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나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소 #6 (하)
6화. 임시정부 청년들 (하)
6화. 임시정부 청년들 (하)
6월 10일. 안창호는 전재순의 연락을 받고 외출 준비를 했다. 김창세가 노크하며 들어왔다. 뒤따라 신익희와 윤현진이 들어섰다. 뜻밖이었다. 안창호가 직접 찾아가서 만나려고 했던 이들이 먼저 찾아온 것이다.
“어서들 오세요. 마침 외출하려던 참이오.” 안창호가 반겼다.
“어딜 가십니까?” 신익희의 우렁찬 중저음의 목소리가 기분좋게 울렸다.
“그동안 병원에서만 쭉 있었더니 바깥이 아주 궁금하다오.” 안창호가 다정하게 말했다.
“저희가 때를 잘 맞췄습니다. 아니면 못 뵐뻔했습니다.” 윤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치 강영소의 목소리를 듣는 듯했다. ‘그리운 목소리!’
“실은 며칠 전에도 도산을 뵈려고 병원에 왔었습니다. 김 의사께서 ‘도산은 지금 몸이 많이 상하셔서 휴식이 필요하다.’라며 면회를 허락하지 않더군요.” 신익희가 말했다.
“오, 저런, 제가 무례를 한 모양입니다. 미안합니다.” 안창호는 깍듯이 말했다.
“총장 각하. 말씀을 낮추세요. 불편합니다.” 윤현진이 정색을 했다.
“하하. 그리로 앉으세요. 내 말투가 늘 그렇다오. 내 고백하지만 실은 두 분을 찾아 나설 계획이었답니다. 그런데 어쩐 일들이오?” 안창호는 이들이 찾아온 목적이 예상이 갔지만 시침을 뚝 떼고 말했다.
신익희가 운을 뗐다. “실은 도산께서 내무총장으로 꼭 취임해 달라고 부탁드리고자 왔습니다.”
윤현진도 한 수 보탰다. “도산 연설을 경청할수록 동지들은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임시정부에 도산이 꼭 계셔야 한다고 모두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요? 훌륭하신 선배들이 상해로 발걸음도 안 하시는데 제가 나서는 게 옳은 일은 아니지요. 나는 수차례 말했지만, 여러분의 수령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오. 오히려 섬기러 왔소. 임시정부를 힘껏 도울 것이오.”
“그럼, 내무총장 도산께서는 취임하셔서 저희를 섬겨주세요. 저희가 수령이 되겠습니다. 저희가 말귀를 알아채어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익희가 애원하듯 말했다.
“하하하, 좋습니다!” 안창호는 유쾌하게 웃었다.
“국무원제로 개편된 지가 두 달이 넘어가지만, 국무원은 침묵 상태, 의정원도 대안이 없어 침묵 상태. 감옥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국내 동포를 생각하면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파리대표단이 무슨 힘을 낼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분열 상태로 가면 안 됩니다.” 윤현진도 안타깝다는 듯 거들었다.
“선배로서 정말 미안하오. 내 생각이 짧았나 보오. 투정하듯 말하고 있으니 나도 잘못이오. 실은 나도 오늘부터 선배들을 찾아볼 생각이었소.” 안창호는 진심 어린 말투로 다독이듯 말했다.
“도산께서는 연설에서 임시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통일 단결이라 하셨습니다. 아니면 일본의 이간책에 넘어가고야 말 것이라고 지적하셨지요. 통일 단결을 위해 저희는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신익희가 물었다.
안창호는 주저 없이 말했다. “총장들 취임이 어렵다면 한자리에 모이게라도 하는 것이오. 듣기로 이승만 지지세력이 많다고 들었소. 그들이 직접 모셔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은 지금 임시정부 밖에서 집정관총재 사무소를 따로 두고 국민회중앙총회를 무력하게 만들면서 대미외교전을 펼치고 있다고 들었소. 미주 국민회중앙총회는 어차피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통합되어야 하겠지만 북미나 하와이 국민회는 지방조직으로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한인의 결집을 위해서 말이오. 그분이 임시정부 안으로 부임하셔야 자치론이나 위임통치론의 잘못을 수정할 것이 아닙니까? 최고기관 내에서 토론을 통해 공론을 형성해 보자는 것이지요. 그냥 놔두면 수정됩니까? 독재로 기울기 쉽고 파벌만 형성되겠지요.”
