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9/10

9화. 북경에서

by 은명

9화. 북경에서


1910년 5월 하순, 정영도를 데리고 북경에 도착한 안창호는 역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강을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 양손을 맞잡고 반가움과 안도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안창호는 이강이 무사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래, 자네가 고생이 많았네.”

이강의 얼굴이 순간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중근을 그렇게 보내게 되어 애통할 따름이네.”

잠시 침묵하던 안창호가 목이 멘 채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아닌가? 여하튼 자초지종을 말해보게. 작년 1월 순종과 이토의 서도 순시 때 황제에게 화가 미칠까 하여 재명이 의거를 말렸다네. 그 거사를 자네가 성사시켰지 않은가? 다만 중근이....”

이강이 마음을 추스르고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기세등등한 이토 히로부미가 나대다가 스스로 기회를 만든 게지. 그런데 재명이가... 그래, 재명이는 결국 이완용을 처단했지.” 이강은 이재명 거사 소식을 알고 있었다. “내 얼마 전에 이갑 형님을 자금성에서 만났었네. 종호, 종만이 형제와 일행이 돼서 의주에서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넜다더군. 일본 군복을 입고 기차를 타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면서. 재명이 거사 소식을 그때 들었다네. 놈들이 재명의 목숨도 앗아가겠지...?”

이강이 말끝을 흐리자 안창호가 대답했다. “음, 내가 헌병대에 갇혀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라네. 그 일로 안태국과 노백린이 잡혀갔던 모양일세. 숙청단. 젊은 동지들의 희생도 컸다네.”

이강은 그제야 안창호의 몸을 살피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도산도 왜놈 헌병대에 잡혀가서 모진 수모를 당했다면서? 몸은 괜찮은 게야?”

안창호는 이강의 위로에 마음이 다소 진정되었다.

“내 몸이야 뭐... 필순이가 있어서 이태준의 치료와 간호를 받았지. 사실은 자네 연통을 받자마자 나는 영도를 시켜 서류뭉치들을 태워버렸다네. 우리들의 계획이 들어있는...” 안창호가 말끝을 흐렸다.

“그래, 잘했네.” 이강은 안창호를 잠시 다독이고는, 이내 안중근 거사의 전후 과정을 보고하듯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대동공보사는 미하일로프라는 러시아인 변호사가 신문사 대표로 있었네. 사실상의 물주는 최재형 선생이지만 러시아법에 따라 대표는 러시아인이 맡았네.”

“음, 그랬군.”

“우리는 비밀리에 이토 처단 작전을 세웠지. 마침 안중근이 단지동맹을 맺고 거사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네.”

“우리라니? 그래서?” 안창호는 작전에 가담한 사람들이 소수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강은 손사래를 쳤다. “정재관 동지랑 같은 자리에 있었네. 이 일로 지금은 말도 마세. 토착 청년들이 자기들을 따돌렸다고 심통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하네.”

“짐작이 가네. 그래서?” 안창호는 말을 재촉했다.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대기하고, 우덕순과 유동하, 조도선은 한 정거장 전, 채가구에서 이토를 맞이할 준비를 했네. 그런데 이토가 하얼빈으로 도착한 거야.”

“그럼 우덕순과 유동하 등도 모두 체포되어 넘겨졌겠군.”

“그렇다네! 2월 14일 선고 공판이 있었네. 중근은 사형, 우덕순은 징역 3년, 유동하와 조도선은 징역 1년 6월.”

이강은 계속했다. “안중근이 러시아군에 인도되면 당연히 동청철도를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올 거라 기대했었네. 러시아로 오면 미하일이 변호사로 나서고 최재형 선생이 어떻게든 자금을 풀어 해결해 보려고 작전을 세웠지.”

안창호는 당시 상황을 가늠하며 말했다. “그런데 거사현장에서 일본군에 인도된 것이군.”

