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일, 사람의 일 1-8
1-8
일호가 합의서를 보내왔다.
구미역사 상업시설의 사용승인조건인 지하주차장 및 지상 광장을 서브프라임에서 완공하되, 그 공사비 중에서 40억 원을 한국철도공사에서 투자하고, 향후 10년 동안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수익을 서브프라임이 가지며, 이를 조건으로 하여 지하주차장과 관련한 소송을 취하하고, 향후 동일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정도면 일단 성공으로 보일만한 하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른다.
일은 끝낼 수 있을 때 미련 없이 끝내는 것이 좋다. 만나고 다투고 화해하는 것이 세상의 일이라지만, 화해를 했다고 해서 다툰 마음이 모두 소진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다시 시작하더라도 끝을 맺은 다음에 다시 시작해야 같은 문제를 가지고 극단으로 치닫는 일이 없는 게다.
지하주차장이 과연 80억 원에 건축되어 사용승인이 될지, 그리고 그것을 이유로 구미역사 상업시설에 대한 사용승인이 날 지는 장래의 일, 즉 미지수인 게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변할 수가 있고, 특히 이미 감정이 상했던 일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쉽게 손바닥을 뒤집을 수 있는 일이다. 약은 자에게 약속이란 때로는 지키라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깨라고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송대리인은 당사자인 의뢰인의 입장을 반영해야 하는 법이기에 우리는 잔여공사와 관련한 20억 원의 청구만을 유지한 채 지하주차장과 관련한 80억 원의 청구에 대하여는 이를 합의에 따라 포기하는 것으로 하여 일부 소취하(청구취지를 10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감축하는 청구취지변경)를 했고, 2010. 12. 29. 법원으로부터 원고 승소의 판결을 받았다.
나는 오후 2시쯤 직접 대구지방법원 24호 법정에 올라가서 일호와 함께 선고를 들었다.
그리고 일단은 100%의 승소에 서로 축하했다.
그러나 일호와 헤어져 사무실로 돌아온 후로는 영 마음이 마뜩지 않았다. 만약 한국철도공사가 항소를 하지 않고 위 판결을 그대로 따른다면 일호로서도 지하주차장 건축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모든 것이 합의한 내용대로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국철도공사가 항소를 한다면?
그 항소이유가 무엇이든 상황이 복잡해진다.
굳이 상황을 정리해야 할 시점에서 한국철도공사가 그러한 분쟁을 이어가겠다고 한다면, 우리로서는 그 속내가 무엇을 향한 것인지를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고는 창가로 향했다.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무슨 당사자 본인도 아닌 내가 이런 걱정을, 그것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더구나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일을 이다지도 걱정한단 말인가? 잊자. 잊자. 잊자.’
법무빌딩 5층.
창가에 비친 연말의 법원 거리는 한산했다.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이 낙엽을 몰고 다니는 바람처럼 세차게 일었다.
하나를 가진 자, 그리고 많은 것을 가진 자. 하나를 가진 자에게는 그 하나가 모든 것이지만, 많은 것을 가진 자에게는 그 하나가 여러 가지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하늘에 구름이 짙다. 마치 사람 사는 세상에서의 역학관계가 갈수록 사람을 옥죄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