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나의 독백
저버렸지만
저버린 것의 행복을 바래요
그러나 사실
그것은 내 덜 아프게 살겠다는 페르소나였소*
저버렸으니
꼭 저버린 만큼 불행하세요
그래요 사실은
그것이 내 비난받을까 싶어 아니 드러냈던 아니마였소*
하지만 실토하자면
실은 나도 아직 잘 모르오
가면이랬던 게 진면목일지
진면목이랬던 게 가면일지
- 손락천
*페르소나(persona)와 아니마(anima)는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설명하는 무의식 중의 한 종류.
*사람이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무의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발견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그러하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의식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성격의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체를 형해화한 모순은 그 자체로서도 문제였지만, 그 모순에 대한 반발이 더 큰 모순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일리는 있으나 확신할 수 없는 가설들이 쏟아져 상쟁함으로써 인간과 인간 세계가 더 왜곡되어 버렸고, 그러한 왜곡이 현실사회를 더욱더 완악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확신할 수 없는 존재는 자신을 자존감 대신 상실감으로 채운다. 그리고 그렇게 길을 잃은 존재는 존재의 이유를 상실함에 따라 멋대로 스스로와 세상을 재단한다. 하여, 그러한 존재는 스스로로 하여금 바람직하지 못한 일탈이나 범죄에 이르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를 관조하는 관점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그것을 역리로 사용하여 스스로를 해체하는 수순으로 몰고 가는 것이 과연 철학이나 인문학이 지향하여야 할 길인지를.
존재와 삶의 이유를 고양토록 하지 않은 채, 만연히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풀이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현실을 방치하는, 안일하고 소모적이며, 무책임한 행동인 것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