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21

그들에 대한 예의, 그리고 나에 대한 예의 2-9

by 시인 손락천

2-9

2011년 11월 15일 오후 2시, 대구지방법원 43호 법정.


“오후 2시로 지정된 재판을 진행합니다. 2011 나 2436호 손해배상 청구 사건, 원고 이응년, 피고 택시공제조합.”


박봉수 변호사와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이 “예”라고 답하며 각 원고와 피고의 자리로 나왔다.


“피고 소송대리인께서 신청하신 병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여러 문서가 회신되었고, 또한 원고에 대한 각 전문 과목별 신체감정보완회신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양측의 소송대리인 모두가 각 준비서면을 제출하셨는데, 양측 다 위 각 서류를 송달받았지요? 일단 서로가 제출한 각 준비서면의 내용은 모두 진술된 것으로 하고, 양측 소송대리인께서 간략하게 각자의 주장을 보완할 입장을 추가적으로 진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입을 먼저 연 쪽은 피해자 측이다.


“먼저 가장 쟁점이 되는 소극적인 손해인 일실수입과 관련한 주장입니다. 원고는 경북산업대학에서 성악과 시간강사로 일한 적도 있고, 다수의 음악공연에 참가하였던 적도 있습니다. 따라서 원고의 일실수입은 경력이 10년 이상인 예술 및 방송 관련 전문가의 통계소득을 기초로 하여 산정되어야 하고, 아울러 각 감정 결과가 밝힌 신경정신과적 노동능력상실율 한시 4년 24%, 정형외과적 노동능력상실율 영구 17%, 비뇨기과적 노동능력상실율 17%의 중복장해율이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원고의 손해 규모는 위 통계소득에 중복장해율을 곱하여 호프만계수에 따라 산출한 금액 10억원이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적극적인 손해로서의 치료비 손해는 원심과 같이 2,000만원을, 위자료 손해는 원고가 겪고 있는 여러 정신적인 고통을 고려하여 원심과 같이 3,000만원을 배상함이 옳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손해배상금액의 산정은 원래의 청구취지인 11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서, 원고로서는 배상받아야 할 금액을 최대한으로 양보한 셈입니다.”


피해자 측으로서는 당연한 논리이고 주장일 것이다.


박봉수 변호사는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소송은 이기고 지는 문제이고, 한쪽이 웃으면 다른 한쪽은 울 수밖에 없다. 하여 아무리 논리와 법에 따른 주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변호사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 이상 반쪽의 진실을 지닌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에게는 미안한 일이고, 또한 그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닙니다. 그러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불법행위와 손해 사이에 서로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인과관계는 원고가 구체적으로 입증하여야 합니다.”


“원고는 교통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별다른 수입이 없었습니다. 비록 유학까지 마친 인재라고 하지만,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여 얻은 수익이 거의 없고, 예술공연을 하였다고 하지만 그로 인한 수입 역시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또한 전회 변론기일에 자세하게 주장하였던 것과 같이 원고는 농사에도 일부 관여한 것 같지만, 그로 인한 수입이 있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원고나 원고의 소송대리인은 원고에게 예술 및 방송 관련 전문가로서의 통계소득과 유사할 정도의 소득을 얻었다는 그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1심의 통계소득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미안한 일이지만 원고가 구체적으로 자신의 소득 규모나 경력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원고의 일실수입은 도시일용노임이나 일반농업종사자의 수입을 기준으로 산정됨이 옳습니다.”


“원고의 노동능력상실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각 전문 과목별 감정 의사들이 일제히 각 전문 과목별 노동능력상실율을 언급하고 있지만, 정작 감정서에는 그 어디에도 이 사건 교통사고로 인하여 그러한 각 노동능력상실이 유발되었다는 기재가 전혀 없습니다.”


“즉, 비뇨기과적인 노동능력상실이 실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원인이 이 사건 교통사고에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고, 아울러 이 사건 교통사고와 일말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신경정신과의 감정 결과와 같이 이미 정신과적 노동능력상실에 포함된 것이어서 이를 따로 손해배상의 근거가 되는 중복 장해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며, 나아가 이것은 적극적인 손해로서의 위자료에 감안할 사안도 아닌 것입니다.”


“정형외과적인 노동능력상실은 상극건의 부분 파열과 관련한 영구 장해 17%라는 것이지만, 이에 대한 신체감정보완과 최초의 감정 결과를 비교하여 살펴보면, 그 발생 원인이 이 사건 교통사고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난 후 한참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발생한 병증을 어떻게 교통사고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정형외과적인 노동능력상실율은 최초의 감정 결과에서 나온 것과 같이 경추부의 염증으로 국한되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는 한시 2년의, 노동능력상실율 14%에 불과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경정신과적 노동능력상실 역시 신체감정보완과 최초의 감정 결과에 의할 때, 원고의 기질적인 문제와 지병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고의 경미함에 비하여 지나치게 중한 장해가 발생하였다는 점, 오랜 기간 동안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전혀 병증의 호전이 없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더더욱 기질에 의하여 나타난 특수한 증상이라고 볼 여지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 노동능력상실율은 감정 결과를 최대한 수용하여 한시 4년의, 노동능력상실율 24%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기질적인 특성 등을 고려한다면 이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50% 정도의 규모로 제한됨이 옳을 것입니다.”


