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나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소 #1 (하)
1화. 민중혁명, 대한독립만세 (하)
1화. 민중혁명, 대한독립만세 (하)
4월 1일, 안창호 일행은 하와이로 가는 산타클루즈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4월 9일, 여객선은 호놀룰루에 정박했다. 안창호 일행은 하와이에 있는 작은아버지 안교점 댁에서 며칠간 머물기로 했다.
안창호는 칼리히로 박용만을 찾아갔다. 호놀룰루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칼리히 한인 마을은 매우 아름다웠다. 이날 날씨가 맑아서 멀리 쪽빛 바다 빛깔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해안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은 배를 타고 항해 내내 태평양 바다를 가로지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15년 전 이민 초기만 하더라도 한인들은 최악의 노동조건으로 사탕수수 농장 땡볕에서 일했다. 7,375명이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희망과 절망이 공존했을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호놀룰루 한인사회는 조금씩 안정되었고 아름답게 발전했다. 이민 10년. 초기 이민 청년들은 일본에 무너져 가는 조국을 벗어나 하와이에서의 노동을 미국 유학의 절차로 삼았다. 하와이 한인사회 지도층은 때론 분열했고, 때론 뭉쳤다. 그러면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날까지 온 것이다. 교회도 큰 몫을 했다. 한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고된 삶을 위로받으며 근대 계몽 정신을 몸에 익혔다. 교회 건물은 때로는 학교로, 때로는 친목회 공공장소로, 때로는 독립운동의 결사 장소로 주저 없이 기능을 발휘했다.
박용만은 안창호를 반겼다. 총회장과 부회장. 각자의 행보가 달라서 1915년 8월 말 하와이 순방 이후로 그들은 서로 통 만나지 못했었다. 총회장 안창호는 1917~1918년에 멕시코를 장기간 다녀왔고, 부회장 박용만은 상해와 만주를 다녀왔다. 박용만은 그동안 하와이에서 겪은 일과 사정을 안창호에게 토로했다.
박용만은 1917년 7월 상해를 방문하고 동제사 동지들과 교류하면서 <대동단결선언>에 서명한 뒤 하와이로 돌아왔다. 하와이에서는 이승만이 하와이국민회지방총회를 장악하여 사유화하고 재정을 남용하고 있었다. 박용만은 1918년 7월, 칼리히연합회를 조직하고 조사에 착수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마침 1916년에 망명한 노백린을 만나 그와 뜻을 같이했다. 박용만과 노백린은 1918년 11월 『태평양시사』를 창간했다. 박용만은 <무오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호놀룰루 유력지에 실었다. 1919년 2월 하순, 국내에 3.1운동이 일어날 것을 전해 듣고 3월 3일 호놀룰루 한인자유교회에서 대조선독립단 하와이지부를 발기했다. 대조선독립단 하와이지부는 350명을 규합하여 3월 30일에 공식 출범했다. 노백린은 별동대 주임으로 군사 활동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태평양시사』를 대조선독립단 기관지로 하고, 이 단체를 만주 독립군과 연계하고자 했다.
안창호가 물었다. “오, 노백린 형님이 유학생 신분으로 이곳에 계신다는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저한테는 천군만마지요. 큰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이승만과는 어떻게든 중재를 서 보려고 하지만.... 괜한 마음고생이지요.” 박용만의 얼굴이 환해졌다.
안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흘이 지났군요. 새 조직 대조선독립단 말이오. 언제든 무력에 나설 수 있는 청년 350명. 참으로 대단하오.”
“형님은 언제나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죠. 가끔 혼도 내시나요? 하하.” 박용만이 유쾌하게 응수했다.
“진심이오. 박 동지는 네브라스카에서도 그렇고 하와이에서도 끊임없이 군단을 조직하고 있지 않소?” 안창호는 박용만을 독립전쟁 준비에 있어 최고의 선구자로 꼽았다.
“형님은 비행학교를 설계하고 계시지 않나요? 공군력, 첨단 독립전쟁 준비. 조선으로서는 꿈같은 일입니다. 형님 계획이야말로 언제나 선구적이지요.” 박용만도 안창호를 ‘독립전쟁 준비를 설계하고 있는 최고의 지도자’로 생각했다.
