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서 얻은 병

작가 후기 - 여담 둘

by 시인 손락천

잘 모른다는 것이 주는 스트레스가 참 많다.


그래서 판단하고 결정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의지할 무엇인가를 찾고, 그로 인하여 본인과 상대방에게 엄청난 양의 스트레스를 양산한다.


물론 어떤 에 대해서는 분명한 자기 확신이 있어 스트레스가 덜한 경우도 있겠지만, 세상에 자기 확신이 분명한 일이 얼마나 될까?


우스운 것은 법조계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변호사에게 일을 맡긴 의뢰인 역시 자기 확신이 없다.


의뢰인은 자기 확신이 없지만, 변호사에게 자기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고, 이러한 불확실의 공은 다시 패러리걸에게로 넘어간다.


어찌 보면 불확실성의 공을 돌리며 자기 확신의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간혹 민사적으로나 형사적으로 너무나 명백하여 고민할 것이 없는 사건이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건은 처음부터 소송을 할 필요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직접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모순되게도 옛날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대놓고 분쟁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무리 간단한 일이더라도, 의심의 골을 깊이 파서 전후를 살펴보는 병폐를 가지고 말았다. 그래서 걱정병에 걸린 나머지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면서 주변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가능성 때문에 팩트를 팩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아내의 심정이 많이 상했다. 미안한 일이다. 심플하게 팩트를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의 문제인 것이고, 문제가 발생하면 또 해결하면 될 것이 아니던가?


어쩌면 나는 이 일을 하면서 트라우마를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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