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 대한 예의, 그리고 나에 대한 예의 2-10
2-10
일렁이는 바람이 먼산으로부터 가을향을 몰고 온다. 나는 반쯤 차창을 내린 중형 승용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다. 택시공제조합의 보상팀 부장이 꼭 보여드릴 것이 있다고 해서 따라나섰던 참이다.
“저기 저 사람이 보이지요? 저 사람이 이 소송의 피해자입니다.”
경산시 자인면의 저주지를 낀 작은 집에서 한 사람이 구부정하게 걸어 나왔다.
그는 카키색 잠바에 솜바지를 입은 채로 저수지 쪽으로 향했다. 아마 저주지 주위를 한 바퀴 돌 생각인 모양이었다. 무표정한 인상의 그는 권태로운 듯 잠바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저렇게 산보를 나옵니다. 저는 가끔씩 와서 저 사람을 보곤 했습니다. 외상의 흔적이나 거동이 불편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저 사람은 신체가 아니라 정신이 망가진 것이지요. 지켜본 결과가 그래요.”
“비록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주 멀쩡한 상태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 처음으로 이곳에 왔던 것이 벌써 몇 년 전이지요. 그러다가 지금 보시는 저 사람의 규칙적인 습관을 발견하게 된 것이고요.”
“처음에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갈수록 화가 났지요. 이제 겨우 40대에 들어선 젊은 사람이 스스로 인생을 포기한 듯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어느 정도에서 그쳤다면 이해할 수가 있었을 텐데, 벌써 교통사고가 난 지 여러 해가 흘렀어요.”
“지금까지도 저렇게 산다는 것은 죄악입니다. 몇 번을 고쳐 생각해보아도, 저 사람은 처음부터 제대로 살 의지가 없었던 것이고, 그러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그것을 빌미로 스스로에게서, 가족에게서, 그리고 사회에게서 스스로를 놓아 버린 것이라는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살다 보면 원망되는 일이 많겠지요. 또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이 얼마나 버겁게 여겨지겠습니까? 그래도 저런 것은 아니지요. 그는 자신이 태어나서 고통받게 된 것에 대하여 모두를 원망하며 그 모두에게 벌을 세우고 있는 것이에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장을 한 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저만치 걸어가는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사람의 표정 없는 얼굴 속에는 어떤 원망과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사실 저도 저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유독 저 사람의 일에 대해서만 까칠하게 굴었던 것이거든요. 사실 직원들은 결제라인에 있는 제가 실무자를 제쳐두고 저 사람을 관찰하려고 직접 나선 것이나, 소송을 직접 챙기려고 나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나는 이 소송과 관련하여 이 사람과 미팅을 가졌던 순간마다 ‘참으로 피곤한 사람이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갔을까? 이래서야 이 자리라도 보전할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어쩌면 이 사람은 이 사건에서만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 뿐, 사실 다른 모든 일에서는 원만한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 사무장님께서 어떤 세월을 살아오셨는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어렵고 절망스럽기로 치면 저를 따라올 만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싶어요.”
“저는 삼 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집안에서 멀쩡한 것은 저뿐이에요. 아버님과 어머님은 모두 장애를 가지셔서 평생을 땅 한 평도 가져 본 적이 없이 거리에서 풀빵을 팔며 살았습니다. 두 동생도 모두 소아마비를 가진 탓에 지금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고요.”
“저는 평생을 원망하였지요. 도대체 나는 어떤 잘못으로 인하여 이러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까? 삶에 있어서 가족은 변절할 수 없는 우군이고 버팀목인 것일 텐데, 왜 나에게는 이토록 무거운 짐으로만 남아 있을 뿐일까 하고요.”
“이것이 운명이라면, 이런 비정상적인 운명을 정한 하늘을 찢어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지요. 가족이니까요. 생명이니까요. 미운만큼 사랑하니까요. 사랑은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인관관계에 소극적이었지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면, 그만큼 그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니까요. 그것이 제가 무너지고 절망할수록 더욱더 삶과 공부와 일에 손을 놓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저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요.”
“제가 보기에 저 사람은 자기 혼자밖에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자예요. 그것도 아주 비뚤어진 이기주의자예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모든 것에서 손을 놓아버린 채, 자신을 향했던 가족들과 사회의 모든 관심을 원망하며, 그 모두를 벌세움으로써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으니까요.”
“결국 저 사람도 힘들고 괴롭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하여 그가 버린 소중한 사람들과 인연들이 더욱 힘들고 괴롭게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 사람을 결코 용서할 수가 없었어요. 보상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보상을 함으로써 그가 모두를 상대로 가한 형벌이 얼마나 부당하고 모순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부장은 나에게 어떤 말을 듣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그가 바라보는 이 사건에 대하여, 그리고 이 사건과 관련한 그의 진실에 대하여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자신의 태도를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진심을 호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서 말이다.
오후 4시의 태양이 저수지에 차갑게 내려앉았고, 그만큼이나 내 마음 역시 무겁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