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사랑에 빠지는 방법
나에게는 강박이 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해내야 한다는 강박.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합하면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총 20년, 그중 영어로 교육을 받은 건 8년, 그중에서도 영미권에서 보낸 시간은 마지막 1년뿐이다. 그리고 영어가 주 사용 어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나는 직업상 영어를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과 사용하지 않으면 영어감각이 무뎌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늘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자유시간조차 미드만 보면서 화면으로 보는 허상의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처럼 사고하고 말하려고 했다. 나의 그 강박이 깨진 것은 마지막 1년, 마침내 영미권 나라에 갔을 때이다.
내가 1년 머물렀던 LA라는 도시가 특이하기도 했다. 그 도시는 영미권이었지만 영어만 쓰지 않았고, 내가 잠시 다녀가는 관광객인지, 평생 살기 위해 이민을 온 사람인지, 아님 그곳에 원래 살던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가는, 그리고 그만큼 나에게 관심도 없는 도시였다. 그곳에서 나는 아직도 a, the의 사용법을 모르고 과거형 질문에 동사의 시제를 헷갈리는 (did you ate?)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언어를 나를 증명해 내는 수단이 아닌 타인과 소통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LA에서의 1년은 영어와 좀 더 자연스러운 관계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영어와 애증의 관계를 완벽히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이 책의 작가 줌파 라히리는 런던의 뱅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이민국의 언어인 영어로 쓴 책으로 퓰리처상까지 수상한다. 그리고 그는 온전히 이탈리아어에 매료되어 이탈리아로 간다. 자신 안의 빈 공간에 부모님의 언어도, 자신의 언어도 아닌 전혀 관계가 없는 나라의 언어를 자리 잡게 하고 싶은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내게는 없었던 충동이어서 책을 읽을 때 작가에게 왜 그런 열망이 생겼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이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지고,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차로 한 시간도 더 넘게 떨어진 곳에 수업을 받으러 다니고, 끝내는 로마로 이주하는 그 애달픈 사랑과, 어느 정도 이상 이탈리아어를 구사하게 되었는데도 끊임없이 부딪히는 벽과 마주하는 좌절을 이야기한다.
라히리는 왜 이탈리아어였는지에 대해 답하기보다는 자신이 구사하게 된 살아있는 언어에 대해, 글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언어인 모국어와 자신이 완벽히 구사하는 영어 사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대치점에 있는 이탈리아어 사이의 균형이 아슬아슬하지만 삼각형을 이룬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나와 다른 욕망을 가진 타인이 나와 동일한 이방인으로서의 감각이 있음을 받아들인다.
심지어 이 책도 이탈리아어로 쓰였다고 한다. 이민 2세대로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영어로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다른 언어의 걸음마부터 시작하는 건 내가 영어를 원어민처럼 해내야 한다는 강박과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언어라는 한정된 수단으로 나를 온전히 표현하기 지독히도 어려운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추신. 제목을 직역하면 '다른 말로' (In Altre Perole, In Other Words)인데 이 책은 제목으로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라는 문장을 발췌했다. 그 문장은 이 책의 내용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너무 책의 내용을 다 알려주지도 않는 괜찮은 문장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나의 관심을 끄는 데는 탁월한 마케팅적인 선택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