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나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소 #6 (상)

6화. 임시정부 청년들 (상)

by 은명

6화. 임시정부 청년들 (상)


두 사람이 돌아간 후 안창호는 수첩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가장 시급한 조치는 역시 정부 재정공급원의 안정이다. 국채 발행. 국채를 발행하려면 인구조사와 인두세 징수는 필수다. 만주 군사력 동원체계, 연통제. 일은 일꾼이 한다. 차장 내각. 의지가 곧은 청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들이 한국독립의 꽃이다. 내가 취임한다면, 나는 차장 내각을 통해서 만국에 독립국 위상을 세우고 반드시 통합내각을 구성해서 물려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다. 내가 할 일은 권력이 아니라 무실역행하는 인재양성이다. 교육에 대한 꿈과 도전이다!’ 안창호는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마음이 평온해 졌다. 그날 밤. 안창호는 차장 내각의 윤곽을 그렸다. 함께 일할 일꾼들. 안창호는 임시의정원에서 발탁된 청년 인재들의 바탕 위에서 차장들을 뽑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8도 인재를 골고루 등용할 계획이었다.


6월 4일, 날이 밝았다. 상해에 도착한 지 열흘이 되었다. 새벽에 잠에서 깬 안창호는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정좌하고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그리고 기도와 명상에 들어갔다. 오늘은 교민단 두 번째 연설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은 정부 수립 이후 독립운동의 실행 방향에 대해 말해야 한다. 총장들의 사전 모임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 하지만 모두 침묵하고 있으니 상해에 와 있는 나라도 입장을 내야 한다. 진행해야 할 일은 많다. 청년들이 내 방침에 솔선하게 해야 한다. 계파, 학연, 지연을 초월하여 대동단결할 수 있는 공감의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명분과 정당성. 그리고 나의 입장과 의견을 밝혀서 총장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안창호는 연설에서 할 말들을 심사숙고한 뒤 사전 연습을 해 보았다.

“자연계의 모든 현상은 힘의 인과관계로 돌아간다. 흥하고 망하는 것은 다 힘의 인과이다. 우연은 없다. 힘의 주인은 누구인가? 힘은 어떻게 생기는가? 건전한 인격과 신성한 단결. 이것이 3.1운동의 정신이다. 일본은 우리의 통일과 단결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틀림없이 우리 청년들이 일구어 놓은 3.1운동과 외교를 방해하여 국제사회의 여론을 분열시킬 것이다. 이런 점을 미루어 짐작할 때 우리의 급선무는 통일과 단결이다. 생각과 전략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한의 독립, 조국의 광복이라는 큰 목적이 같다면 우리는 통일할 수 있다. 그래서 의정원이 있고 정부조직이 있는 것이다. 서로 품고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조국 해방의 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자. 나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다. 조국광복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여러분을 돕겠다.”


오후에 김창세가 잠깐 들어와 여기저기를 진찰하고 나갔다. 오늘 있을 외출 때문이었다. 김창세는 안창호에게 과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조금 있으니 뜻밖에도 현순과 손정도가 병실로 들어섰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석정과 해석 동지 아니오? 어서들 오세요. 운정 동지가 있다면 세 분, ‘입석정’이 발걸음을 하신겝니다! 하하.”

안창호는 이들을 반겼다. 석정은 현순의 암호명이고, 해석은 손정도의 아호이다. 현순이 홍콩발 상해행 뱃길에서 3.1운동을 하던 세 목사의 이야기를 들려준 일이 있었다. 손정도 목사는 입정, 현순은 석정, 최창식은 운정이라고 암호명을 정했었다. 세 사람이 합하면 입석정이다. 세 사람 모두 감리교 소속이다.

“입석정을 기억하고 계셨군요. 운정도 같이 오려고 계획하였는데... 북경에 급한 일이 있다면서 아쉬워했습니다.” 현순이 안창호의 기억력에 감탄하며 말했다.

“도산께서 연설하신다고 상해가 들썩거리던걸요? 하하.” 손정도가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독은 풀리셨습니까?” 현순이 물었다.

