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산다

산다는 것

by 시인 손락천


현실에 얽매인 사람에게는 잊힌 낭만.



꽃이 피고 파아란 과실이 여물기 시작하면 뜨거운 날에 쏟아지는 비를 그토록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비가 온다고 뭐가 좋을까 싶지만, 그냥 비가 오면 팬티바람에 비 내리는 마당 가운데에 서서 비를 맞던 때다.


지금으로 말하면 따가운 물에 샤워하는 것과 같은 놀이였고, 그랬기 때문에 그냥 그럭저럭한 비는 시큰둥했고, 세차게 뿌리는 장대비라야 했다.


우중에 함께 놀 사람이라면 터울 많은 형 둘 뿐이었지만, 세찬 비가 내리면 무엇이 그렇게도 좋았던 것인지 형제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흥분했었다.


아마 사람에게 비는 그 자체가 낭만이었을 터였다. 현실을 살아야 하는, 그래서 현실에 얽매인 사람에게는 잊힌 낭만 말이다.



마음이 없다면 좀비일 뿐이다.



세찬 비를 싫어한다면, 한 번도 세찬 비에 힘껏 뛰어다니지 못했다면, 그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신을 위해서 살아본 경험이 적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지키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조금의 보상도 할 여력이 없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보상을 할 여력이 없는 까닭이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헌신하는 사람이지만, 그 내면은 뿌듯함에 상응하는 원망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마음으로 사는 존재다.


마음이 없다면 좀비일 뿐이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 그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결국은 곁을 그 어둠에 물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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