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哲學)인가? 철학(鐵學)인가? 7
칸트는 대륙의 합리주의와 영미의 경험주의를 아울러 근대철학의 지반을 공고히 하였던 철학자이다. 그는 근대철학의 자체모순으로 발생한 주체개념과 진리개념을 새롭게 다졌고, 그 업적으로 인하여 근대 이후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칸트는 진리에 대해서 전혀 다른 접근방법을 취했다.
왜냐하면, 진리를 인식된 대상과 실제 대상과의 일치라고 본다면, 그것이 무엇 때문에 일치하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들이 뒤따를 수 밖에 없고, 결국 그러한 인식을 참되다고 할 만한 아무런 담보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름으로써, 인식, 경험, 과학으로는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사물 그 자체와 이에 대한 사람의 인식(현상)을 구별하였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사과로 추정되는 과일을 보고 그것을 사과로 인식하였다면, 실제로는 그것이 진짜 사과인지 오랜지인지 정구공인지를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되었든 그 사람의 인식 속에서는 그것이 사과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인식은 그것이 참되다고 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사물 그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다만 인식으로 받아들여진 현상을 그 사물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에 대한 논의는 그것이 진짜 사과이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사과로 인식한다면 그것을 사과로 받아들이면 될 뿐이고, 따라서 무엇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사과로 인식하는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판단형식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즉, 진리는 대상 그 자체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사과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과인 것이고, 따라서 진리는 그것을 사과라고 판단한 사람들의 판단형식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판단을 두 가지 형식으로 정리했다. 하나는 분석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종합판단이다. 분석판단은 주어 자체에 술어가 포함된 것, 예를 들면 미인은 아름답다와 같은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은 주어 속에 술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옳은 반면에 이것으로 인하여 새롭게 얻을 지식은 없다. 종합판단은 주어 자체에 술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예를 들면 미인은 키가 크다와 같은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은 주어 속에 술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진 판단이며, 항상 옳은 것인지는 불투명한 반면에 이것으로 인하여 새로운 지식(미인은 키가 크다라는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다.
그래서 그는 종합판단처럼 새로운 지식을 추가해 주면서도, 분석판단처럼 항상 옳은 판단형식이 있다면, 그러한 판단형식이야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에 도달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판단형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즉, 그는 그러한 판단형식을 선험적 종합판단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예를 들면 ‘삼각형은 내각의 합이 180도다’는 판단은 주어에 술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종합판단이지만, 이것은 분석판단처럼 항상 옳은 판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칸트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개념을 고안함으로써, 진리의 가능성을 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