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또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그가 지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

by 도리

예전에 신형철 평론가가 ‘문학 이야기’라는 팟캐스트에서 가상의 캐릭터 박물관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책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지하 인간이 박물관 지하실에 배치된다면 그보다 적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팟캐스트를 들으며 그 지하 인간이 (이름조차 나오지 않아 ‘지하 인간’으로 불리지만) 어떤 사람이기에 박물관에서조차 사람이 붐비는 1층이나 한산하지만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상위층 대신 지하에 배치되어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다. 지하 인간은 스스로 지하실에 들어가기로 선택한 사람이지만 그를 지하실에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가 하고 말이다.


이 지하 인간은 20년 간을 스스로 고립시켜 지하실에 살면서 끊임없이 욕망과 고통, 인간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간다. 책의 제1부 ‘지하실’에서는 인간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가상의 반박에 반박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거침없는 투쟁의 의지를 보인다. 1부를 읽고나면 지하 인간의 삶이 도대체 어떠했길래 그토록 고통에 찬사를 보낼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제2부 ‘진눈깨비 때문에’에서는 남들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1부를 읽고 상상한 모습과 사뭇 다르다. 이 지하 인간은 지극히 소심하고 예민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견뎌내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에 소속되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평범하다 못해 존재감이 없는 한 명의 무명인일 뿐이다.


그래서 2부는 1부에 드러나는 그의 논제에 설득력을 더하기보다는 지하 인간이 한 사람으로서 어떠한 사람인지 더 명확한 청사진을 그려준다. 그가 스스로 고백하는 그의 실체는 너무 적나라하게 추하고 악하며 보잘것없어 이런 우스꽝스러운 희극도 없다는 생각과 측은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끝까지 파헤쳐진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하에 틀어박혀서 수기나 쓰는 지하 인간과 그저 삶을 살아내는 내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순간순간의 후회와 일정량의 자학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결국 지하 인간은 지하에 있어야 하겠다. 거기서 그가 어두움의 동반자가 되어주고 지반이 되어주어야 인간이라는 건물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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