이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렇다네. 악랄한 놈들이 안중근 처형을 서둘렀다네. 나는 안중근을 뒤따라왔지. 북경에서 영국인 국제변호사를 샀지만 소용없었네. 최재형 선생이 정근과 공근 두 동생을 여순감옥으로 면회 가도록 주선했다네.”

안창호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중근의 유해는 어찌 되었는가?”

이강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잠시 뒤 입을 열었다.

“놈들이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하지 않았다네. 우리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른다네. 지독한 놈들, 시신도 내주지 않는 악랄한 놈들일세. 그래서...!”

“그래서?”

“가족들이 하얼빈 공원에 유해 없는 무덤과 임시 비석을 세운다고 했다네. 중근이 조국이 독립되면 고향에 묻어달라고 했다면서.... 하얼빈 당국이 협조하고 나섰다네. 수억의 중국인이 감히 못 한 일을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안중근이 중국 청년들의 잠을 깨웠다고!” 이강은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안창호는 안타까움에 혼잣말처럼 운을 뗐다. “유해를 꼭 가족에게 넘겨 드려야 할 텐데.”

“마침 유동하의 부친 유승렬 선생이 중근의 어머니와 부인을 연해주로 모셔갔네. 꼬르지포에서 그분의 도움을 받고 있겠지. 그분은 그곳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라네.”

“음, 거사에 모두 한마음이라니. 그나마 위로가 되는 소식들이군.” 안창호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중근의 형제들은 연해주로 떠난 모양일세. 최재형 선생이 안중근 가족의 뒤를 봐주고 있을 것이네.”

이강이 안중근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자 안창호도 걱정이 앞섰다. “일본이 가만 놔두지 않을 터인데....”

“거처를 옮겨야 하네.” 이강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이갑 형님과 의논해 보겠네.” 안창호는 안중근 가족의 일을 이갑과 의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영도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혼잡한 역사 주변을 살폈다. 세 사람은 자리를 이동했다. 안창호가 이강에게 물었다. “정래, 자네가 안중근을 처음 만났던 이야기를 좀 해주게. 궁금하구먼!”


공립협회 연해주 특파원으로 파견된 이강은 안창호가 소개했던 안중근을 만나보고자 했다. 안중근은 최재형 의병부대의 핵심인물이 되어있었다. 최재형은 크라스키노(연추)의 최고관리 도헌 직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도헌 영감으로 불렀다. 안중근은 이강이 조직한 공립협회 블라디보스토크지방회에 가입했다.

1908년 7~8월 신아산 전투 이후 안중근이 풀이 죽어 공립협회지방회 사무소를 방문했다. 안중근은 이강에게 하소연하듯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형님, 제가 무척 괴롭습니다. 국내 진공 작전 중 신아산 전투에서 일본 놈을 포로로 잡았는데, 그놈을 국제법에 따라 인도적으로 풀어준 게 화근이오.”

이강도 안타까워 말을 받았다. “포로를 왜 풀어줬다는 거요? 그만한 위험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거요?”

“내가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일로 모두 나를 따돌립니다.” 안중근은 괴로워하고 있었다.

“동의부대는 어쩌고 있는 거요?” 이강은 궁금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안중근이 입을 열었다.

“최재형 영감은 어차피 이범윤 관리 의병부대와 잘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긴 이범윤은 왕정복고파요. 처음부터 지향점이 달랐지요. 최재형 영감님 신세를 지면서도 어찌나 관리 행세를 하던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돕다가 패배해 흩어진 의병들을 도헌 영감이 환대하고 말까지 밥을 먹이지 않았습니까? 그런 공은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행세했죠.”

