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묻다 22
쉼표를 찍다.
인문학에 대한 물음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까지 끼적인, 그래서 아직 수 백 페이지의 볼품없는 글이 하드디스크에 그대로 쌓여 있어서다.
하지만 계속될 물음은 물음이고, 일단은 쉼표를 찍어야겠다.
쉼표를 찍는 이유.
언젠가 절필을 했을 때, 그때의 절박함은 말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절망에 있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나중에는 억지스러운 미련으로 생명을 연장하려 한다는 지점에 이르자, 도저히 매스꺼움을 견딜 수가 없었던 터다.
그래서 일단 아직까지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이때에 잠시 쉼표를 찍고자 한다.
끝은 언제나 시작과 맞닿아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일단락으로 본 이유.
지금까지 중세의 보편논쟁에서부터 푸코까지의 사상을 재료로 삼아 인문학을 물었다. 그 이유는 계시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이성의 시대에서 타자의 시대로, 타자의 시대에서 가변적 타자의 시대로 흘러가는 사상적 기조가 [내가 묻고자 한 인문학]의 태제와 같은 속도의 걸음걸이였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철학적 불가능성과 인문학적 가능성이 같은 보조로 동일한 길을 걸어왔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사유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 그 이상의 것은 사상적 재료가 있다기보다는 그저 던지고 본 임의적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인문학에 대한 물음은 사상적 재료에 대한 스무 개의 써머리와 이를 토대로 한 스무 개의 물음에서 일단락하기로 했다.
앞으로와 지금.
이제 잠시 쉼표를 찍은 후, 어쩌면 연속선상에서, 아니면 전혀 다른 주제로 [02시처럼 던져 04시처럼 받다]를 이을 작정이다.
미숙한 글과 견해에도 불구하고 챙겨 읽어주시고, 공감과 공유, 그리고 라이킷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