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언어학, 낭만 앞에 선 인문학

인문학을 묻다 7

by 시인 손락천
랑그[langue]에 따라 사유의 방식이 달라진다?



사회적 언어 체계를 랑그라 하고, 개별적 언어 발화를 파롤이라 한다. 그리고 구조주의 언어학은 랑그에 따라 그 랑그에 묶인 이들의 사유방식이 정형화된다고 보았다.


기본적으로 단어는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사회적 약속에 따라 특정 단어가 특정 대상과 동일화될 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러한 단어는 사회적 약속에 따라 일정한 규칙으로 조합되어 그 대상에 대한 이해와 의미로 형상화된다.


가령, [꽃]은 식물이 종족의 생육을 위하여 피운 화려하고 치명적인 유혹의 생식기라고 약속된 단어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어는 각 랑그의 규칙에 따라 [꽃이 아름답다] 라거나 [A flower is beautiful]이라고 조합되어 구체적인 의미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단어와 조합의 랑그는 그 랑그에 속한 이들의 사유방식을 정서에 영향을 미친다. 즉, [꽃이 아름답다]라는 랑그에 속한 이들은 대상을 형용으로 받아들인 반면에, [A flower is beautiful]이라는 랑그에 속한 이들은 대상과 속성을 같은 가치의 존재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말하자면 전자는 꽃에 대한 인상에, 후자는 꽃과 아름다움의 각 존재에 중점을 두어 [꽃이 아름답다]는 의미를 형성함으로써, 각각의 다른 이해와 정서, 그리고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사유 방식의 다름이 사상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대비는 [나는 높다], [나는 없다], [나는 사람이다]와 [I am high], [I do not exist], [I am human] 등, 서로 다른 랑그에 속한 언어 영역 전반에서 나타난다.


즉, 형용사와 동사 모두가 술어가 되는 랑그에서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도 굳이 존재에 집착하지 않는, 초월과 판타지 그리고 무아에 대한 사상과 정서가 발현되고, 반면에 동사만이 술어가 되는 랑그에서는 동사 사이에 선 각 존재의 우선적 이해를 전제로, 주체와 대상 그리고 양자 간의 인식에 대한 사상과 정서가 발현된다.


그래서 구조주의 언어학은 각 랑그가 그에 속한 사회의 보편화된 이해와 정서, 그리고 문화와 사상을 형성한다고 하여, 결국 그 사회의 주체가 존재하고 사유하는 방식과 진리개념을 형성케 하였다고 보았다(물론 이러한 사유방식과 진리개념 등은 각 랑그의 민족마다 다르다).



사람을 위하는 학문이 도리어 사람을 소외시켜 버린 씁쓸함이란?



이러한 담론의 요체는 [주체를 포함한 근대철학의 테제(Theses)가 사실은 선험적 언어구조에서 외화 된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러한 구조주의 언어학자와 철학자의 사유는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중요한 수단이 될지언정, 결코 인류가 심취하여야 할 정론으로 삼을 수가 없는 담론이다.


왜냐하면, 설사 선험적으로 구조화된 언어가 실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실의 나에게 있어서 선험적으로 존재한 것이라는 의미일 뿐, 인류의 시초에서부터 선험적으로 존재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랑그가 사회적 약속에 기반한 것이라면, 그것은 어차피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긴 구조일 뿐 그 이상이 아닌 것이다.



스피노자의 말에 빗대자면, 존재가 양태로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본질에 대한 형용과 이해일뿐,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 구조가 사람에 앞서, 신에 앞서, 사람을 재단하고, 신을 재단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 것과 같다.


낭만은 존재에 대한 그대로의 관조인 동시에 인문학의 필요조건이다.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낭만을 가지고 대륙의 합리론을 비판하였던 것처럼, 구조주의 언어학이 그 정도의 낭만도 가지지 않고 인류와 문화를 랑그로써 재단하고, 주체를 언어에서 외화된 존재로 독단한다면, 그것은 수단과 목적에 따라 존재를 전횡하려는 어불성설에 다름없다.



즉, 낭만은 인문학의 필요조건이어서(충분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낭만이 없는 인문학은 이미 인문학이 아닌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포이어바흐와 성경, 신 앞에 선 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