“아울러 비뇨기과적인 노동능력상실은 일실수입에 고려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위자료에도 고려되지 못할 것임은 이미 설명한 것과 같은 바, 그러한 이유에서 원심의 위자료 판단은 그 절반 이하로 감액됨이 옳을 것입니다.”


“또한 치료비 역시 준비서면에서 증거와 함께 자세하게 주장하였던 것과 같이 객관적인 여러 자료에 의할 때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불과 750만원 정도의 규모에 불과하고, 피고가 이 모두를 병원에 수납한 상태이므로, 결과적으로 그 청구한 치료비 손해 전부가 기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이러한 의견의 대립 양상은 이미 서로가 재판부에 제출한 각 준비서면에서 치열하게 다투어졌던 것이어서, 재판장 역시 같은 논리를 되풀이하는 양측 소송대리인의 입장 차이에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감정 결과와 관련한 피고 측의 주장은 전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정 의사가 누구의 편을 든 것도 아닌데, 피고 측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그 감정 내용을 폄하하는 식으로 변론 및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고의 소송대리인이 박봉수 변호사의 주장에 대하여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하기는 그럴 만도 한 것이 11억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는데, 박봉수 변호사의 논리대로 손해배상금이 산정된다면, 오히려 1심의 결과보다 훨씬 낮은 액수의 판결을 받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소송은 이기고 지는 문제인데, 11억원을 청구해서 1심에서 2억 5,000만원을 승소했다면, 그것도 거의 패소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다시 항소심에서 불과 1억 5,000만원 정도로 그 판결 금액이 내려간다면, 패배도 그런 패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봉수 변호사로서도 원고 소송대리인의 말을 맞받아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원고의 입장이 안 되었다고 하더라도, 소송은 소송입니다. 아무리 보험업자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통계소득과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아니한 노동능력상실율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무리한 청구인 것이고, 이것은 불복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입증의 문제인 것인데, 감정을 내세워서 입증하지도 않은 손해를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치료비와 위자료의 문제 역시 공제와 책임제한의 논리에서 벗어 날 수가 없는 것인데, 원고 측은 그 어떤 반박논리도 없이 무작정 이미 정산한 치료비를 1심이 판결한 그대로 유지하여 달라고 주장하고 있고, 위자료 역시 구체적인 산정의 근거가 없이 1심이 판결한 금액 그대로 유지하여 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판결을 통하여 적정하게 치료비와 위자료 청구의 당부를 판단하실 것이지만, 지금 원고 측의 주장은 너무나 무리한, 비약적인 논리로서의 주장이자 청구인 것이 분명합니다.”


서로에게서 나온 말이 이쯤이다 보니, 재판장은 원고와 피고의 소송대리인을 자제시키며 이만 변론을 종결하자고 한다. 어차피 더 진행해봐야 서로가 같은 논리의 말을 되풀이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을 터다.


“양측의 주장이 모두 다 어느 정도의 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감정 의사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느 일방에게 유리한 감정을 한 것은 아닐 테니 최대한 감정 결과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판단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피고 측 주장의 감정과 관련한 여러 의학적인 견해 역시 전혀 무시할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므로, 고심을 하여 감정 결과를 어느 정도로 반영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손해로서의 치료비와 위자료 역시 나타난 증거를 토대로 다시 한번 1심의 판단의 당부에 대하여 숙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측의 소송대리인들께서는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제 양측이 변론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다 변론을 하신 것 같은데, 이만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기일을 잡아도 되겠지요?”


박봉수 변호사와 원고 측 변호사는 모두 “예”라고 하며 재판장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사실 증거조사를 모두 마쳤고, 비록 평행선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서로의 입장과 주장이 명확하여진 이상, 이제 공은 재판장에게로 건너가 판단의 문제만이 남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항소심에서 증거조사가 쉴 새 없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된 사건입니다. 그러나 비록 서로의 증거와 주장이 명확하게 정리되기는 하였지만, 그 의견 차이가 매우 심하고, 판단하여야 할 여러 쟁점이 많은 사건이므로, 선고기일은 넉넉하게 잡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변론이 진행되어야 할 부분이 발견된다면 변론을 재개할 수도 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또한 쌍방 소송대리인께서도 추가로 주장하거나 보충하실 법리나 증거가 있다면 선고기일 전까지 참고서면을 제출하셔도 되고, 필요하다면 그 주장의 정도에 따라 변론이 재개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선고기일은 2012년 1월 10일 오전 9시로 정하고, 그 이전에 필요하다면 굳이 변론기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정기일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니, 최대한 재판부의 의견에 충실하게 따라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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