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샌프란시스코 국민회관으로 전보가 접수되었다. 원동 통신원 현순이 국내 ‘3.1 만세운동’ 소식을 전했다. 국내 만세운동은 청년들의 계획대로 차질 없이 일어났다. 며칠 후 「기미 독립선언문」이 신한민보사에 도착했다. 안창호와 홍언은 상기된 얼굴로 이 독립선언문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안창호는 최남선과 이승훈 선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승훈 선생의 품이 그리웠다.
안창호는 중앙총회장 후임 백일규와 회동하고, 김규식을 후원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현순에게 보고하고, 이승만 ‧ 정한경 ‧ 서재필과 북미와 멕시코 각지에도 알리기로 했다.
3월 15일. 긴급 국민회중앙총회가 열렸다. 회의장에 이대위가 황진남을 데리고 참석했다. 마침 샌프란시스코에 함께 있던 강영소와 강영대 형제도 참석했고, 안창호가 상해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정영도와 임준기가 나타났다. 박영노와 김항주, 김태진, 송종익, 정인과, 곽림대, 김종림, 황사선, 양주은, 홍언 등도 참석했다. 워싱턴과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승만, 정한경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박용만 역시 하와이를 떠날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대조선독립단 하와이지부 선포식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안창호는 홍언과 사전에 준비해 둔 <삼일운동을 계승하자>는 중앙총회 포고문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마음 아픈 비애에 싸여 있다가 이제 비로소 큰일을 일으켰으니, 이는 <기미 독립선언>이다. 이 소식을 받고 기쁨과 슬픔이 아울러 나와 피가 끓으니 실로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우며, 국내의 2500만 겨레가 함께 일어나는 이때 느낌이 간절하여 정신이 막막하니, 이는 성공의 길이 힘들고 고생스러움을 염려하는 까닭이다. 우리의 소망이 조국광복이요, 부르던 것이 인권 자유가 아니었던가. 그 정신의 결정으로 오늘에 거룩한 3월 1일이 생겼으며, 이것이 우리 민족의 정신 부활이요, 자손만대의 기초를 세움이라. 독립 선언하기 전에는 우리가 국내 동포의 기밀한 공작과 연락이 없었던 까닭에 주저하던 때도 없지 않았으나 오늘은 전체 민족이 일어나서 생명을 바치는 때이니 아무것도 주저할 것 없이 대한민족 된 자 일제히 일어나서 가진바 생명, 재산, 기능 모든 것을 바치고 용맹하게 나아가기를 맹세하자.” (1919년 도산의 연설 참조)
홍언이 포고문을 읽어 내려가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 결의안 핵심 내용을 발표했다. 첫째, 미주 한인들에게 재정공급의 책임을 강조하고 의연금 모금의 목표액을 7만 6천 달러로 한다. 둘째, 필라델피아에 외교 통신부를 설치하여 서재필을 외교 고문으로 임명하고 이승만이 이를 돕는다. 중앙총회는 이에 매월 800달러를 경비로 지원한다. 셋째, 안창호를 상해로 파송하여 임시정부 수립에 봉사케 한다.
긴급총회에서 황진남(1897~1970)과 정인과(1887~1971)가 안창호의 수행원으로서 원동 통신원으로 임명되었다. 안창호는 정인과를 중국 흥사단 조직에 필요한 인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안창호는 서둘렀다. 홍언, 송종익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 안창호는 이것저것을 점검하고 챙기면서 바쁜 일정을 보냈다. 안창호는 특히 가족과 헤어질 일이 제일 힘들었다. ‘아내 혜련에게 또 무어라 말할 수 있으리. 이번에 떠나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조국독립이 눈앞으로 다가왔으나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며칠 동안 혜련의 눈치만 살폈다. 그런데 혜련은 뜻밖에도 동지 부인들과 대한부인친애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아 독립의연금 모금에 앞장서고 있었다. 예컨대 화요일, 금요일은 고기 없는 날, 수요일은 간장 없는 날로 정해서 식료품비를 절약하고 가정용품을 절약하여 각 집 식구마다 독립운동 의연금을 모으고 있었다. 나중에 이 여성 조직은 여러 지역이 통합하여 8월 5일, 대한인국민회 산하 대한여자애국단으로 발전하고, 상해 임시정부로 의연금을 보낸다.
안창호가 어렵사리 떠난다는 말을 하자 혜련은 덤덤하게 응수했다. “당신은 큰일을 하는 분이니 사사로운 집안일은 걱정하지 말고 떠나세요.” 안창호는 혜련의 말에 크게 감동했다.
중국으로 떠나는 날, 백일규가 중앙총회 의연금 모금액 6천 달러를 안창호에게 건넸다. 그리고 파리에 가 있는 김규식 앞으로 중앙총회 대표위임장과 함께 경비 3500달러를 보냈다고 전했다. 또 3월 29일 윌슨 미국 대통령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를 비롯한 영국, 이탈리아, 중국 등 파리평화회의 각국 대표들 앞으로 ‘절대적 독립을 원하는 한인의 의지와 김규식 대표의 출석권 허락’을 요구하는 장문의 공한도 보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