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15

그들에 대한 예의, 그리고 나에 대한 예의 2-3

by 시인 손락천

2-3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지요. 당시만 하더라도 일이 이렇게 진행될 것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아무도 없지요.”


사내는 택시공제조합의 보상팀 부장이다. 손해배상의 항소심 사건 하나를 가져와서 오전부터 얼굴을 붉히고 있는 터다.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붉힌 얼굴을 보다니 참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사내는 어지간히도 황망한 심정인 것 같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2007년 10월 5일 아침 6시경 영남대학교 앞의 대로에는 물기 축축한 안개가 자욱하였다. 택시는 시야가 좋지 않은 탓에 전조등을 켜고 2차로를 시속 20km로 달리고 있었는데, 길가에 손님이 있어 감속을 하면서 차로를 3차선으로 변경하였고, 그러다가 마침 뒤에 있던 차량이 택시를 추돌하였다.


하지만 양측 차량의 속도가 매우 낮았기 때문에 가벼운 접촉사고로 끝이 났고, 뒤에 있던 차량의 운전자는 전치 2주의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것이 전부였다.


사고를 접수한 경찰과 택시공제조합으로서는 비록 택시가 선행 차량이었지만, 갑자기 차로를 변경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그래서 택시 기사가 보험처리를 하는 것으로 하여 형사 사건과 손해배상 모두를 가볍게 종결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일이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문제는 일이 있은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택시공제조합은 피해자가 가벼운 타박상에도 불구하고 1년 넘도록 계속해서 병원치료를 받았기에 무슨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은 마음이었다.


피해자는 전치 2주의 타박상으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해서 병원에 드나들었고, 그렇게 해서 지출된 치료비만 벌써 900만원 가량이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택시공제조합이 피해자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있을 때,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교통사고로 인하여 11억원의 손해를 입었으니 이를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물적 손해는 명확한 것이어서 대부분 소송으로까지 비화되는 일이 없다. 문제는 인적 손해와 관련한 것이다.


인적 손해는 크게 적극적인 손해와 소극적인 손해로 나누어진다. 적극적인 손해는 사고로 인하여 직접적으로 발생한 치료비와 위자료를 말하는 것이고, 소극적인 손해는 사고로 인하여 일을 하지 못함으로써 잃게 된 소득금액 상당의 손해(그래서 잃어버린 수입, 즉 일실수입이라고 한다)를 말하는 것이다.


판결문을 보니, 1심에서 3차례의 각각 다른 전문 과목에서의 신체감정이 실시되었다.


첫째는 신경정신과의 감정인데, 피해자가 사고로 인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게 되어 4년간 한시적으로 24%의 노동능력이 상실되는 장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정형외과의 감정인데, 피해자가 사고로 인하여 경추부에 염증이 발생하였고, 왼쪽 견관절의 상극건이 부분적으로 파열되어 17%의 노동능력이 상실되는 장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비뇨기과의 감정인데, 피해자가 사고로 인하여 발기부전의 영구장해를 입게 되어 이로써 약 15%의 노동능력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1심은 이러한 신체감정결과를 토대로 소극적인 손해를 판단하였는데,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성악을 전공하고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점에서 피해자를 10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예술 및 방송관련 전문가로 분류하여 월 평균 420만원의 소득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이러한 소득에 일을 할 수 있는 합계 기간을 곱하고, 다시 신경정신과적 한시장해와 정형외과적 영구장해에 대한 복합장애율을 곱하여 합계 2억원에 달하는 일실수입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적극적인 손해에 대해서는 치료비를 합산한 2,000만원의 손해가 발생하였고, 다만 비뇨기과적인 장해는 사고와의 직접적인 상당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며 그것을 소극적인 손해로 보는 대신에 그러한 사정을 위자료 산정에 감안하여 3,000만원의 정신적인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1심은 피해자에게 소극적인 손해와 적극적인 손해를 합하여 2억 5,000만원의 손해가 발생하였는데, 다만 사고가 발생한 데에는 피해자가 전방주시의무를 위반한 것에도 일부의 잘못이 있으므로, 10%의 과실이 존재한다면서 택시공제조합으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2억 2,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하였던 거다.


그러자 택시공제조합으로서는 이것이 가벼운 접촉사고로서 나올 수가 없는 손해라면서 항소를 하였고, 피해자 역시 계산을 하면 무려 11억원의 손해를 입었는데 1심이 과소한 판결을 한 것이라며 항소를 하였다.


“이제까지 이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보는 독특한 사건이네요. 참 희한한 일입니다.”


“그렇지요. 이건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듭니다. 이 사람은 마치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불운이 사고로 인하여 발생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도대체 어떤 관점에서 그 모든 병증이 이토록 가벼운 교통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일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1심이 그렇게 판결한 데에도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일단 소송기록을 전체적으로 보고, 차근차근 사건을 들여다보기로 하지요.”


“조금 있으면 변호사님께서 오실 테니까 변호사님을 뵌 후에 선임 계약부터 체결하도록 합시다.”

매거진의 이전글진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