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6/10

6화. 청년학우회 창립

by 은명

6화. 청년학우회 창립


대성학교가 시설과 교원과 교육과정이 잘 갖추어진 모범적인 민족학교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자, 안창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청년훈련기관 조직에 발 벗고 나섰다. 무실역행을 훈련덕목으로 내세우고 이를 준수하는 인격 운동으로 청년운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다. 이들이 훈련된 신민新民이고 국권을 회복시켜 나가는 주체들이다. 다만 이 청년훈련기관은 신민회 회원들의 동의와 후원 그리고 참여가 필요했다. 청년학우회 조직 작업이 잘 추진되고 나면 최남선과 차리석에게 이 일을 위임하고, 자신은 아내 혜련과의 약속대로 미주로 떠날 생각이었다. 떠나는 길에 연해주 이강과 안중근을 만나고 북만주 밀산현과 시베리아 지방을 두루 거쳐 한인사회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1909년 5월, 대성학교 봄맞이 운동회가 열리던 날, 안창호는 차리석과 안태국을 뒤뜰로 불렀다.

“어떻소. 이제 우리가 추진할 일 하나가 더 남았는데....” 안창호가 말을 꺼냈다.

차리석이 말을 받았다. “형님, 청년운동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압니다. 이승훈 선생을 비롯하여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안창호가 말했다. “학교가 배움의 터라고 한다면, 청년단체는 민족혼으로 무장하여 역사적인 삶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훈련단체라 할 수 있소.”

차리석은 확인이라도 하듯 안창호의 말을 되뇌며 말했다. “건전인격은 역사적 자각, 사회적 자각을 전제로 하는군요. 막연한 배일 운동이나 비분강개가 아닌, 청년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각과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구국 인격체로 성장해야 완성된 신민이 된다는 말씀....”

안태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리석의 말을 이었다. “학교 교육의 연장선에서 덕, 체, 지를 훈련한다는 말씀이군요.”

안창호는 자신의 평소 생각을 확인이라도 하듯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나는 청년들이 자유 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인격을 무장하길 바라고 있는 것이오. 미국 사회에서 느낀 것이지만 힘은 역시 개인의 무실역행에서 나옵디다. 노동에 필요한 가치란 자강, 충실, 근면, 정제, 용감 등이 그 핵심이라오. 나는 그것을 가르쳤소. 우리 청년단체는 인격훈련과 단결훈련의 장이 될 겁니다.”

차리석이 문득 말을 꺼냈다.

“새 나라를 이끌어 갈 새 국민. 이른바 신민 양성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양계초가 지적한 대로 다수 인민들은 ‘비웃고 욕만 하는 소매파, 사물의 구별이 없는 혼돈파, 내 것만 챙기는 위아파, 팔짱끼고 그저 죽기만 기다리는 오호파. 별 볼 일 없는 내가 뭘 하겠냐는 포기파, 마냥 때만 기다릴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시파’가 되어 일본 힘에 강제된 세상을 그저 탓하겠지요.”

안태국도 양계초가 했던 말의 핵심을 꿰듯 차리석에게 공감하며 말했다.

“양계초는 강력한 입헌군주국을 수립하면 인민을 질타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죠. 하지만 우리 도산은 자유 인민이 주인이 되는 좋은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권에 대한 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안창호는 두 동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두 분 생각이 어쩌면 그리도 내 생각과 일치한단 말이오?”

차리석이 웃으며 말했다. “도산 형님이 귀국한 이래 지금까지 우리를 가르치신 셈이죠. 하하하.”

안태국도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차리석의 말을 받았다.

“하하. 그렇습니다. 도산의 강연에 우리는 이미 도산 제자요. ‘우리가 주체적 시민으로서 공동체 정신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인간의 참된 권리다.’ 이것이 도산 말씀의 핵심이지요.”

안창호는 기분이 좋았다.

“어쨌든 내 말에 공감해 주니 더없이 고맙구려. 그렇다면 앞으로의 청년단체 이름을 뭐라고 이름 지으면 좋겠소? 내가 미주에서부터 생각해 온 명칭이 있긴 한데.”

“그 명칭이 무엇입니까?” 차리석과 안태국은 동시에 물었다.

안창호가 말했다. “청년학우회, Young Korean Academy.”

차리석이 되뇌었다. “청년학우회! 좋은데요?”

차리석과 안태국은 서로 마주 보며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고는 차리석이 먼저 말을 꺼냈다. “미래 일꾼들은 독립군이거나 독립군 지도자들일 테지요. 하지만 학문 수련도 끊임없이 해야 하니 청년 기초훈련단체로 청년학우회 명칭도 좋게 느껴집니다.”

안태국도 이에 동의하면서 말했다. “도산의 단체 설계는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치밀하고 명확합니다. 운영 청사진은 다 나와 있을 터이지요?”

안창호는 안심하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무튼 고맙소. 나를 알아주는 두 분 동지가 있어 내 신이 납니다. 점진학교 때도 그랬지.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더니! 입회 절차나 조직 운영 등 세부적인 내규 사항은 토론하면서 만들어 갑시다.”

