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나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소 #3 (상)

3화. 상해 홍십자 병원, 김창세 (상)

by 은명

3화. 상해 홍십자 병원, 김창세 (상)


안창호 일행이 현순의 안내로 상해에 도착한 때는 5월 25일이다.

안창호가 현순에게 말했다. “홍십자 병원으로 데려가 주시겠소?”

“병원이요? 어디 몸이 불편하십니까?” 현순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하. 그런 건 아니오. 동서 김창세가 홍십자병원 의사로 있다오. 일단 입원실을 숙소로 빌려야겠소. 하하”

“아! 예.... 저는 또 걱정했습니다. 숙소는 제가 묵고 있는 곳에 일단 모시려고 했는데....”

“괜찮소. 일단 병원 사정을 봐야 하니 그리로 갑시다.”


안창호 일행이 허름한 중국인 복장으로 변복한 채 홍십자 병원으로 들어섰다. 이미 홍콩에서 안창호가 보낸 전보를 받은 김창세가 바삐 마중했다. 옆에 간호복을 입은 근당 선생의 둘째 딸 임신일도 따라 나와 인사를 했다. 안창호는 키가 큰 김창세를 올려다보며 악수를 청했다. 김창세는 흰 가운을 걸치고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오, 처남! 내 사진 속에서 이미 얼굴을 익혔다오. 우리 처제 정실도 잘 있지요?” 안창호는 반가운 마음으로 김창세와 마주했다. 김창세는 안창호와는 15년 차이가 났다. 둘은 초면이었다.

“이렇게 뵙다니요!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지요? 미주를 떠난 지 거의 두 달이 되었으니 몸도 많이 상하셨을텐데...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김창세가 앞장섰다.

안창호는 뒤따라가며 간호사 임신일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근당 선생이 떠올랐다. ‘근당과 붕어빵이군, 빼닮았어.’ “오, 그대가 근당 선생의 따님? 이렇게 만나게 되니 고맙고 반갑소.”

“예, 둘째 신일입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안색이 수척하십니다.” 임신일이 맑은 목소리로 걱정스레 말했다.

김창세가 서둘렀다. “우선, 뒤쪽에 조용한 입원실을 마련했습니다. 일단 입원하시지요.”

“그럴까? 으흠! 참, 같이 온 동지들을 소개하겠소.” 안창호는 일행을 소개했다.


안창호는 절차를 밟고 입원했다. 현순은 본인의 숙소로 돌아갔다. 안창호는 황진남과 정인과에게 따로 여관비를 주면서, 상해 인사들과 교류하며 특기 사항을 보고하라고 했다.

안창호의 상해 도착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청년들은 하루바삐 안창호를 만나고 싶어 했다. 현순이 홍콩에서 출발할 때 이미 사발통문을 보낸 것이다. 상해 교민들은 안창호 도착 다음 날 영국 조계 북경로 예배당을 빌려 환영회 일정을 잡아 놓고 있었다. 안창호가 상해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안정근은 급히 서병호, 선우혁과 연락을 취했다. 서병호는 처제 김순애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은 안창호가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오후로 병원 방문을 예약했다.


도착 다음 날, 5월 26일 오후. 안창호는 환영식 연설을 준비하느라 명상에 잠겨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김창세가 손님 몇 명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안창호는 잠시 얼떨떨하게 그들을 맞이하다가 안정근을 알아보고는 일어나 손을 잡았다.

“아니, 정근 아우님이 아니신가?” 안창호의 시야가 흐려졌다.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느라 눈가가 붉어졌다.

안정근도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형님, 너무나 뵙고 싶었습니다. 정말 어디 아프신 건 아닙니까?”

안창호는 미소를 지으며 목이 잠긴 소리로 안중근 가족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리고 목릉을 추억했다. “10년 세월이 지났군!”

옆에 서 있던 선우혁이 인사를 했다. “저는 선우혁입니다. 대성학교를 나왔습니다.”

“오, 선우혁 동지. 그렇지 않아도 만나고 싶었다오. 현순 동지가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동생 훈이는 잘 있소? 형님 곁을 떠나지 않던 그 꼬맹이. 105인 사건 고문 후기를 썼다지?” 안창호는 어렴풋이 대성학교 교실이 떠올랐다.

“기억나십니까? 대성학교. 선생님이 잡혀가시자 훈이는 떼를 쓰며 대성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마침 제가 신성중학 교사로 발령이 나서 훈이를 신성중학 3학년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때 105인 사건으로 저와 훈이가 같이 잡혀갔습니다.”

안창호는 선우혁의 아픈 기억들을 같이 떠올렸다. “놈들이 어린 훈이한테까지 몹쓸 고문을 했던 거요. 나쁜 놈들!” 안창호는 혀를 찼다. 용산헌병대에서 당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훈이는 지금 어디에 있소?”

“아, 금릉대학 의학부 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도착 소식을 아직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보고 싶소.”

