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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손락천 Jan 25. 2017

용기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진실'이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희망'과 '그것이 진실일 것이라고 믿는 신념'이 있는 것이다



  1993년 법대에 입학하면서 법을 배우게 되었고, 2000년 10월 한일건설 법무팀에 입사하면서부터 법계통의 일을 하였다. 그러고 보면 그럭저럭 법과 연관을 맺어 온 것이 대략 17년이다.
 
  어찌 되었던 짧지 않은 세월을 법과 함께 한 것이다. 그것도 이름을 내건 법조인이 아닌 야인으로서 말이다
 
  물론 여러 번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절들을 지나오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것이 있다. 적어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선 좀처럼 무흠한 진실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 마음먹고 사실관계를 왜곡시키고자 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뿐만 아니라 다툼이 발생하게 되면 누구든지 그러한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비록 각자가 각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도록 사실을 왜곡시키지만, 그것 자체에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억울함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들 각자가 각자의 정당함과 억울함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 각자가 각자의 이해대로 이런저런 주장을 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하기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는 '진실'이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희망'과 '그것이 진실일 것이라고 믿는 신념'이 있을 뿐이고, 이에 추종하는 여러 갈래의 생각이 있을 뿐이라고 본다
 
  이쯤이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라고, '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최소한 사람들 간의 다툼에 있어서는 이기고 짐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정의이냐'라는 문제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있을 때는 무흠한 진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다툼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무기력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용서가 필요한 것이다



그냥, 내 입장에서의 사랑, 이해, 용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사랑, 이해, 용서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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