“비행학교는 북미실업회사가 잘되어야 가능한, 이를테면 자본력이 관건이오. 오로지 자력으로 준비해야 하니까. 비행 전투사를 꿈꾸고 있는 청년들은 꽤 있소.” 안창호에게는 비행학교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본력을 확보하는 일이 큰 부담이었다.
“형님은 강해진 일본이 조만간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 것으로 예상하고 계시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용만은 안창호의 남다른 예지력에 늘 감탄해 왔다.
“연합군! 한국은 그때 미연합국으로 참전하는 것이오. 그러려면 공군력은 필수지요.” 안창호는 소신을 피력했다.
“참전국이 되려면 독립국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참, 3.1만세운동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지요? 무력 진압에 사망자 수도 속출하고 있을 테고, 잡히는 대로 감옥에 가두겠죠....” 박용만은 당장 독립국 승인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안창호도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탄압과 구속을 피해서 상해로 망명하는 청년들이 많을 것이오. 그들을 만나서 독립국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일꾼을 양성하고, 그들을 훈련해야지. 그래서 내가 상해로 가려는 것이라오.”
“형님, 흥사단 말씀이죠? 미주 흥사단은 자금을 만들고, 상해 흥사단은 인재 자본을 일으켜 정부에 공헌하는 인력으로 삼으시려는 것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제가 잘 이해하고 있지요?” 박용만은 안창호가 존경스러웠다. ‘이분은 차원이 다른 지도자다.’
“언제나 아우님은 제 마음과 머릿속을 훤하게 보고 있는 듯하오. 하하. 어쨌든 지금이야말로 대동단결이 필요한 때요.” 안창호는 대동단결이라는 말을 하면서 왠지 계면쩍었다. ‘대동단결. 누구나 쉽게 뱉을 수 있는 말이지. 대동단결하려면 대한 사람은 대한 사람의 말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안창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박용만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형님이 미주를 떠나면 이승만은 국민회 조직을 자기중심으로 바꿀 것입니다. 하와이처럼. 지금껏 일구어 온 형님 공헌을 무시하려고 수단 방법을 다 쓰겠지요. 걱정됩니다.”
“아우님, 내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어차피 국민회는 공조직으로 커왔고, 누가 어떤 이름으로 개조한들 모두 조국의 독립운동을 하자는 것이니, 지도자로 나선 사람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합니다.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을 반복하다 보면 조국은 해방의 날을 맞게 될 터. 그러면 되는 것 아닐까요? 인생은 유한하고 또 무상합니다.” 안창호는 유쾌하게 말했다.
“형님은 진정한 지도자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속에서 불이 납니다.” 박용만은 진심이었다.
“나는 상해로 가서 실업을 일으키고, 만주 독립군을 위한 기지를 개척하고, 또 정부 일꾼을 양성할 것이라오. 어떤 인재냐 하면, 사실 해방된 새 조국에서 다방면에 각기 유능한 인재를 키워야 하지 않소?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필요하면 의열단도 지원할 것이오.” 안창호는 포부를 밝혔다.
“아, 형님, 그렇군요. 무력은 군사력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지금은 의열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일본군을 자극하고 이슈를 만들어 내는 의열 활동! 안중근처럼, 전명운, 장인환처럼...! 형님을 믿습니다. 저도 상황을 봐서 중국으로 건너갈지 모르겠습니다. 동지들이 있는 곳으로!” 박용만은 ‘나도 중국으로 거점을 이동할 때가 왔다.’라고 생각했다.
“조건이 허락하면 중국에서 봅시다.” 안창호가 다짐을 두었다.
