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일, 사람의 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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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째다. 그리고 박 변호사는 지루하고 짜증 나는 재판 상황에 무척 성이 나 있는 상태다.
가령 이렇다.
한국철도공사는 서울의 유명 로펌을 선임했고, 우리가 10페이지 분량의 준비서면을 써서 제출하면, 상대방은 50페이지의 준비서면을 써서 우리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증거 역시 한꺼번에 20~30개를 제출하는 형식이었다.
이렇게 방대한 양의 준비서면과 증거가 차곡차곡 쌓였고 그런 까닭으로 이 사건 소송기록은 이미 수천 페이지가 넘어갔다.
이제는 소송기록이 두껍고 그 주장 내용이나 증거가 너무 많은 까닭에 나는 물론이고 재판부도 작정하고 읽지 않으면 도대체 원고와 피고가 무슨 주장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증거가 제출되었는지에 대하여 제대로 알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적인 현상은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한국철도공사 역시 마찬가지일 터다.
따라서 상항이 이러하다면, 이것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한국철도공사의 의도가 있었을 게다. 그리고 그 의도라는 것이 여러 가지의 주장과 헷갈리는 다수의 증거를 제출함으로써 쟁점을 흐리는 데에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론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결국 피고든 재판부든 소송기록에 질린 나머지 논리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힘의 논리로 사건에 접근하게 되고, 그것은 곧 힘에서 우위에 있는 한국철도공사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갈 것이었기 때문이다.
치사하다. 아무리 승부를 위해서라지만 준정부기관인 한국철도공사가 이런 방법을 쓴다니. 치사해도 이런 치사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