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묻다 17
내리사랑과 치사랑 중 어느 사랑이 더 무거울까?
부모의 사랑은 아가페에 비유된다. 신의 사람에 대한 사랑에 가장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은 대체적으로 무조건적이고 숭고한 사랑의 대표적인 것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러한 내리사랑을 칭송하기 이전에 과연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이 어떠한가를 상고하여 본 적이 있는가?
부모 된 자로서 엄밀하게 스스로와 자식의 관계를 관조하여 보면, 단언컨대 인생의 어느 한 시점까지 내리사랑은 결코 치사랑의 무게를 넘지 못함이 여실하다.
물론 부모에게도 자식은 가장 귀한 존재이고,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이미 머리 굵은 부모에게는 자신의 삶이 있고, 그래서 때로는 자식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간절히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식은 머리가 굵기 전까지 부모가 전부이고, 부모만을 바라보며, 부모가 없으면 잠도 자지 못한다.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 자식은 절실하고 절박하게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사랑을 요구하며, 부모를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여긴다.
그리고 이러한 치사랑은 그에 대한 부모의 보상(내리사랑)으로 봄의 꽃처럼 피어나 가을의 열매처럼 익는다. 또한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으며, 어느 수준으로 익었든지 간에, 그러한 사랑의 경험이 자식의 이후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인문학은 사람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물음을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살펴 아울러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여야만 정상적인, 그리고 바람직한 사람을 위한 학문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말함인가?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것도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처럼 절박한 심정의 사랑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권고하고자 함이다.
즉, 인문학은 카운슬러의 입장에서 사람에게 충고와 조언을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여야 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해야 하는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어떤 가치판단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물음을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살펴 아울러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여야만 정상적인, 그리고 바람직한 사람을 위한 학문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