아빠를 우연히 만나 카페에 앉아 티 한잔을 번갈아 홀짝이며 수다를 떨었다. 귀신같이 알아차리신 아빠가 해주신 말씀이 오늘따라 글로 쓴 것처럼 마음에 남는다. 


"너는 잘되고 싶고, 잘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게 많은 욕심이 많은 아이다. 그게 너를 발전하게도 할 수 있지만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할 거야. 모든 결정은 행복을 최우선으로 두고 기준과 중심을 자꾸 바로 잡아야 한다. 힘들었던 때의 기분을 잊어버리고 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니 그 아픔을 이겨내고 그때를 자꾸 되새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현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가 없고 너는 행복해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부리는 모든 욕심은 너의 값어치를 떨어트릴 거야. 실제로 많은 것은 손에 쥐려는 욕심보다 행복한 마음에서 우러난 노력과 감사하는 태도에서 이루어진다. 아빠가 있어 줄 거야. 걱정하지 마라." 


일전에 될 듯 말 듯 탐이 나던 큰 영업건이 있어 오기를 부리고 성사시키려 전전긍긍하던 내게 아빠가 "아니다 싶을 땐 과감하게 놓을 줄도 알아야 된다" 툭 한마디 하신 날 나는 며칠 만에 마음 편한 잠을 잤었다. (지금도 그 상반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행복한 마음을 근간으로 노력할 때에만 내가 원하는 삶으로 가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주어진 내 것에 깊이 감사하는 것, 내 것이 아닌 것에는 욕심부리지 않는 것, 내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게 해줄 것이다. 온전히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내가 정말 즐거워하는 취미, 내가 예뻐하는 옷, 내가 맛있어하는 음식, 내가 도와주고 싶은 사람, 내가 어울리고 싶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갖고 태어난 내 성향.. 다른 이의 눈에 좋게 비치 고자하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나를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아빠랑 헤어질 때 "감사해 아빠" 빵빵하게 나온 욕심쟁이 배를 톡톡 "조심히 들어가요" 인사를 하고 집에 오며 잃었던 근본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훌륭한 가이드를 주는 아버지가 계시고, 실은 아팠던 때 보다 훨씬 나아진 지금이 있으며, 감사하는 마음과 깨끗한 노력만 있다면 어려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흔들리던 내 중심을 든든히 지켜 줄 기준이 생겼다. 어떠한 결정도 내 마음의 의식과 스스로에 대한 신뢰 없이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나를 지켜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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