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나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소 #2 (하)
2. 현순의 두루마리 (하)
2. 현순의 두루마리 (하)
현순이 대답했다. “4월 12일이니까 다음 날이 되겠군요. 임시의정원 결정 사항들을 유인물로 만들어 청년들에게 국내로 알리라고 넘겼습니다. 국내에서는 3월 17일 법관 출신 검사 한성오 집에서 홍진, 장붕, 이규갑 등이 13도 대표로 구성된 한성국민대표회를 결성하고 한성임시정부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에서 대회를 소집했지만, 대회는 무산되었습니다. 국민대회에서 국체를 민주제로, 정체를 대의제로 확정한 6개조 약법을 채택하고자 했답니다.”
“국내도 엄혹한 상황에서 큰일을 해냈군요. 우리 민족의 저력이오!”
“그런데...” 현순은 얼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요?” 안창호가 다음 말을 재촉했다.
“13도 대표자 명단은 홍진과 한성오 외에 이규갑, 이교헌, 윤이병, 윤용주, 김규, 김사국, 이민태, 민강 그리고 한남수 등입니다. 이들은 기호 인사들과 연석회의를 열고 수차례 격론 끝에 이승만을 집정관 총재로 임명하여 내각 명단을 상해로 가져왔습니다. 상해는 손정도 의장 주재로 의정원 회의를 소집하고 한성 각원 명단을 검토했습니다. 보고 중에, 홍진과 이규갑이 명단을 성냥갑 속에 감추고 압록강을 건널 때 황옥이라는 일경 소속 한인 경찰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의정원은 일단 한성 정부 내각을 인정하지 않기로 의결했습니다. 그런데 한성은 예정대로 4월 23일에 정부 내각을 선포하였습니다.” 현순은 말하다 말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계면쩍어했다.
“왜 그러시오?” 안창호가 물었다.
“한성 내각 명단에 도산의 직위가...” 현순은 말하기 민망한 듯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안창호가 되물었다. “이 사람 명단은 빠진 것이지요? 잘됐소이다. 하하.”
“아니요, 도산께서 노동국총판으로 임명되셨더군요.” 현순은 안창호의 안색을 살폈다. 도산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명랑한 표정 그대로였다.
“노동국총판이라. 그런 자리는 선출하지 말고 그냥 임명하면 될 것인데 그랬소. 허허.” 안창호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듯한 기분이 들어 헛웃음을 지었다.
안창호가 곤란한 표정을 한 현순을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소이다. 자리야 아무러면 어떻소? 어차피 상해로 가려는 이유가 여러분들을 돕기 위해서니 자리가 없는 것이 더 낫소.”
현순은 그런 안창호가 이동녕 선배와 비교되었다. ‘그분은 자기 뜻대로 정당조직을 주장하다가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바람에 내가 찾아 나서느라 엄청나게 고생하지 않았던가? 여관이란 여관은 다 뒤졌으니...!’
현순이 간신히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성 내각은 상해 의정원에서 검토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안일 뿐이지요.”
안창호는 현순을 위로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튼, 고생들 하셨소. 20년 가까이 우리가 세계로 흩어져 나라를 구해보겠다고 노력한 결실이 상해임시정부 수립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니 앞으로가 중요하오. 목숨 걸고 만세운동을 한 노력이 조국광복으로 열매를 맺어야지요. 그 첫걸음은 최고기관, 바로 임시의정원과 균형을 이룰 임시정부요. 임시정부를 잘 끌고 가야 하오. 물론 상해 임시의정원과 노령 대한국민의회가 통합해서 최고 입법기관을 설치하고, 상해, 한성, 노령 이 세 정부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그렇습니다.”
“총장들은 임시정부 청사로 모였습니까? 부임 말이오.”
“총장들은 애석하게도 상해로 발걸음을 안 하고 있습니다. 통합내각을 구성해야 하는데... 청년들만 애가 타고 있습니다.”
“오, 그렇군요. 청년들이 차장 내각을 가동해서라도 중심을 잡아가야지. 일본이 얼마나 고소해하겠소? ‘식민지 조선놈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고 야유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오.”
“도산께서 당장 내무총장으로 취임하셔서 통합 노력을 해주셔야 합니다. 청년들이 그래야 힘이 나지요.”
“음, 글쎄요. 어쨌든 상해로 갑시다.”
“그렇게 하시지요. 상해로 가는 일반 배편을 마련했습니다. 상선이라 여러 날 걸릴 테지만 그래도 안전하지요. 항구에서는 왜놈 밀정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테니, 프랑스 조계까지는 약간의 변복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합시다. 고국에서 중국으로 밀항할 때 중국인 소금 배를 탄 경험이 있소. 항구란 항구는 다 들립디다.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하하.”
안창호 일행은 현순의 안내를 받으며 길을 나섰다. 홍콩항에서 중국 상선을 타고 장주, 하문, 복주, 온주, 항주, 가흥을 거쳐 상해 푸동 항 귀퉁이에 도착할 때까지 안창호는 많은 생각을 했다. 안창호는 미주를 떠날 때의 각오와는 달리,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잠시 행로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창호는 현순이 알려준 정보를 참고해서 할 일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임시정부를 생각하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임시정부는 단일 조직으로 통합되어 최고기관의 위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우리의 독립운동은 상해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전개할 수밖에 없으니 중국혁명 과정을 주시해야 한다. 산업진흥과 재정확보, 무관 양성과 국민훈련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임시정부는 청년들의 외교 정치 후원, 무장단체 통합과 독립전쟁 준비, 기지 개척 사업, 한중연대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니 우선 청년들부터 만나보자. 할 일이 산더미로군.’ 안창호는 생각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