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 대한 예의, 그리고 나에 대한 예의 2-2
2-2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명석 형이 투덜거렸다.
우리는 전날 명사십리 해변에 텐트를 치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 백사장이 아닌 텐트 안에서 삼겹살을 구웠고, 그 탓에 돼지기름이 텐트바닥을 축축하게 적셔 텐트를 못쓰게 된 까닭이었다.
물론 우리는 어둑할 무렵 텐트 안에서 삼겹살을 구웠기 때문에 그 날에는 전혀 텐트바닥에 있는 돼지기름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돼지기름 위에서 잠을 자는 촌극을 빚었던 거다. 그리고 우리는 겨우 다음 날 아침에서야 텐트를 걷으면서 그 사실을 알아차렸고 말이다.
1991년식 엘란트라 승용차는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많은 잡소리를 냈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 와서 처음으로 한 일이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었고, 그래서 변호사 사무실에 취업하는 것과 동시에 오래된 연식의 엘란트라 승용차를 구입했던 터다.
초보운전이었던 탓에 사고가 잦았고, 차량 자체의 노화로 인한 고장도 잦았다. 그리고 그 탓에 가급적이면 세워두는 일이 많았지만, 어찌되었든 벌써 오랜 세월을 함께 하였기에 무척 친근한 느낌이 드는 차량이었다.
남도여행을 나의 엘란트라 승용차로 하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제는 폐차하여야 할 차량이었기 때문에 엘란트라의 마지막을 여행으로 마쳐주고 싶었던 이유였다.
“참나. 형님. 신지에서 배를 타고 나온 지가 얼마나 됐고, 부두에 세워둔 애마를 타고 전라도를 떠나 온 지가 얼마나 됐는데, 아직까지 텐트 타령입니까?”
조수석에 앉은 종희도 히죽 웃으면서 나를 거든다.
“이참에 텐트 하나 새로 장만합시다. 거참. 이 차만큼이나 연식이 된 것 같은 텐트던데 뭘 그렇게 아쉬워합니까?”
“그래도 재미있었지 않습니까? 돼지기름 위에 둥둥 떠서 잠을 자는 것이 어디 보통일입니까? 돈으로는 절대 못 살 값진 경험이었지요. 암요.”
명석 형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아무튼. 텐트는. 오래되었고, 그만큼 친숙해졌던 탓에 그런가 보다. 마음 준 것은 낡으면 낡을수록 미련과 그만큼의 가치를 남기거든.”
생소한 초행길이어서 운전에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백미러로 얼핏 명석 형을 보며 말했다.
“뭐. 이 차도 이참에 그냥 폐차해 버릴 생각입니다. 어차피 더 굴러가기가 곤란한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에요. 형님. 이번 기회에 차도 텐트도 고이 보내줍시다. 그리고 십시일반으로 텐트도 하나 새것으로 장만하고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요.”
“새 술은 무슨. 누가 들으면 웃겠다. 그리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그나저나 텐트 안에서 버너를 켜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는 사실을 알면 모두들 기함할 것 같다. 불이 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 삼겹살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구워질 뻔 한 것 아니겠어?”
“그때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다. 그리고 엄청 좋은 생각이라면서 서로 박수치며 삼겹살을 구웠던 것은 어떻고. 그나저나 역시 남자들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좀 모자라는 존재야. 돼지기름으로 축축했을 텐데, 어떻게 그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을까 말이다”
“글쎄 말입니다. 그것도 다 운명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아슬아슬한 상황을 넘긴 것일지도 모른다.
기름투성이인 텐트 안에서 불을 피운 것이니까 말이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간 것이 어쩌면 큰 다행일 테다.
결국 화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태평하게 웃으며 재미있는 해프닝쯤으로 넘겨버리고 말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닌 상황이 아니었던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