이번에는 서병호와 김순애가 인사를 했다. “오, 송암! 대성학교는 어쩌고 상해로 왔소? 허허. 신한청년당. 정말 대단한 일을 했소.” 안창호는 농담을 했다. ‘헌병대에 잡혀가던 때 송암에게 대성학교를 부탁한다고 소리쳤었지.’

서병호도 그때 기억이 솟는 모양이었다. “형님, 그때 이후로 뵙지 못하다가 이렇게 뵈니까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저는 지금 학생입니다. 1914년에 망명해서 금릉대학 신학부를 곧 졸업하게 됩니다.”

안창호는 문득 1910년 4월 7일 새벽, 독립문 밖 송암의 부친 서경조 목사 집을 떠올렸다. 지금 떠올리면 추억이지만, 당시엔 숨 막히도록 아찔했던 기억의 한 조각. 안창호와 신채호, 김지간, 정영도가 일본 밀정을 따돌리기 위해 연출했던 장면은 안창호 생애에서 최고 명장면 중 하나였다. 서 목사는 행주 나루에서 목선을, 형님인 서상륜은 장연에서 중국인 소금 배를 타게 했다. 그리고 안창호가 탈출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 김필순의 치밀함. 그들 모두 안창호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선생님,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김순애가 미소 띤 얼굴로 끼어들었다.

“오, 누구?” 안창호는 서병호와 김순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서병호가 대신 대답했다. “순애 처제입니다. 필순 형님의 둘째 여동생, 지금은 김규식 형님의 아내입니다.”

그제야 안창호는 신민회 시절, 김형제상회 다락방을 왔다갔다 하던 어린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친구가 김규식의 아내가 되었단 말이지!’

“오, 그때 남대문 혈전에서 부상병을 나르던 씩씩한 소녀로군! 지금은 김규식의 아내라고? 반갑소. 그리고 고맙소. 필순 소식은 잘 아오?”

“네, 막내 필례 부부가 치치하얼에 있는 오빠 병원에서 열심히 돕고 있답니다.”

안창호는 문득 김필순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쳤다. 치치하얼로 옮겨 병원을 내고 어머니와 필례 부부를 불러 기지 개척에 나선 일은 김규식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제 상해로 왔으니 조만간 치치하얼을 방문하리라. 깜짝 놀라게 해야지!’ 안창호는 소년처럼 마음이 설렜다.

“참, 마리아, 마리아는 잘 있소?” 안창호는 군대해산 혈전을 치를 때 부상병을 돕던 꼬마 소녀 마리아가 생각났다.

“네, 마리아는 정신여고에서 만세운동을 하다가 주동자로 잡혀 남산 왜성대로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심한 고문을 당해 불치병을 얻은 채로 서대문 감옥으로 이송되었나 봅니다. 걱정입니다.” 김순애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문? 불치병? 이것이 다 무슨 소리요?” 안창호가 당혹해서 서병호를 향해 물었다.

서병호가 말했다. “형님, 동경고등여학교를 다니던 마리아가 ‘2.8 독립선언문’ 낭독 현장에 있다가 일본 경찰에 붙들렸습니다. 그리고 곧 훈방 조치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600명의 청년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니까 놈들이 깜짝 놀랐겠지요. 마리아는 그 선언문을 국내로 가져가라는 재일조선청년독립단 지도부의 지시를 받고 귀국을 서둘렀답니다.”

김순애가 서병호에게 확인받듯 말했다. “그때 여운형 당수의 지시가 있었죠. 저랑 형부랑 부산으로 가서 ‘동경선언문’을 전달받은 뒤 황해도 재령과 신천 등지에 산재한 청년들을 만나 만세운동을 조직하고 상해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 날짜가 2월 17일이었지요?”

서병호가 기억을 더듬었다. “맞아요. 순애 처제는 마리아와 차경신을 만나서 언니 함라가 교편을 잡고 있던 광주 수피아여고로 갔습니다. 거기서 선언문을 복사해 대구와 광주 일대에 전달했지요.”

선우혁도 안창호를 바라보며 그때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꺼냈다. “저도 그 선언문을 서울에서 받아서 김철에게 건네고 관서와 관북 일대 청년학우회 동지들에게 전달하면서 의주를 거쳐 상해로 왔습니다.”

서병호가 말했다. “김철은 동경선언문을 최남선에게 전달하면서 국내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라고 전달하고... 그렇게 해서 종교계 원로들이 이승훈 선생님을 중심으로 뭉쳐서 <기미독립선언문> 발표 날짜를 결정하고 상해로 집결했습니다.”

선우혁이 말을 이었다. “국내는 고종황제 장례식에 맞춰 전국에서 추모행렬이 서울로 집결하고 있는 상태였고, 거사는 장례식 이틀 전, 3월 1일 낮 12시 파고다 공원으로 정해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숨 가쁘고 가슴 뛰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의 무용담을 듣고 있던 안창호가 신한청년당의 거국적 만세운동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에 감탄했다. “참으로 훌륭하오. 그러니까 오늘 나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은 모두 거사 기획에 참여한 보석 같은 존재, 행동대원들이군요! 그런데 마리아, 마리아가 걱정이군.”


- (하)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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