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나부터 힘을 기르자 #3/10

3화. 제중원과 친구 김필순

by 은명

3화. 제중원과 친구 김필순



하루는 언더우드가 밀러 교장을 통해 안창호를 제중원으로 불렀다. 당시 미 북장로교에서 파견된 에비슨이 1893년 제중원을 인계하여 경영하고 있었다. 언더우드는 1885년 입국 초기에 정부가 선교 활동을 불허하자, 제중원을 거처로 삼고 제중원학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쳤다. 제중원은 을지로 입구와 을지로 2가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언더우드는 부드러운 미소로 안창호를 반기며 옆에 같이 있던 김필순을 소개했다.

“어서 오세요. 창호 군! 이 친구는 김필순입니다. 황해도 장연 송천리에서 제가 데리고 상경했습니다. 타향살이에 두 사람이 서로 의지가 될 것입니다.”


김필순(1878~1919)은 황해도 장연 송천리에서 김 판서로 이름난 집안의 손자였다. 김필순의 맏형 김윤방은 송천리 마을을 찾아온 서상륜 형제를 극진히 예우하고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 서상륜 형제는 중국어 한글 번역본 신약성경을 가지고 왔다. 김윤방과 서상륜은 1883년 5월 송천리에 소래교회를 설립했다. 이 교회는 우리나라 최초로 자생적으로 설립된 교회다. 1895년, 서상륜은 언더우드를 초청해서 동생 서경조와 소래교회 교인들이 모두 세례를 받게 했다. 대 가문을 형성하고 있던 김 판서 댁 어른들 대부분 이때 장로회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서경조는 후일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 목사 7인 중 한 명이 된다. 김 판서 댁에서 묵던 언더우드는 김필순의 영민함을 보고 그의 어머니께 필순을 서울로 데려가 신학문을 배우게 하겠다고 청했다. 언더우드는 김필순을 데려와 자신의 거처인 제중원에 살게 하면서 배재학당에 입학시켰다.


안창호와 김필순. 두 사람은 서로 뜻이 맞았다. 안창호 출생일은 11월 9일이고, 김필순은 6월 25일이다. 김필순과 안창호는 독립협회, 신민회, 해외 기지 개척 등 질풍노도 시기의 모든 경험과 뜻을 같이 나누는 지기지우가 된다.

김필순은 배재학당을 다니면서 영어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그래서 제중원 의사 에비슨 박사 밑에서 진료와 강의 시간에 통역을 맡았다. 또 해부학 교과서를 번역했다. 김필순은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899년 제중원 의학도로 정식 입문했다. 제중원은 1904년 남대문 밖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미국인 자선가 기부자의 이름을 기념하여 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의학교로 각각 개명하였다. 1906년 김필순은 외과 총론, 화학, 해부생리학, 내과학 등 많은 책을 번역하였고 세브란스의학교 저학년 강의도 담당했다. 그리고 1908년 6월,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당당히 외과 의사가 되었다. 의학교 교수직인 병동과 외과 부의로 임명되었고, 간호원 양성소에서 그가 번역한 해부생리학 교과서로 강의했다. 또 에비슨 교장과 나란히 해부학과 생물학을 하루 3~4시간 가르쳤다. 1910년에는 세브란스의학교의 매니저로 임명되었고, 이듬해는 병원 외래 책임자가 되었다. 1911년 제2회 졸업식에는 부의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렇게 바쁜 중에도 그는 많은 의학 교과서를 번역했는데, 현재 해부학, 화학 및 외과 총론 교과서가 남아 있다.


구세학당과 배재학당은 정동길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의 제창으로 근대화 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안창호는 『독립신문』을 꼼꼼히 챙겨 읽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도 읽었다. 선진 근대 문물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그 책 안에 가득했다. 서당에서 공부한 유학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책 속에 펼쳐져 있었다. 안창호는 그것들을 읽고 또 읽으며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필대은 형님이 강조한 근대적 문명개화의 세계라는 말인가? 한 나라의 왕비가 시해당해도 정부는 속수무책이고, 의병들이 대신 궐기하며 죽어가도 정부는 고종을 아관파천하고. 이렇게 힘이 없는데 나라가 유지되겠는가? 그렇다! 우리가 달라지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 우리가 깨어나야 한다.’ 1895년에 출판된 『서유견문』은 수많은 애국 청년들이 다투어 읽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기행문이라 할 수 있다. 『서유견문』에는 서양의 지리와 환경은 물론, 국가와 국민에 대한 개념 등 각종 근대적 제도에 관한 내용과 서양 여러 나라의 문화와 풍습 등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안창호는 이 책을 읽고 문명개화의 방법과 근대적 제도개혁의 문제에 깊이 빠져들었다.


어느 날, 안창호와 김필순은 『서유견문』에 담긴 내용을 토론했다.

안창호가 흥분 조로 말했다. “우리는 스승을 만났어. 신학문을 배우려고 고향을 떠나왔는데 이 책 속에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모두 있네. 그렇지 않은가?”

김필순도 맞장구쳤다. “서울이 딴 세상인 줄 알았는데 세계를 품은 이 책이야말로 정말 대단해.”

안창호가 말했다. “맞아. 문명개화가 바로 새로운 힘이야! 문명개화한 서양 이야기를 자세히 보면 자본과 지식이 밑바탕이란 것을 알 수 있어. 여기서 자본은 공공의 산업자본을 말하고 지식은 생산과 관계되는 과학이나 기술과 같은 근대적 지식이야.”

김필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주들이 가진 자본을 공장으로 투자하게 만들어서 여럿이 일을 나누고, 함께 먹고살 수 있는 대량 생산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 문명개화다! 이런 얘기지?”

안창호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음... 그런데 말이야, 지주가 이익을 독점해서는 안 되겠지. 그러니까 국민의 재산권과 생명권 등이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할 거야.”

김필순이 물었다. “그런 힘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안창호는 필대은을 생각하며 의연하게 대답했다. “국민이 이런 지식을 배우고 새롭게 깨어나야 해. 서유견문에서 지적해 놓은 대로 민권 계몽운동이 필요해.”

김필순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백성이 자각해야 관료들이 정신을 차린다. 음, 백성이 자각하는 것이 힘이군.”

김필순의 말에 안창호도 손뼉을 치며 결론을 냈다.

“나부터 시작하는 거야. 내가 시작을 안 하면 아무도 안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서당 공부할 때 유학에서 그렇게 배웠지 않나? 격물치지성의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하하하.”

김필순도 유쾌하게 거들었다. “맞아. 우리가 소싯적에 서당에서 배운 진리가 이렇게 관통될 줄이야. 아무튼, 배워야 한다니까! 하하하.”

“필순이 자네는 서양의학을 공부하고 있으니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이 힘을 기르는 것이겠지. 내 자랑스러운 형제여.”

“하하하. 그럼 자네는?” 김필순이 웃으며 유쾌하게 말을 던졌다.

“나? 음, 글쎄....”


안창호는 기회를 꼭 만들어서 유길준 선생처럼 서양의 근대적 제도들을 직접 보고, 경험하고, 배워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유길준은 안창호가 평생 존경했던 스승 가운데 한 명이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안창호에게 그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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