안창호는 호놀룰루 하와이국민회 회관에서 정원명 총회장을 방문하고 중국으로 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정원명(1881~1942)은 평양 출신으로, 1905년 하와이이민으로 자리를 잡은 경제통이다. 1909년 김유순, 강영소, 이재수, 민찬호, 안원규 등과 한인식산흥업회를 조직하여 사장에 취임했고, 1910년 이후로 줄곧 하와이국민회를 떠나지 않고 지도자로 조직을 지켜왔다. 안창호는 본국 동포들이 목숨을 내놓고 만세를 외치고 있으니 미주 한인들은 의연금 모금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고, 정원명은 이에 공감했다. 정원명은 이후 1921년 임시정부를 후원하기 위해 호놀룰루 한인상업회를 조직하고 재무를 담당했다. 1925년, 미주를 방문한 안창호와 함께 임시정부재정후원회 하와이지부를 결성하고 『단산시보』를 발행하여 의연금 모금에 솔선하였다. 1928년에는 안창호의 취지에 따라 한족통일독립당(유일당 하와이지부) 촉성회 준비위원으로 활동한다.
안창호는 또 하와이 한인교회로 황사용을 찾아갔다. 황사용은 멕시코 방문 때 안창호와 동행했던 터라, 두 사람은 마치 헤어졌다 다시 만난 연인처럼 서로를 반겼다. 안창호는 중국으로 가는 이유부터 자세히 털어놓았다.
“이번에 상해에서 청년 후배들이 큰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 크게 감동했소. 최고기관의 영수가 누가 될지는 몰라도 독립선언서들을 살펴보면 국민주권과 공화제는 확실한 듯하오. 더 이상의 분열은 없겠지. 이념통합이라는 가장 어려운 산을 넘은 것이오.”
황사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번 기회로 일치단결되면 좋겠습니다. 흥사단으로 어떤 인재들이 모여들지 기대됩니다. 정치 상위조직과 국민훈련조직, 형님의 역할이 크겠습니다.”
“이번에 중국에 상륙하면 땅부터 살펴볼 것이오. 만주 독립군과 함께 지낼 땅 말이오.” 안창호가 결연하게 말했다.
황사용이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상해 청년들이 형님을 그냥 놔두겠습니까?”
안창호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모든 일은 하늘의 뜻이오. 하늘나라 운동, 하늘의 이치를 회복하는 일. 즉, 독립투쟁! 그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겠지.”
황사용은 잠시 눈을 감았다. ‘주여, 도산을 지켜주소서. 대한의 독립을 위해 주님께서 뽑으셨으니 험난한 여정이 될지라도 진리와 정의가 왜곡되는 일 없게 하소서.’
안창호가 귓속말하듯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우리는 호주를 경유해서 홍콩으로 가오. 혹시나 해서 에둘러 가는 것이지.”
“호주요?”
“호주에서 최정익을 잠깐 만날 것이오. 북미실업회사 일로 작년부터 박영순과 호주에 가 있다오.” 안창호는 비밀을 다루듯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군요. 호주까지 미주 영역을 확대했군요. 대단하십니다.”
“최 사장의 사업역량이 대단한 것이지요. 호주라니, 실은 나도 놀랐다오. 혹시 기지 개척이 가능한지도 알고 싶고, 한인들도 만나보고 싶고. 하지만 이번에는 최 사장만 잠깐 만나려고 하오. 수년간 중국에 있을 거라고 보고는 해야지.”
황진남과 정인과는 안창호와 함께 중국으로 가는 여정에서 하와이를 거치는 것은 당연한 코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와이를 떠날 때 왜 굳이 호주를 거쳐 홍콩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야 하는지 궁금했다. 안창호는 배에 오른 후에야 일행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내가 말이오, 국경을 넘나들 때 철저히 익힌 바가 있다오. 어디나 일본 밀정이 나타나더란 말이지. 더욱이 이번에는 목적지가 상해요. 중국은 미주와는 다른 나라요.
아주 딴판이겠지. 제국들의 침략으로 조차지로 분할되었으니,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오. 조계란 조차 국 간의 국경이나 다름없소. 틈새에 일본 밀정들의 활약이 대단할 것이오. 미국을 떠나 상해에 도착하는 한인을 놈들이 가만 놔둘 리 없지.”
이 말을 들은 황진남과 정인과는 안창호의 치밀한 행보에 감탄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