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哲學)인가? 철학(鐵學)인가? 6
흄은 로크의 논의에 좀더 충실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경험과 관찰이라는 과학적 지식의 확실성을 논리적으로 논증코자 하였고, 이러한 논리를 가능케하는 경험적 인간상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그는 일단 경험으로 채득된 지식중에서 확실하다고 할만한 것들과 불확실한 것들을 구분하였다.
가령 “누구와 누구가 닮았다”라는 등의 유사관계는 확실하지만, “누구와 누구가 똑같다”라는 동일관계는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무엇 때문에 무엇이 발생하였다”는 인과관계 또한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가령 “나무를 비벼대면 불이 붙는다”라는 인과관계는, 사실상 불이 붙을 수도 있고 붙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서, 불이 붙는 경험을 많이 하다보니 습관적인 관념으로 그와 같은 인과관계를 형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무엇과 무엇이 똑같다”라든가, “무엇 때문에 무엇이 발생하였다”라는 등의 관계에 대한 관념은 단지 습관적으로 그렇게 인지해버린 지각의 다발일 뿐이라고 한다.
좀더 심도 깊게 살피자면, 무엇을 지각하여 생긴 것이 인상이고, 그러한 인상의 기억이나 결합으로 만들어 진 것이 관념인데, 지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 풀어 설명할 때, 위에서 살펴본 관계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인식주체인 ‘나’를 포함한 존재들 모두가 위와 같은 인상과 관념들의 집합체, 즉 지각의 다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논리를 펴다보니, 인식과 대상의 일치라는 진리개념과 인과관계라는 과학적 방법이 모두 불확실한 것이 되어 버렸고, 아울러 인식주체마저도 확실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각의 다발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로써 인식주체가 경험과 관찰로써 진리에 도달할 것이라는 경험론의 논의가 그 자체로써 붕괴되어 버렸다.
이에 흄은 지독한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그 결과 그는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리냐가 아니라 무엇이 진리라고 믿느냐”라고 한다. 즉,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어떤 것을 진리라고 믿게 되면 최소한 그렇게 믿은 자에게는 그것이 진리인 것과 같은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