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예수교학당 입학
청일전쟁이 끝나가자 평양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곡산지방으로 피난길을 재촉했던 안창호네 가족도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안창호는 삼촌을 설득하여 서울로 상경했다. 필대은과 깊은 대화를 나눈 이후로 안창호는 어떻게든 서울로 가서 신학문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안창호는 미 북장로교에서 파견된 언더우드가 1886년에 고아들을 위해 설립한 예수교학당에 입학했다.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조건이었다. 안창호는 1년 만에 초급 보통반을 졸업하고 상급반으로 올라가 조교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안창호는 하루하루 새로운 지식에 감탄하면서 세상의 이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정세에도 눈을 떴다.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기를 잡게 되자 우리나라 개화파들은 다시 기지개를 켰다. 일본의 내정간섭 속에서 김홍집, 박영효 연립 내각은 갑오개혁을 단행했다.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정치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혁했다. 또 봉건적 관습과 신분제를 철폐했다. 그러나 반발세력이 만만치 않았다. 박영효는 다시 몸을 피했다. 그리고 1895년 8월 20일 새벽, 일본 낭인들이 왕비 민씨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왕비 침소인 경복궁 후원에 있는 건청궁까지 난입하여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고 전국적으로 의병들이 궐기했다.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아관파천. 민씨 세력은 이번엔 러시아의 힘을 빌렸다. 이들이 김홍집을 비롯한 내각 요인들의 처단에 나섰기에 3차 개혁은 끝을 맺지 못했다. 인천항에서 정박하며 기회를 엿보던 러시아 군함에서 120여 명이 상륙했다. 우리나라 정부에 친러 세력이 형성되었다. 고종은 1896년 2월부터 친러파에 둘러싸여 1년 동안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렀다. 갑오개혁 세력도 무너졌다. 갑오개혁 내무대신 유길준은 화를 피해 구사일생으로 다시 일본으로 망명했다. 개화파 유길준은 1895년에 『서유견문』을 출판했고, 서재필을 불러들였다. 서재필은 1896년 4월 『독립신문』을 발행했고 7월에 독립협회를 결성했다.
어느 날 필대은이 안창호를 찾아왔다. “창호, 그동안 많은 공부를 했군.”
안창호는 너무나도 반가웠다. “형님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필대은은 다소 지친 듯이 보였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지.”
필대은은 그동안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청일전쟁 중에 황해도로 갔다가 동학농민군 잔당에 합류되어 농민군 참모로 일본군과 싸웠던 이야기였다.
안창호는 다짐을 두기라도 하듯 필대은에게 말했다. “형님, 이제 어디 가지 말고 나와 함께 신학문을 공부하면서 살아요.”
“그렇게 하겠네. 그런데 서울은 어떤가? 평양과는 다르지?”
“네, 사뭇 달라요. 얼마 전, 궁에서 왕비가 시해를 당했어요. 일본 낭인들이 그랬대요. 그래서 전국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궐기했는데, 왕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상태라고 해요. 뒤숭숭해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요?”
안창호는 답답한 심정이었다. 선배에게 묻고 싶고, 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필대은은 선배답게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국내 정세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내부 권력다툼에 외세가 개입할 빌미를 준 것이지. 백성을 깨우치는 일이 한시라도 급해. 때마침 갑오개혁 세력이던 유길준 선생이 미국에 있는 서재필 선생을 귀국시켜 독립협회가 결성되었어. 서재필 선생은 갑신정변 때 당한 반역죄에서 마침 사면되었지. 그 양반이 『독립신문』을 창간했더군.”
안창호가 뭔가 생각난 듯 필대은의 말을 중단시켰다. “독립신문이요? 아, 저도 어깨너머로 봤어요.”
필대은이 웃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서재필 선생은 우리 주권을 침탈한 서양 열강과 인권유린을 일삼는 관료지배층을 질타하셨지. 백성들 스스로 깨어서 충군 애국과 자주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선생의 뜻이야.”
안창호는 고개를 끄떡끄떡했다. “주권독립, 개화자강, 민권운동을 일깨우고 있는 신문이군요.”
필대은(1875~1902)은 황해도 안악 출신이다. 그는 개화 자강, 자주독립의 사상을 갖고 있던 신흥 상인 층에 속한 청년 애국지사로, 외세 열강의 흐름을 꿰뚫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사조까지 통찰하고 있던 청년 선각자였다. 관서지방과 평양과 서울을 왕래하면서 의약품을 팔았다. 필대은은 자신이 터득한 역사적 삶의 지혜를 후배 안창호에게 전수했다. 말귀를 잘 알아듣던 안창호는 필대은을 통해서 도전하는 삶을 꿈꾸고 이를 실행했다. 필대은은 청소년기 안창호에게 큰 유산을 남겼다.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해준 것이다. 필대은은 안창호에게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으며, 안창호는 그에게서 큰 힘을 얻었다. 안창호의 권유에 따라 필대은 역시 신학문 과정에 입문하고 기독교 세례도 받았다. 안창호는 이후 『독립신문』을 챙겨 읽으면서 서재필 선생을 꼭 만나 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안창호와 필대은은 독립협회에 가입했다. 필대은은 평양지부를 결성해야 한다면서 상투를 자르고 복색을 단정히 하며 새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관서 지역 지인들을 찾아 나섰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