신익희와 윤현진은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얼굴만 쳐보았다. ‘심각한 일이다.’
안창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조금 흥분을 했소. 워낙 중대한 사안이니. 우리는 자유의 인민이오. 지연, 학연, 혈연 등을 모두 초월하고 균등해야 하오. 그래서 어쩌면 선배들도 정당조직 우선을 선호했던 것 아니겠소? 하긴, 개인은 각자의 양심과 이성에 따라야지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맹종해서는 안 되겠지요. 자유 시민 정신을 갖자는 것이오.”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윤현진이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런 윤현진을 바라보며 안창호가 말했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분을 존중하면 그분도 변할 것이오. 참모진들이 대의와 공의를 가지고 그분을 대한다면 통일과 단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소. 다른 총장들도 마찬가지요.”
“저희가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노령에서 이동휘 선배를 모셔오고, 항주에서 신규식, 북경에서 이동녕, 이시영 선배도 모시고... 발로 뛰겠습니다.” 신익희가 말했다.
“좋소. 나도 노력하겠소. 그리고 그분들이 오시면 나는 내무총장 자리를 다시 내놓게 해주세요. 한성임시정부 안에 따르려는 것뿐이오. 다른 뜻은 없소이다.”
신익희와 윤현진은 뜻밖이라는 듯 서로 마주 보면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안됩니다.”
안창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 합니다. 통합될 때까지만 내가 우두머리가 되려 하오. 그러나 통합 이후에는 한성 안에 따르는 것이 후환이 없을 것이오. 이것이 내 취임의 조건이라면 조건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임시정부를 따로 도울 생각이오. 내게 이미 다 계획이 있다오. 허허.”
신익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국무원들에게 조언하고 싶으신 게 있다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신규식, 이시영 선배들 조언을 구해보려고 몇 차례 방문했습니다만... 자금 모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외에는 특별한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도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창호가 뜸을 들이듯 말을 아끼다가 한숨을 토하듯 말했다. “재정은 제일 중요한 문제이고 핵심사안이오. 나도 항상 미주 조직을 향한 일성이 애국금 호소입니다. 자금은 재생산되는 구조를 가져야 하오. 나는 미주에서 북미실업주식회사를 일으켰소. ‘노동하는 한인은 10분의 2를 저축하시오. 그중 절반은 투자하고, 나머지는 의연금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합시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말이오. 이제 임시정부가 생겼으니 ‘모든 국민은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 다만 정부는 국민이 산업이나 중소상공업을 일으키도록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뭐 이런 기초적인 생각을 했다오.”
“오, 과연 도산이십니다. 재정은 실학의 기본 요소요, 실사구시의 핵심이지요. 노동 없는 수입은 없다. 노동은 누구나 해야 한다. 어쩌면 근대사상의 핵심은 경제부흥이지 않나 싶습니다. 임시정부가 움직이려면 재정확보가 핵심이다. 국민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독립에 대한 비전이나 확신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세금을 내라는 것은 무리하다!” 윤현진이 주절거리며 숨 가쁘게 말을 받았다. 안창호는 그런 윤현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미소지었다. ‘역시 재무감이야...!’
“국민 인구조사가 필요하겠습니다. 재외국민수도 파악해야 합니다. 세금징수와 병역인구 조사를 위해서요.” 신익희가 소신을 이야기했다.
“정부가 생겼으니 국채 발행도 가능할 것이 아니겠소? 우선 급한 대로 국가가 국민한테 미리 세금을 거두는 것이라고 해 둡시다. 그리고 민간 구국재정단은 자율에 맡기고.” 안창호가 거들었다.
“오, 선생님. 답이 다 나왔습니다. 임시정부가 일할 수 있는 기초가 수립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 차장들이 할 일은 실행 순서를 정하는 일, 그리고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일. 제가 일단 임시정부 재정확보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보겠습니다.” 신익희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좋소. 그것이 가장 중요한 상위 과제요. 다음은 목표 달성을 위해 방법을 구해보는 것,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안창호는 버릇처럼 문답을 구하고 있었다.
윤현진이 말했다. “이러한 정부 방침을 국내외 동포에게 알리고 실행하는 일이 중요한데, 국내는 총독 압제하에 있으니 비밀수행원들이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비밀행정조직 체계를 확보해야겠습니다. 국외는 거리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행정 단위 조직을 거점으로 하는 연통제가 답인데요?”
