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19

그들에 대한 예의, 그리고 나에 대한 예의 2-7

by 시인 손락천

2-7


택시공제조합의 보상팀 부장은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다소 마른 체격의 사내이다.


짙은 눈썹에 비해서 눈이 가늘고, 입술이 얇다. 살이 오르지 않은 탓인지 얼굴이 전체적으로 야윈 상태이고, 잔주름이 적지 않다.


부장의 직급이라면 하위 직급의 실무담당자를 보내서 사건에 대한 상의를 하면 될 텐데도, 계속 본인이 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 것 같다.


범어네거리의 교통섬에 있는 나무들이 불긋하다. 이제 막 시작되는 가을인 거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가을이 절정에 이르면 이 사건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될 터다.


무더위가 한결 가신 10월 첫째 주에 병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피해자에 대한 치료비와 관련한 각 자료들을 회신했다. 그러나 아직 피해자에 대한 각 전문 과목별 신체감정보완도 한창 진행 중인 터였고, 그래서 택시공제조합의 보상팀 부장이 회신된 자료와 진행 중인 신체감정보완과 관련하여 상의하려고 오전부터 사무실에 와있다.


그는 연신 커피를 마실 듯 마시지 않을 듯 커피 잔에 입술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하며 목만 축이고 있다.


간간히 대답하고 의견을 말하는 그의 정중하면서도 높지 않은 톤의 목소리는 이 사람이 매우 절제된 생활을 하여 왔음을 짐작케 한다.


“제가 병원의 교수실로 직접 찾아가서 신경정신과 감정 의사를 만났는데, 참으로 답답한 말씀을 하더군요.”


“아무리 가벼운 사고더라도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고, 특히 발기부전과 같은 부정적인 병증이 발생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가 않다고 말입니다. 아마 다른 것은 몰라도 트라우마나 발기부전과 관련하여서는 감정결과의 예후가 매우 좋지 않게 나올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사내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는 투로 억울함을 토로한다.


사내의 얼굴을 보면 그가 정말로 답답해하고 있음을 충분하게 알 수가 있다.


조금만 물러나 생각을 해보면, 감정결과라는 것은 결국 감정 의사의 견해에 불과한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변호사가 감정의 결과에 대한 당부를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재판부가 그러한 여러 주장을 총괄하여 감정 결과의 반영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그것보다는 감정 의사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 주지 않고, 1심에서와 같이 비토적인 감정보완을 할지도 모른다는 눈앞의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너무 그렇게 미리부터 걱정하지는 마세요.”


“감정 의사의 입장이야 지금에 와서 원래의 감정결과를 부인할 수가 없는 노릇일 테니, 당연히 자신의 기존 입장을 철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수차례에 걸친 감정보완에서 조금씩 노출된 논리적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그것을 언급하여 재판부로 하여금 감정상의 내용이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의심을 심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내는 안심을 하기는커녕 계속해서 걱정만 늘어놓았다.


“물론 그래야겠지만, 제가 1심에서 사건을 부하직원에게 맡겨 놓았던 탓에 이다지도 이상한 쪽으로 감정 결과가 흘러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아쉽고 후회되고, 또 부정적인 방향으로 감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이런 식이라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해야 한다.


“사람의 힘으로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1심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도, 아마 그럴만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지금처럼 너무 노심초사 하시면 오히려 부장님께서 건강을 해치실 것 같아 걱정이네요. 조금 느긋하게 생각하세요.”


사내는 마지못해 ‘알겠다.’며 둘러대고 있지만, 커피 잔을 쓰다듬고 있는 그의 엄지가 무척 불안하게 떨리고 있을 것을 보면, 아마도 그의 불안과 불만은 결코 불식된 것이 아닐 터다.


“그나저나 치료비 부분은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왔습니다. 비록 손해배상에서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치료비도 줄이고, 그 연관성으로 노동능력상실율에 대해서도 나름 다툴 만한 여지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내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아마 무엇인가에 생각이 꽂히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다. 결국 이 사람은 사건을 풀어가야 할 입장에서 가장 난해한 부류의 의뢰인인 셈이다.


