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20

그들에 대한 예의, 그리고 나에 대한 예의 2-8

by 시인 손락천

2-8


찬바람이 세차다.


11월은 겨울과 가을이 오가는 길목인데, 산야의 불긋한 기운과 잎 마른 낙엽의 향기로 치면 겨울보다는 가을의 기운이 더욱 짙다.


우리는 택시공제조합의 보상팀 부장의 고집으로 인하여 비뇨기과의 신체감정에 대해서도 감정보완촉탁을 했고, 그래서 그 결과가 11월 초순에 나왔다.


나는 신경정신과, 정형외과, 비뇨기과의 감정보완 회신서를 책상 위에 펼쳐 두고 어떻게 변론을 할지 고민했다.


예상대로 각 감정보완신청에 대한 회신 내용은 1심의 감정 결과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전혀 불필요한 작업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몇몇의 보완 내용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점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경북대학교병원은 비뇨기과 신체감정보완에서 ‘이 부분 발기부전의 증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과 관련된 것’이라고 회신했다.


일이 이렇게 되면, 결국 정신과적인 치료 및 그로 인한 회복의 정도에 따라 발기부전이 영구적인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것인지의 여부가 정하여진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부분 병증이나 이로 인한 노동능력상실율은 따로 손해배상의 대상 또는 배상금의 산정기준이 될 수가 없고, 자연스럽게 정신과적인 병증이나 그로 인한 노동능력상실율에 포함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최소한 비뇨기과적인 증상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서는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가 있게 된 셈이다.


경북대학교병원의 신경정신과 신체감정보완은 1심의 감정결과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않은 상태의 회신을 했다.


그러나 경미한 접촉사고에 비하여 그 정신과적인 병증의 상태가 너무 과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공교로운 것은 1심에서의 감정결과는 물론이고 항소심에서의 감정보완 역시 모두 피해자로부터 청취한 이 사건 교통사고의 내용과 피해자가 호소하는 증세 등에만 의존하여 피상적으로 감정을 하였던 것에 불과하다.


즉, 과연 가벼운 자동차 추돌 사고만으로 위 각 감정서 내용과 같은 중한 정신과적 병증 및 후유 장해가 발생하였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전혀 해소되지가 않은 상태인 것이고, 감정 의사 역시 현재 피해자의 상태에 대해서만 감정을 한 것일 뿐, 그 원인이 교통사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적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감정보완의 내용에 의하면, 피해자는 처음에 정신과적 감정을 받았을 때와 똑같은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교통사고가 발생한지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정신과적 치료를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증세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나 그것은 있기 힘든 일이다. 매우 이래적인 사례이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부분과 관련해서 할 말이 많이 생긴 셈이다.


즉, 피해자는 어느 누가 보더라도 매우 가벼운 교통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통상적이지 않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해 등을 호소하고 있고, 그 손해 역시 11억원을 상회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금액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동안 꾸준히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5년이 다되어 가도록 전혀 그 증세에 차도가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피해자가 꾸준하게 정신과적 치료를 받아 왔던 것이 분명하고, 더구나 감정 결과 역시 피해자가 수상 후 약 4~5년의 한시장해를 입을 정도였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와 관련한 병증은 현시점에서는 최소한 상당하게 호전되어 있어야 함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일어나고도 몇 년이 지나도록 피해자의 증세에 전혀 차도가 없었다는 것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도무지 통상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거액의 돈을 청구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꾀병을 앓으며 이 사건으로 한 몫 단단히 챙기려고 한 것이었다는 사정이 합리적으로 유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각 감정의 내용을 백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각 감정의 내용은 피해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해를 보인다는 것인데, 정작 감정의 내용이 적시한 증상에는 전혀 외상 후 스트레스 장해의 전형적인 증상이 아닌 불안장해, 강박장해, 이인장해, 건강염려증, 정서장해, 망상장해 등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피해자의 경우에는 그 감정결과에 나타난 신경정신과적 증상 모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해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질환에 기인한 장애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호소하는 증세 모두가 이 사건 교통사고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영남대학교병원의 정형외과 감정보완에서는 피해자가 견관절 상극건의 부분파열 등으로 17%의 운동장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였다.


그러나, 위 감정보완의 내용은 1심에서 한 최초 감정서에서 적시된 적이 없는 병증이다.


즉, 교통사고 이후에 피해자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결국 교통사고로 인하여 입은 상해의 정도와 그 후유장해는 그 교통사고와 근접하여 실시한 진료 및 감정 결과가 더욱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일 뿐, 그 이후에 피해자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한 도대체 어떤 결과로 견관절 상극건의 일부가 부분파열에 이르게 된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만 이후에 실시된 진료 및 감정에서 그러한 소견이 새롭게 발견되었다고 해서 무작정 그와 같이 새롭게 발견된 증세와 그 후유장해를 교통사고와 상당인과관계에 있다고 볼 것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영남대학교의 정형외과 감정결과 및 감정보완은 다만 피해자에게 견관절 상극건의 부분파열과 그로 인한 후유장해가 발견된다는 현재의 소견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 뿐, 그것이 교통사고와 상당인과관계에 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사건은 피해자의 증세에 대하여 처음으로 진료 및 감정하였던 감정의 내용대로 경추부 염증과 관련한 한시 2년의, 노동능력상실율 14%의 장해를 입었다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 셈이다.


나는 이런 여러 가지의 검토 결과를 박봉수 변호사에게 보고하였고, 일실수입과 관련한 의견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여 그에 대한 준비서면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아마 이번 변론기일에서는 신체감정의 적절성 여부와 노동능력상실율의 정도, 그리고 이와 관련한 일실수입 손해의 책임제한의 정도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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