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나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소 #3 (하)

3화. 상해 홍십자 병원, 김창세 (하)

by 은명

3화. 상해 홍십자 병원, 김창세 (하)


동지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안정근이 나서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자자, 여긴 병원입니다. 저녁때는 환영회가 있으니 지금은 형님을 좀 쉬게 해드려야지요. 이제 형님이 상해로 오셨고, 우리가 있으니 다시 힘을 모읍시다. 참, 형님께서 내무총장이시지!”

안정근이 현안을 일깨웠다.

“내무총장이라.... 나는 뜻이 없소. 내무총장을 하려고 목숨 걸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오.” 안창호가 결연하게 말을 했다. 다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왜들 그러오? 아하, 왜냐고 묻고 있는 거요?” 안창호가 함박웃음을 머금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눈을 마주치며 짓궂게 물었다.

선우혁이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저, 혹시, 한성정부 내각 발표도 들으셨습니까?”

“노동국총판 말이오? 나를 그렇게 속 좁은 사람으로 보면 섭섭하오. 노동국총판 자리도 가당치 않소.” 안창호가 명랑하게 말했다.

서병호가 상기된 얼굴로 나섰다. “한성놈들, 한심하오. 도산 형님을 그리 대하다니! 더구나 상해 내각에서 내무총장으로 선임된 분을 그렇게 홀대하다니. 우리도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서북인에 대한 차별 아니면 도산에 대한 경계심 아니겠소?”

안창호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생각 마시오. 홀대라니요. 나는 아우님들 생각과는 좀 다르오. 내가 미주에서 버틴 일이라곤 노동밖에는 없어요. 부잣집 집사, 잔디 깎기, 중국집 허드렛일, 오렌지농장, 파나마운하 공사장, 수은광산, 멕시코에선 에네켄 농장까지...! 어디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며 돈을 벌었소. 일자리는 어디나 있기 마련이고 노동의 대가는 정직합디다. 돈을 벌고 싶다? 그러면 정직하게 노동을 하면 되오. 노동 속에 진리와 정의가 있다오. 노동을 천시 여기고 외면해 온 것이 우리나라를 부패하게 했고, 무능하게 했고, 산업 발전을 더디게 한 것이오. 이것이 내가 미주에서 깨달은 바요. 한성에서 노동국을 두고 나를 관리로 임명했다면 그리 나쁜 일이겠소?”

선우혁이 수긍했다. “망명객인 우리 모두 성찰이 부족한 듯합니다. 그래도 그렇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안창호가 물었다. “그나저나, 상해 각원 발표가 한 달이 넘었는데 총장들은 왜 오지 않고 있답니까?”

선우혁이 대답했다. “4월 중에 임시정부 발표가 여러 곳에서 있었지만, 시간만 끌고 있을 뿐 사실상 무엇을 어떻게 진행해 나가야 할지 몰라 선배들 눈치만 살피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선생님께서 상해에 도착하실 때만 기다려 왔습니다.”

“제가 조성환 선배를 만나봤지만 역시 답은 없습니다.” 안정근이 말했다.

“혹시 한성과 노령에서 발표된 내각 인선을 어떻게 조율할지 고민하는 것은 아닐까요?” 안창호가 물었다.

“누군가 조율에 나서줘야 하는데....” 안정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우혁이 덧붙였다. “그래서 3차 의정원 회의에서 임시의정원법을 통과시켜 처음 발표된 내각책임제 총장과 차장제를 의원내각제 국무원으로 개편했습니다. 그래도 속수무책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껏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기를 한 달 보름이 다 되어갑니다.” 서병호가 말했다.

안창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본이 무척 좋아하겠습니다그려. ‘고것 봐라. 놈들이 할 줄 아는 게 고작 분열 조직!’ 틀림없이 어디선가 망을 보며 비웃고 있을 거요.”

“한성이나 노령에서도 아무 재촉도 없고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이 이상합니다.” 김순애도 한마디 거들었다.

선우혁이 말했다. “이러다가 3.1운동의 결실이 무산되는 것은 아닐지.... 어떻게 피땀 흘려 일군 운동인데...! 지금 일본은 안동, 봉천 등에서 눈에 불을 켜고 밀정을 풀어 이간책을 쓰고 있습니다.”

안창호가 물었다. “파리에서는 무슨 연락이 있습니까?”

서병호가 상세하게 대답했다. “의정원에서 4월 13일 전보로 김규식에게 외무총장 발령을 내면서 강화회의 전권대사로 임명 조치했습니다. 김규식이 강화회의 한국대표관을 마련하고 파리주재 한국위원부를 설치했다고 독립사무소로 연락이 왔습니다. 위원부에 한국통신부를 두고, 이관용을 부위원장, 황기환을 서기장에 임명한다고 해서 임시의정원이 이들에게 신임장을 발송했습니다.”

“오, 그러니까 의원 내각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군요.” 안창호가 말했다.

“3.1운동 이후 목숨 걸고 압록강을 넘어 상해로 망명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고, 이들이 임시의정원의 각 지역 대표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선우혁이 말했다.

“예수님이 그러지 않았소?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원로들도 중요하지만, 청년들이 더 중요하오. 이제부터라도 망명 동지들 면면을 살펴 적재적소에 인물로 등용하면 되겠소. 3.1운동의 결실을 거둬야지. 아니 그렇소?” 안창호가 말했다.

“원로들에게는 일보다는 명분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누구든 한 분이 나서서 일을 시작하면 될듯합니다. 그러니 도산께서 나서주세요.” 선우혁이 내내 심중에 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나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소. 누가 최고 지도자가 되든 그 밑에서 몸으로 돕는 사람 말이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내가 따로 구상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고 싶다오.” 안창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면쩍었다. ‘결국, 나도 내 직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후배들 앞에서 참으로 부끄럽구나....’

안정근이 작심한 듯 나섰다. “형님, 결국은 형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든 우리는 형님을 따를 것입니다.”

“알겠소. 조금 더 지켜보면서 마음의 결단을 내려보겠소. 일단 사람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안창호가 말했다.

방문 일행의 표정이 밝아졌다.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환영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 그럼 교민 환영식 자리로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선우혁이 앞장섰다.


오후 5시경, 안창호의 여독은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방문 일행들과 병원을 나섰다. 김창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안창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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