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투스트라

유폐된 이성으로부터

by 시인 손락천


자라투스트라가 그렇게 말한 후, 낭만이 사라졌다.



니체 이후의 철학에는 정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니체 이후의 철학은 낭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세 가지의 길로 진리를 원했다.



철학에서 진리를 사유하는 방식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진리가 외부에 있는데 그 진리를 인간이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를 위시한 합리론과 로크를 위시한 경험론이 이에 해당하고, 그 논지는 [인간이 사유나 경험으로써 자명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진리가 내부에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사유 또는 인식 방식이라는 것이다. 칸트를 위시한 관념론이 이에 해당하고, 그 논지는 [인간의 인식은 불명확한 것이므로 인식된 객체와 실제의 객체는 서로 다를 수가 있다. 따라서 인간의 인식이 곧바로 객체의 본질이라고는 할 수가 없지만, 어찌 되었든 객체는 존재하고, 인간은 인식한 대로 객체를 파악할 뿐이어서, 결국 진리 문제는 인간으로 하여금 객체를 동일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사유방식 또는 인식방식에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인간이 진리라고 믿는 것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경험론자 중에는 흄의 후기 철학이 이에 해당하고, 나머지는 탈근대의 시발점이 된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야콥슨 등의 시대정신, 유물론, 무의식, 권력의지, 구조주의 등에 대한 담론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논지는 [진리란 시대의 요구나 권력의지에 의하여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하여 인식되는 것이든지, 아니면 구조화된 언어나 무의식에 따라 인식 및 규정되는 패턴일 뿐, 달리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불변 또는 절대의 진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습게도 진리라는 화두는 이성에서 비이성으로 흘러갔다.



이러한 사상의 흐름을 살펴보면, 진리라는 화두로 시작한 철학은 점점 이성에서 비이성으로 흘러가고 있음이 확인된다. 즉, 적어도 니체까지의 철학에는 낭만이 있었지만, 구조주의 이후로는 낭만이 죽어간다.


왜냐하면, 니체까지는 이성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 두었지만, 구조주의부터는 이성을 외부의 시스템에 의하여 양식화된 것이라고 규정하며 이성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근대철학은 살아있고, 그래서 여전히 연구의 대상이며, 여러 사상이나 규범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의 습격은 너무나 치명적이었고, 모든 것의 기준과 경계를 허물어 버리며, 순식간에 비이성의 시대를 생산하고 말았다.



이성은 낭만이다. 그리고 낭만은 사상에 유폐되고 말았다.


어쩌면 모든 문제는 사상이 이성을 유폐하여 버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성이 유폐되지 않았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비인간적인 여러 병폐가 그대로 방치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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