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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손락천 Jan 31. 2017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아빠가 한 수 배웠다

속으로 생각했다. 딸을 가졌다는 것은 피붙이 하나를 가졌다는 것이 아니구나. 거울을 가졌다는 것이구나. 제대로 나를 비추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거울을 말이다.



  미적거리는 도로에서 연신 밀려 내려온 안경을 검지로 밀어 올렸다. 명절 귀갓길마다 경험하는 일이었지만, 막힌 도로는 아직까지도 익숙할 수가 없다. 그래서 비록 입으로는 짜증을 쏟아내지 않았지만, 태도로 짜증을 쏟아냈었나 보다.    


  옆에서 잠을 자는 듯했던 딸아이가 실눈으로 말했다.    


  “아빠. 다 보이거든. 아빠도 짜증 나겠지만, 우리도 차를 몰고 나와 다른 운전자들을 짜증 나게 만들고 있거든.”    


  순간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초등학생인 딸아이보다 못한 성정인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 내가 아직 덜 살아서 그런 거야. 딸이 이해해.”    




  딸은 초등학교 1학년이다. 덜 산 것으로 치면 딸이 훨씬 덜 산 것일 텐데,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역시 삶이란 산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아무리 어른이라 하더라도 아이에게서 배울 것이 있을 텐데,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에게서 배워야 할 이해와 감성을 애써 무시하려 하였던 것일까?    




  빠아앙. 갑자기 뒤에 있던 다른 차선의 차량이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향해 경적을 날렸다. 나는 순간 발끈하려다가 피식 웃으며 속으로 대꾸했다.    


  “거 좀 유하게 삽시다.”    


  그리고 그 순간 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아빠니깐, 어차피 길에 묶인 사람이니깐, 어차피 싫어도 함께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니깐, 그래서 참아준 것이란 걸.    


  그래. 딸아. 나를 참고 있었구나. 너를 향한 짜증이 아니었지만, 그게 불편했을 텐데 말이야. 어차피 피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네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어야 하는 게 아빠일 텐데 말이야.    


  나는 “요 녀석!”하고는 딸의 볼을 살짝 터치했다. 나보다 훨씬 잘 참는 딸에게 부끄러워 서였다. 그리고 그런 딸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였다.    




  이후에도 도로가 막혔고, 그래서 불과 경산에서 태전동의 집까지 가는 데에 두 시간이나 걸렸지만, 계속 웃음만 피식거렸다. 왜냐하면 같은 상황도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아닌 어린 딸을 통해 직접 체득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딸을 가졌다는 것은 피붙이 하나를 가졌다는 것이 아니구나. 거울을 가졌다는 것이구나. 제대로 나를 비추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거울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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