세 사람은 안창호의 청년학우회 기초 설계를 바탕으로 토론을 이어갔다. 차리석이 메모지를 들고 개요를 써나갔다.

“회원은 통상회원과 후원회원으로 구분한다. 통상회원은 전국의 만 17세 이상 중학교 정도의 학력을 갖춘 품행이 단정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의 덕, 체, 지 3대 훈련을 위해 후원회원은 첫째, 덕육 분야에서 강연, 품행의 감독과 지도, 근검 저축의 장려, 청년 학생의 가능한 공공사업의 실행 등을 추진하고, 둘째, 체육은 보건위생 훈련과 수영장이나 육상경기장이 갖추어진 운동장 설비를 갖추고, 야구나 축구 경기처럼 순회하며 치를 수 있는 스포츠를 육성한다. 셋째, 지육은 기관 잡지를 간행하여 구독하게 하고, 유익한 서적을 출판하며, 도서관과 열람실을 설립하여 독서를 권장한다. 또한 토론회와 강연회를 열며, 박물관을 설립해 나간다.”

안태국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의견을 개진했다. “도산, 대성학교처럼 윤치호 영감을 윗자리로 추대하면 일제 통감부 통과에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안창호가 동의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오.”

차리석이 결론지어 말했다. “형님께서는 이 설계대로 우선 일을 추진하시지요. 저는 이 내용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발기인 명단부터 작성하고 사람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안태국도 말을 꺼냈다. “나는 마침 최남선이 동경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고 하니 만나서 기관지를 의논해 보겠소.”

안창호가 감동해서 말을 받았다. “고맙소, 그렇지 않아도 최남선을 찾아 나설 생각이었소. 그가 『소년』이란 잡지 출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소. 그 잡지를 청년학우회 기관지로 해야겠소.”

차리석이 말했다. “아, 최남선 동지! 그가 취지문도 쓰면 좋겠습니다.”

안창호는 생각해 둔 바가 있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아니오. 취지문은 내 이미 신채호에게 구두로 약속해 놓은 바가 있소. 그의 글에는 힘이 있고, 명문장에다 명필이오.”

안태국이 말했다. “동감이오. 신채호의 글을 읽고 가슴 뛰지 않는 젊은이는 아마 없을 것이오.”

안창호가 말했다. “내가 노래를 지을 생각입니다. 청년학우회 정신을 담은 가사로.”

차리석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예전 생각이 난 듯 말했다.

“형님, 아주 좋습니다. 형님이 예전에 점진학교 교가를 지어 부르게 했을 때, 처음에는 모두 입이 안 떨어져 어색해하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전부 신이 나서 입을 모아 불렀지요.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그 교가를 애창하고 있는 듯합니다.

안태국도 한마디 거들었다. “단체 노래는 언제나 힘을 북돋우지요. 없던 힘도 저절로 솟아나게 한단 말이지. 노동요같이 말이오. 하하.”

세 사람은 1909년 8월 중에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여 창립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안창호는 청년학우회 취지서를 신채호에게 맡겼다. 신채호는 “조상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받아 그 단점은 버리고 그 장점은 살려가며, 동포를 위하여 앞장서서 위험을 극복하고 적을 쫓아낼 자는 우리의 청년이다.”라고 하면서 “뜻있는 청년들이 하나의 큰 정신 단체를 조직하여 마음과 힘을 일치하며 지식을 나누고 실천하고 전진을 모색하고 고락을 함께하여 풍속의 퇴폐를 막고 앞날의 행복을 찾아 개혁적인 새로운 청년으로 하여금 사회를 개혁하여 새로운 터전을 구축하게 할 것이다.”를 내용으로 취지서를 써 내려갔다. 신채호의 취지문은 『대한매일신보』와 최남선이 발행한 잡지 『소년』에 게재되었다. 안창호는 만족했다. 이를 본 인사들도 만족해했다.

안창호는 청년학우회 노래를 지었다.


“무실역행 등불 밝히고 깃발 날리는 곳에

우리들의 나갈 길이 숫돌 같도다.

영화로운 우리 역사 복스러운 국토를

빛이 나게 할 양으로 힘을 합쳤네.”


모든 준비가 끝나자 1909년 8월, 평양지역 청년학우회 창립대회가 대성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윤치호, 장응진, 최광옥, 차리석, 안태국, 채필근, 이승훈, 이동녕, 이회영, 김도희, 박중화, 전덕기 등 12명이 발기인에 서명하였다. 대부분 신민회 회원이자 대성학교 교사들로 구성된 특별회원들이었다. 청년학우회가 전국으로 확대되어 나갈 채비를 갖추는 가운데, 평양 ‧ 안주 ‧ 의주 ‧ 정주 ‧ 곽산 ‧ 선천 ‧ 용천 ‧ 삼화 등에 청년학우회 연합회가 발기할 준비를 마쳤다. 전국적으로 300명 이상의 청년들이 가입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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