안창호는 두 사람 모두 국무원 핵심 인재들이라고 인정했다. “바로 그거요. 신민회에서도 비밀행정체계를 구상했었소. ‘13도 12부에 각각 책임자를 선발해서 지휘하게 하고 선전원, 특파원 등 비밀수행원을 조직한다.’ 이것은 행정조직이니 내무가 맡아야 할 임무겠지요.”
신익희의 눈이 반짝거렸다. “현재는 궁여지책으로 차장들이 중심에 있지만, 아무래도 상부조직이 움직여야 할 듯합니다. 도산께서 내무총장으로 계신다면 저희는 신이 나겠습니다만, 상부 명령이 국민에게 권위를 갖는 것 아닙니까. 이승만 총리가 부임하면 더 좋겠지만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는 도산께서 그 역할을 해주셔야 합니다. 저희는 진정으로 정부를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윤현진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창호는 진지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내 조만간 마음을 결정해서 그대들과 제일 먼저 의논하겠소. 사실 나는 독립전쟁 준비에 독립운동의 사활이 걸려있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번 3.1운동과 같은 비폭력저항운동과 동시에 무력저항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만주의 무장세력 통합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넓은 땅 만주 각처에 산재해 있지만, 각 조직은 일사불란한 명령 체계를 위해 임시정부 산하로 귀속되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독립전쟁! 역량을 모아야 가능한 독립전쟁, 안 그렇소?”
“........” 두 사람은 침묵했다. 솔직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독립전쟁은 차후의 문제라고만 여겨왔었다. 지금 자신들은 외교에 매달려 있지만, 도산은 독립운동의 전체적인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
“무슨 생각들을 그렇게 골똘히 하시오? 혹, 내 생각이 너무 멀리 나갔소? 그런 게요? 허허.” 안창호는 문득 ‘말끔한 이 청년들도 전시 무장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실은 말이오, 미주는 노동시장이 크고 다양합니다. 일자리가 보장되어 있어 건강하기만 하면 노동을 할 수 있다오. 임금도 괜찮소. 그래서 내가 ‘오렌지 하나라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한 무실역행이다.’라고 계몽했지요. 하지만 국가상실의 아픔은 마찬가지라오. 미주는 돈을 모으고 있소. 그 돈으로 비행학교 설립과 비행사 양성을 위해 역량들을 모으고 있다오. 미래 전쟁은 공군력 아니겠소? 미주 동지들은 비행력으로 독립전쟁을 준비하려 하오. 대단하지 않소?”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단하다. 독립전쟁 준비를 위해 공군력을 키운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안창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미주에서 레드우드비행학교에 입학한 청년들이 여럿이라오.”
“소문으로만 여겼던 것이 사실이라니 놀랍습니다. 덩달아 힘이 납니다. 금전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신익희가 말했다.
“내 생각으론 미국이라 가능한 거라고 봅니다. 넓은 땅에 미개척지가 많은 데다 철저하게 사유 재산을 보장하고 있으니 말이오. 자유, 민권, 청교도 정신, 민주주의. 뭐 이런 바탕 위에서 독립된 근대국가이니... 국가의 힘이 부럽지요.” 안창호는 조선의 청년들이 가엾다고 생각했다.
“도산 말씀대로 독립전쟁에 대한 준비 없이는 우리가 외교에 전력한다고 해도 힘이 못 미칠 것은 불 보듯 뻔하군요. 임시정부의 중장기 계획 수립 없이는 거대 일본은 상대하기가 어렵겠군요. 괜한 희생만 늘 뿐. 종합적인 방략이 필요하겠습니다.” 윤현진이 말했다.
“바로 그것이오. 여기는 중국 땅이오. 독립운동에 한계가 있는 곳이지요. 다른 약소국들과는 처지가 또 다릅니다. 그래서 더욱더 통일과 단결이 필요합니다. 외교전과 독립전쟁 준비를 위해서 지금은 무엇보다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선배들의 단결이 절실하지요. ‘안창호, 그래 네가 잘해봐라.’라는 식이면 제가 힘이 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도산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신익희가 말했다.
“다시 만나서 독립운동 방략을 같이 수립해 봅시다. 나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소.” 안창호가 다짐을 두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