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돈키호테 앞에 선 인문학

인문학을 묻다 18

by 시인 손락천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는 죽었다.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기사]에 대한 이야기책을 탐독하다가, [나는 이제부터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다. 악을 물리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테다]고 결심하고는 할아버지가 쓰던 칼, 방패, 갑옷을 찾아서 입고, 헐렁한 말 로시난테를 타고 산초와 함께 기사 수업을 떠났다.


돈키호테의 꿈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봉건시대는 이미 끝났는데,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로서 악을 처단하고 기사의 시대를 재건하겠다고 결심하였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대한 거인으로 보았고, 현실을 마법사의 환상으로 착각하였으며, 그 결과로 냉혹한 현실과 부딪혀 비통한 실패와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로시난테의 고삐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산초와 모험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고향인 라만차로 돌아와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깨닫고는 죽게 된다.



그러나 산초가 남았다.



돈키호테 그렇게 죽었지만, 현실적이었던 산초는 오히려 돈키호테의 말년에서야 돈키호테를 닮게 된다. 말년의 돈키호테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지만, 산초는 도리어 그때부터 현실을 거부한다. 그리고 곧 죽을 돈키호테에게 [이렇게 손 놓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빨리 일어나셔서 공주를 구해야 합니다]라고 졸랐고, 그런 신념의 사람으로 남게 된다.



푸코는 지나간 것과 남은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푸코는 이성과 비이성,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하였다. 그는 이성적 또는 정상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의 이면을 사유함으로써,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는 각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된 것일 뿐, 결코 자명한 이성이나 비이성, 자명한 옮음이나 그름은 없다고 하였다.


그는 광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사성’이, 고전주의 시대에는 ‘표상’이, 근대에는 ‘실체’가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었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사성에 의하여 광인을 인간 내면의 한 특성이 부각된 독특한 사람으로 인식하였지만, 고전주의 시대에는 표상의 구분 때문에 광인을 위험하여 가두어 버려야 할 존재로 전락시켜 버렸고, 그러다가 근대에는 표상에 귀환하지 않는 실체(그 어떤 기표도 기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가 있음을 인정하였기에 광인을 감금하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치료하여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푸코는 주체와 대상을 현실의 모양 그대로 관조한다고 하여 그것의 실체가 파악되거나 그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일이 없고, 다만 그것을 그것 되게 한 권력의지를 관찰함으로써, 주체와 대상에 대한 현실의 모양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산초는 그대로의 산초일 뿐, 변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누대에 걸쳐 돈키호테와 산초에게 열광하였다. 그러한 열광은 [비록 후회가 남는다고 하더라도 생각한 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근원적 판타지에 근거한 것일 테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학이 사람에게 주는 가치이며 카타르시스다. 즉, 문학은 [순화의 스펙트럼]으로 현실에서는 용인될 수가 없는, 그러나 사실은 그럴 수도 있는 일에 대하여, 그러한 일반의 상식과 다른 판단에도 나름의 이유와 고뇌, 그리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설득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함에 있어 [아픔에 대한 배려]를 하도록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필자는 구조주의에 대하여 비판적 견해를 취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비판의 지점은 구조주의의 연구가 의미 없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요인에 의하여 결정지어지는 존재라는, 즉 담론의 기저가 사람의 형해화에 치다르는 것에 대한 우려에 있었을 뿐이다.


최근의 얼마동안,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파면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필자는 그들이 [알면서 저러는 것일까? 정말 모르고 저러는 것일까?]를 수없이 고민하다가, 위 두가지의 연구에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고, 그것이 그들이 취한 태도의 이유였다. 비록 비판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들의 가치는 쉽게 폄하할 수 없는 [다름]의 한 종류였던 것이고, 그것에 따라 그들은 그들의 의지와 행동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지은 권력의지(이른바 니체와 푸코의 계보학적 권력의지)에 따른 것이라면, 그들의 신념과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자신들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의 다름을 수용하지 못할 것이다.



한 번이라도 돈키호테에 열광한 적이 있다면, 유연성을 가져보자.



이것은 이성과 비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당대의 부조리에 맞선 돈키호테와 그 추종자들, 그리고 돈키호테를 이용하려 하였던 자들, 나아가 그러한 돈키호테에게 현실을 알려주려 했던 자들, 그들 사이의 역학관계는 바로 소설 돈키호테가 준 풍자와 낭만으로 [희화화]가 아닌 [사회적 고발과 그에 대한 재고]로 남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즉, 현상을 가지고 현상을 판단하지 말고, 그러한 현상을 유발한 권력의지를 살핌으로써, 현상을 이해하자는 말이다.


사회적 합의란 [다름]에 대한 조율인 것이고, 그러한 조율은 [다름]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지점은 여기에 있다. 인문학은 팩트에 대한 다른 판단을 이성과 비이성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다름]이 나타났는지에 대한 관조를 제공하여야 할 책무가 있다. 그래야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으로서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산초의 삶을 헛되지 않게 할 물음이어야 한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도색소설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존재 이유, 그리고 정염과 현실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통하여 사람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시도한 이야기인 것에 있다.


그리고 인문학의 지점은 문학의 지점과 다를 수가 없다. 즉, 인문학은 문학이 그러한 것처럼(사실 인문학과 문학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도와야 할 책무에 충실히 복무하여야 할 뿐, 쓸데없는 편견(독단이나 독선, 이데올로기)을 독려하는 데에 복무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인문학은 칸트의 사람에 대한 근원적 물음(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니체와 푸코의 사람에 대한 근원적 물음(나는 왜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왜 무엇을 알려고 하는가? 나는 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을 더하여, 사람에게 살아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조의 낭만을 던지고, 그것을 통하여 삶에 대한 이유와 기반(기반은 사회적 합의일 것이다)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유물인 산초의 삶을 헛된 것으로 표현하거나 쓰지 아니하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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