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함몰의 함정
좋은 글은 쉬운 글이다. 시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시 자체가 가진 특성 때문일 수가 있다.
첫째, 상징.
가령, 시에서 세월호 참사는 [미친바람]이 된다.
둘째, 비유.
가령, 시에서 그녀가 흘린 눈물은 [툭 하고 터진 언저리 둑]이 된다.
셋째, 그대로가 아닌 투영된 현실.
가령, 시에서 1인 시위의 모습은 [먹구름에 한 점 떤 빛]이 된다.
넷째, 불가능한 감각.
가령, 시에서 봄의 정취는 [재잘거린 연두색 웃음]이 된다.
다섯째, 설명이 부족한 자기 세계의 언어.
가령, 시에서 죽음에 대한 거부는 [야위어 흩은 홀씨]가 된다.
여섯째, 중의.
가령, 시에서 향기는 [꽃의 노래인 동시에 죽음으로의 유인]이 된다.
일곱째, 비약.
가령, 시에서 사람은 영문 없이 [꽃]이 된다.
이런 현상은 시가 가진 함축에 그 원인이 있다. 즉, 시는 감정과 현실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고 인식의 프리즘을 통하여 형성된 심미적인 함의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이러한 시어의 유기적 조합으로 형상화된 생명에 도취하여, 점점 더 심저의 자기 세계에 빠져든다.
그러나 시란 것은 첫 번째에 50% 이상이, 두 번째에 60% 이상이, 그래서 다섯 번째에는 100% 이상의 함의가 각자의 뜻으로 선명하게 와 닿아야만 비로소 좋은 글이라 할 만하다.
이것이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이고, 이런 까닭 때문에 시인이라고 하는 나조차 가끔씩 시를 읽는 것에 곤란함을 느낀다.
하지만 좋은 글은 쉬운 글이다. 시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시가 아무리 심미적 스펙트럼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시인의 의중이 아무리 파악하기 난해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시란 것은 첫 번째에 50% 이상이, 두 번째에 60% 이상이, 그래서 다섯 번째에는 100% 이상의 함의가 각자의 뜻으로 선명하게 와 닿아야 좋은 글인 것이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얼마든지 기꺼이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지깟 글, 그 주제에 웬 말이냐]는 비아냥거림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그렇게 꽉 막히거나 지존 광대할 깜냥이 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가 외면받고 있다. 반면에 가장 쉽게 접근하는 글쓰기도 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시대가 글쓰기와 시에 대하여 던진 화두이다. 결코 그냥 넘어가거나 소홀할 수 없는 화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