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론과 경험론, 관계 앞에 선 인문학

인문학을 묻다 14

by 시인 손락천
그가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꼭 그럴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대관절 현재를 살뿐인 나에게, 지금 경험하고 있지 않은 그는 존재하는 것일까? 아닐까?



믿지 않으면 모순에 빠진다.



유명론자나 경험론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숙제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별자만 존재할 뿐, 개별자가 관념한 보편자는 이름뿐이거나 불확실한 것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습득한 인식과 지식이 아니라면 그것을 [참]으로 여길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논리적 사유의 한계다. 스스로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는 낭만을 가지지 않은 채 논리적 사유에만 의지하여 세계를 바라보면, 세상에 버젓이 존재하는, 스스로 역시 그럴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부정하는 모순에 빠져버리고 만다.



관계는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기초는 믿음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엄마에 대한 믿음, 아빠에 대한 믿음, 나에 대한 믿음, 친구들에 대한 믿음, 지인들에 대한 믿음, 단체에 대한 믿음, 신에 대한 믿음으로 그 믿음의 영역을 확장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에서 소위 말하는 문화가 형성된다.


인문학이 사람과 사람의 문화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곧 관계에 관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관계는 믿음에서 기초한다.


엄마가 그러한 엄마일지, 그리고 그러한 엄마가 언제까지나 그러한 엄마일지, 나아가 집에 가면 그러한 엄마가 있을 것인지,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사람이 사람인 이상, 그러할 것이라고 믿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시작이자 인문학의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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