“내 평생 처음이라오. 병원에서 느긋하게 보내는 것 말이오.” 안창호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손 의장, 참으로 큰일을 하고 계시오. 이동녕 선배는 이틀 만에 의장직을 사임하셨다지요? 정부조직이 마뜩잖아서 사임하신 건가요?”

“도산께선 이치에 밝으십니다. 어찌 다 그렇게 꿰고 계신지...!”

“미안합니다. 어쩌다 보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든 것뿐이오. 현순 동지는 여독을 푸셨소? 지난번 홍콩에서 볼 때보다 안색이 좋아 보입니다. 그땐 정말 감사했소.”

안창호의 따뜻한 말에 현순은 현재 상황에 대한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당분간 총장들이 임시정부로 결집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의정원 인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요.”

“의정원 의원 심사는 누가 하오?” 안창호가 물었다.

“남형우 선배를 중심으로 김철, 윤현진 등이 애쓰고 있습니다.” 현순이 대답했다.

“오, 그래요?” 안창호는 여운형의 말을 기억했다. ‘남형우. 윤현진 등과 같이 경상도 인맥이고 법률전공이었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손정도가 입을 열었다.

“도산께서 내무총장에 취임해 주시지요. 임정을 선포한 지가 벌써 두 달입니다. 이승만 총리 부임은 감감무소식이고. 이대로 놔둘 수는 없지요.”

“솔직히 나도 선배들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신민회 때 같질 않아서 말입니다. 나도 십 년 세월에 나이를 먹어 기력이 달리나 봅니다. 직접 나서서 그분들을 찾아다녀도 될까 말까 할 일인데.” 안창호가 사정을 털어놓았다.

“신민회, 그 결집력이 참으로 대단했지요. 도산은 지금도 그런 지혜를 발휘하고 관철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국가 위기야 그때보다 지금이 더 심각하니. 제가 도산을 돕겠습니다.” 손정도가 말했다.

현순이 물었다. “오늘 연설에서 도산의 계획을 드러내실 것입니까?”

안창호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역풍이 염려되어 오늘은 그저 국제정세와 일본의 간교함을 강조하고 대동단결을 호소할 생각입니다. 병실에서 내가 설계한 이러저러한 실행계획은 차후에 밝힐 생각입니다. 미주 정한경이 결국 위임통치와 자치론의 정당성 논리를 잡지 『아시아』에 기고한 모양입니다. 자칫 노골적인 분열이 우려됩니다. 그래서 ‘자치론 절대 반대’로 여론을 모아 반일 감정을 고조하고 단결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강조할 계획입니다.”

현순이 한숨을 토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승만계는 왜 그런답니까? 반대 여론에 전혀 마음을 쓰려 하지 않다니.”

“오, 참. 이 병원에 낯선 청년들이 들락날락한답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오늘은 먼저들 나가세요. 저는 뒤에 행사장으로 가겠습니다.”

현순과 손정도는 인사한 뒤 병원을 빠져나갔다.

안창호는 북경로 예배당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1차 환영연설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교민이 모였다. 안창호는 낮고 단호한 어조로 연설을 시작했다.

“나라의 주인은 바로 나, 우리는 알다시피 모두 망명객이오. 남의 땅을 빌려 임시정부를 꾸렸소. 위대한 3.1정신의 후속 조치요. 일본이 그냥 놓아두겠소? 아닐 것이오. 우리 임시정부 젊은이들은 세계를 상대로 외교전에 돌입했소. 장한 일이지 않소? 그렇소. 누구든 개인은 제 민족을 위해 일함으로써 인류와 하늘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오. 일본이 두려워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오.” 안창호는 휘몰아치듯 특유의 문답법으로 연설했다. 연설 마지막에는 주인 정신을 강조했다.

연설이 끝나고 연단을 내려서자 청년들이 악수를 청해왔다. 그들의 눈은 유난히 빛났다. 선우혁이 다가와 유상규와 전재순, 김복형 세 청년을 안창호에게 소개했다.

전재순이 맏형처럼 말했다. “앞으로 저희가 선생님의 안전을 지켜드릴 것입니다.”

안창호는 세 청년과 악수하며 말했다. “그러면 앞으로 동행도 해주시겠소? 내가 상해 거리를 전혀 모른다오. 청사도 가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소.”


- (하)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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