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을 살고 모순을 꿈꾸다

변명 혹은 핑계

by 시인 손락천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그러나 나는 그런 핑계 댈 거야.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다.


소송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이상 상호관계에서 어떤 행위가 발생하였다면, 그것이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유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는 형사사건에서는 처벌의 정도에 대한 양형요소가 되고, 민사사건에서는 책임범위에 대한 제한사유가 된다.


그래서 이것은 법적인 다툼에서 매우 필수적인 변론 요건이지만, 사실 이것 때문에 보람이 생길 수도, 환멸이 생길 수도 있다. 사람인 이상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변명이 있고, 그렇지 않은 변명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위에 있어 궁극적인 정당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정당성이라는 것은 그 근거를 개인에게 둘 수도, 작은 모임에 둘 수도, 비교적 큰 모임에 둘 수도 있는 것이어서,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일 수가 있다.


그런데,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는 결국 이해나 이익을 함께하는 이들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대척점에 선 불이익자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사람의 행위에 있어 궁극적인 정당성은 존재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법원은 모든 사건에서 당사자가 어떤 변명을 하든지 간에 일단은 듣고 본다. 비록 법적인 한계 내에 서겠지만, 사람과 사회가 가진 생태적인 한계(이기성으로 인한 투쟁 상태) 역시 존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변명. 절대적인 진실이 지배하지 않은 공간에서의 가장 절대적인 명분.



변명. 절대적인 진실이 지배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가장 절대적인 명분이 된다. 사람이기에, 사람이어서, 혹은 누구 편을 들어주거나, 혹은 누구에게 위로를 하거나, 혹은 누구에게 선처를 하거나, 혹은 누구를 용서하거나, 혹은 누구를 가열차게 몰아세우는 명분 말이다.


하지만 우리 묻힐 곳은.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변명 속에 살지만, 그래서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포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변명을 떨쳐 내기를 소망한다.


그래도 내가 묻힐 곳은, 네가 묻힐 곳은 핑계 없는 무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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