“병원 등에서 보내온 치료비 내역을 보니, 자동차손해배상보험으로 처리된 것과 일반건강보험으로 처리된 것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피해자는 양 쪽의 치료비 모두를 합산해서 청구를 하였더군요.”


“피해자는 아기오과립, 아스피린프로텍트, 무코스타, 트리테이스, 표층열치료, 심층열치료, 경피전기신경자극치료, 바이겔 등의 처방을 받거나 진료를 받았는데, 이것은 모두 당뇨나 고혈압 등과 관련된 치료내역이고, 그래서 일반건간보험의 적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손해보험으로 처리된 내역 중에서도 피해자가 일반내과 등에서 진료를 받은 상세 의무기록이 있는데, 진료기간을 유심하게 살펴보니, 이는 피해자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던 시기와 겹치고, 그 진료내역 역시 피해자가 이 사건 교통사고와 관련하여 호소한 것이 아닌 진료가 상당수임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 중에서 당뇨나 고혈압과 관련된 진료비 500만원에 대해서는 교통사고로 치료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적극적인 손해금액에서 제외하고, 일반내과 등에서 받은 치료 역시 교통사고와 전혀 상관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교통사고로 치료를 받으면서, 전혀 교통사고와 상관이 없는 진료를 함께 받았다고 주장함으로써 나머지 진료비 1,500만원의 경우에도 50% 이상이 삭감되어야 할 것이라고 밀어붙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판결을 받게 되면 연 20%의 이자 상당에 해당하는 지연손해금을 갚아야 할 것이니까, 미리 자동차손해보험으로 치료비 750만원 가량을 병원에 선지급 하도록 하시지요. 그것이 어느 모로 보나 택시공제조합에 유리한 것이니까요. 그렇게 하시고 나면 저희가 치료비 부분에 대해서는 전액 공제되는 판결을 받도록 하지요.”


“그리고 더 고무적인 것은 피해자가 교통사고로 치료를 받으면서 동시에 교통사고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진료를 함께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각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 신경정신과적인 제반의 문제는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오래도록 지속된 지병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고, 재판부가 그렇게 판단한다면 결과적으로 우리측의 손해배상책임이 상당부분 제한될 수가 있을 겁니다.”


나는 말을 하면서도 조금 답답했다.


사내가 전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손발을 맞추어 사건을 해결하여야 할 상황인데도, 아직까지도 신경정신과의 감정 의사가 보인 태도 때문에 다른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부장님. 제 말 들으셨지요?”


“아! 네. 들었지요. 말씀하신 자료를 가져다 드리지요. 나머지 신체감정보완 부분은 제가 직접 더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오늘은 그만 일어서지요.”


“네. 그럼 수고를 좀 해주시고, 다음에 신체감정보완서가 회신 되면 다시 뵙도록 하지요.”


나는 사내를 현관문까지 배웅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사내가 저렇게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급하게 자리를 뜬 것은 아마 감정 의사가 한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 터다.


소송은 넓게 보아야 하고, 국지적인 것에 마음을 크게 쓰면 안 된다.


사내는 꼼꼼한 일처리로 인하여 지금의 저 자리까지 올라갈 수가 있었겠지만, 성향이 저렇게 굳은 이상 그 이상의 자리로 승진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오히려 사고를 좀 더 유연하게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지금의 자리조차 머지않아 위협을 받게 될 수도 있을 터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사내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지만, 적어도 이 사건으로 인해서 사내가 곤경에 처할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야 어찌될 값이라도, 내가 관여한 사건 때문에 사내가 타격을 입는다면 내 기분 역시 결코 좋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저 사내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를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습게도 살다보면 도움은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오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도움을 받았지만 죽을 때까지 도대체 자신이 누구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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