이강은 잠자코 침묵하며 안중근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그때 이위종이 페테르부르크에서 1만 루블 자금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큰소리를 치지는 못했을 거요. 하긴, 관리 출신 양반에게 돈은 생명줄이니. 그때 동의회 총재는 1만 3천 루블을 기부한 최재형 영감이, 부총재는 1만 루블을 가져온 이위종이 되었죠. 그래서 이범윤 관리 영감이 화가 났습니다. 결국 이위종이 부총재 자리를 이범윤에게 양보하고 예하 회장에 임명되었지요. 어쨌든 국내 진공 작전은 내가 전제덕 휘하 우영을, 엄인섭이 좌영을 맡으면서 동의부대를 이끌고 전적을 올리긴 했으나 실수라면 실수를 저지른 셈이니....” 안중근은 말끝을 흐렸다.

이강이 물었다. “그렇다면 이범윤과 최재형은 갈라설 수밖에 없겠구려. 그런데 이범윤은 이범진 공사와 6촌 관계라지요?”

안중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러시아공사 이범진의 아들이 이위종이고 이범윤은 6촌 아저씨입니다." 안중근은 이강에게 하소연하면서 마음이 조금 풀린 듯 다시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형님, 저는 도헌 영감의 신세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무장세력들을 다시 규합하여 동의부대를 키워서 전투에 나설 것입니다.”

이강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놈들 혼내주는 방법은 의병부대만이 아니라 의열단 활동도 있고, 다중의 저항운동도 있는 법이니, 나는 무조건 중근 아우 편이오. 삼수, 갑산 일대의 홍범도 의병부대 활약도 대단하다던데. 우리 힘을 냅시다.”

안중근은 최재형의 지원을 받는 가운데 1909년 2월 7일 크라스키노에서 동의부대 의병들 11명을 모아 단지동맹으로 독립 의지를 불살랐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 행차 소식이 날아들자 대동공보사 중심으로 긴급 회의가 열렸다. 안중근, 이강, 정재관 등은 최재형을 모시고 은밀하게 거사를 계획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이 거사가 국제 재판으로 갈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하여 그 당위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주도면밀하게 모의했다. 안중근이 행동파를 자처했다. 최재형은 러시아 변호사이자 대동공보사 대표인 미하일로프를 앞세우고, 이강은 북경으로 가서 영국인 변호사를 교섭하여 국제 재판에 대비했다. 1909년 10월 26일, 거사는 하얼빈역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에 체포된 안중근과 우덕순, 유동하, 조도선 등은 일본군에 넘겨져 여순 감옥으로 압송되었다. 여순과 대련은 러시아가 조차하다가 러일전쟁에서 패배하여 일본에 넘긴 지역이다. 러시아군이 안중근을 일본군에 인도하는 바람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제 재판에 넘겨질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 빗나가 애초의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안중근은 여순 감옥 독방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안중근은 이 저술에서 일본을 지배 대국으로 만들려는 이토 히로부미의 야망과 모순을 고발하고자 했다. 또한 조선 ‧ 청국 ‧ 일본 3국이 정치, 경제적으로 대등한 협력관계로서 평화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안중근은 천주교 신자이자 평화주의자였다. 안중근이 꿈꾼 세상은 동양 3국의 대등한 협력관계로 문명국가를 이루고 서양 제국주의를 견인하여 인류평화로 나아가는 세상이었다. 안창호와 안중근이 공감한 민족 비전은 문명 부강한 나라, 모범공화국을 수립하여 장차 전 인류의 완전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야욕을 꺾고,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이러한 꿈을 짓밟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할 기회가 오자, 안중근은 그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국내외 여러 곳에서는 안중근 거사를 일본의 기를 꺾는 기회로 삼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강, 정재관, 김성무 등 미주 공립협회 인사들과 양성춘, 최재형, 정순만 등 러시아 한인사회 지도자, 그리고 러시아인 미하일로프와 안병찬 등 국내외 변호사들. 이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세계 평화를 이슈로 삼아 여론재판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러나 1910년 3월 26일, 일본은 중국 여순 감옥에서 안중근을 서둘러 처형했다. 이 사건 이후 러시아 한인사회는 계파 갈등을 겪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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