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哲學)인가? 철학(鐵學)인가? 20
오컴의 쫓김은 다름과 항변을 허락하지 않는 오늘날의 현실과 닮았고, 그래서 어쩌면 여기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모든 이들의 입장이 크든 작든 오컴의 쫓김과 닮은 것일 수가 있다.
거친 보편 논쟁에서 오컴은 [감각 세계에서는 보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까마귀, 까치, 비둘기, 독수리 등의 개별적인 새는 존재하지만, 보편자로서의 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보편자로서의 새는 까마귀, 까치, 비둘기, 독수리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들을 모아, 이를 개념적으로 정리한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감각 세계에서는 개별자와 개념적 보편자가 있을 뿐, 실재의 보편자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컴은 이러한 원리가 오직 감각 세계에만 적용될 뿐이라고 한다. 즉, 감각 세계는 인식 주체가 경험을 통하여 채득 할 수 있는 세계이지만, 형이상학적인 세계는 인식 주체가 경험을 통하여 체득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감각 세계에서 보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형이상학적인 세계에서조차 보편자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환언하면, 신 등의 존재는 사람이 자신의 인식이나 경험을 통하여 채득 하는 지식이 아니므로, 신에 대한 믿음 등은 이성적 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성적으로 본다면 보편자에 대한 믿음은 그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기 때문에, 감각 세계를 아우르는 이성적 논리를 가지고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보편적 것들의 존재 여부를 재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각 세계는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채득 되는 합리적 세계이고, 신의 세계는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채득 할 수 없는 합리적이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에, 그것은 서로 다른 원리에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한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오컴의 이러한 생각, 즉 믿음은 불합리한 것이라는 오컴의 사유는, 어찌하여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되고 진리를 얻게 되는가에 대한 신비로움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라고 여긴다.
어찌 되었든 이 때문에 오컴은 감각 세계와 믿음의 세계, 신학과 철학, 종교와 현실정치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오컴은 현실 정치에 깊숙이 참여했던 교황청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러한 쫓김은 다름과 항변을 허락하지 않는 오늘날의 현실과 닮았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모든 이들의 입장이 크든 작든 오컴의 쫓김과 닮은 것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