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참된 관계 참된 행복 #9/10

9화. 이상촌 탐사

by 은명

9화. 이상촌 탐사


안창호가 받은 비자 일정은 원래 8개월이었다. 안창호는 자신이 볼셰비키당원이라고 모함받고 있는지도 모른 채 동부지역을 순회하고 있었다. 6월 3일 시카고 이민국 직원이 호텔 숙소로 안창호를 찾아와 다짜고짜 볼셰비키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미국 입국 목적을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안창호는 차분하게 경위를 설명했다. 6월 19일, 안창호는 이민국에 6개월 비자 연장 승인을 어렵게 받아냈다.


시카고 순방을 끝내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는 길. 안창호는 장리욱에게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국민회를 가보자고 했다. 안창호는 흥사단 창립 당시 홀연히 솔트레이크시티로 떠난 정원도가 생각났다. 안창호는 홍언을 통해서 정원도의 소식을 들었다. 정원도는 1920년 구미위원부 3.1절 기념식에서 헌법을 낭독했고, 그 후 구미위원부 뉴욕지방회 법무와 재무를 맡아 자금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흥사단 본부로는 통 소식이 없었다. 홍언의 말에 따르면, 정원도는 정등엽이 일했던 솔트레이크시티 광산에서 돈을 모아 교포들이 많은 뉴욕 근교로 이주한 것 같다고 했다. 정원도(1880~1932)는 전라도 광주 출신이다. 그는 1904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안창호를 만나 1905년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1909년 공립협회가 국민회로 확대된 이후, 하와이에서 건너온 강영소와 홍언의 따뜻한 품성에 매료되어 서로 절친이 되었다. 정원도는 강영소를 도와 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 재무를 담당했고, 1912년엔 『신한민보』에서 인쇄공으로 일하면서 홍언을 보좌하여 일체의 사무를 맡아 활동했다. 안창호는 국민회중앙총회 설립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영소의 집에서 정원도, 하상옥, 강영소, 양주은과 함께 5인조 동맹수련을 체험하면서 정원도가 흥사단 전라도 대표를 맡도록 권유했다. 정원도는 1913년 5월 전라도 대표를 맡아 흥사단 발기에 동참했다. 안창호와 홍언은 정원도에게 흥사단 업무 일체를 관장하는 주무원으로 위촉했으나 홀연 정등엽(1884~1968)이 있는 솔트레이크시티로 이주하였다. 정등엽은 공립협회 창립회원이며 흥사단 발기인이다. 정등엽은 소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다니면서 솔트레이크시티 광산에서 노동했다. 정등엽은 1913년 5월 딜라노로 이주하여 벼농사를 지었고, 클레어몬트, 다뉴바 등 국민회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딜라노에서 흥사단을 이끌고 있었다.


안창호와 장리욱은 솔트레이크시티에 도착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모르몬교 본부가 있는 곳이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1847년경부터 모르몬교도들이 유타주 황무지로 이주하여 개척한 아름다운 도시다. 시가지는 질서 정연했고 도로, 주택, 학교, 병원, 관공서, 은행, 상점들이 아름다운 공원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안창호는 문득 나철이 일으킨 북만주 대종교를 떠올렸다. 대종교 역시 만주 화룡현에 중광단을 조직하여 독립군 집성촌을 만들었다. 대종교의 교주를 물려받을 순번이었던 서일은, 김교헌에게 교주를 물리고 자신은 김좌진 등과 중광단을 조직했다. 이들은 왕청현 십리평에 사관양성소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면서 독립군 정부를 세웠다. 대종교는 배타적이거나 정복적인 선민사상이 아니었다. 대종교의 이념은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실현이다. 이를테면 온 인류의 완전한 행복을 구현하는 사상이다. 북만주 독립군은 대부분 대종교인이었다. 안창호는 ‘종교는 사람을 뭉치게 하는 힘을 가졌다.’라고 생각했다.


안창호는 솔트레이크시티의 지형, 도로 배치, 가로수의 수종, 주택모형과 건축재료 등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안창호는 망명 때 시베리아 열차로 유럽에 도착하여 베를린과 런던을 지나면서 근대문명국의 도시 디자인에 심취했었다. 이후 미국 망명 생활에서 기지개척사업 구상은 산업 문명과 군사력 준비가 공존하는 도시 건설로 확장되었다. 안창호는 틈나는 대로 캘리포니아주 여러 도시를 탐색했다. 이러한 기지개척은 자금력 확보가 가장 중요했다. 흥사단 측근들은 안창호가 말하는 기지개척의 꿈을 공유했다. 그들은 이상촌 기금을 따로 적립해 나갔다. 그것은 흥사단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윌로스시 비행학교 설립이 그 시작이었다. 안창호가 멕시코를 순방하면서 멕시코 남쪽 국경지대 프론테라와 북쪽으로 미 접경지역 노갈레스를 탐사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장리욱은 안창호의 기지 개척 계획에 대해 송종익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송종익은 “도산은 도시공학을 전공했어야 했다. 지역을 탐사할 때 도산의 눈은 광채가 번뜩였다.”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안창호의 기지개척에 대한 목적과 방향은 예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안창호는 경신참변 이후 만주에 흩어진 동포의 생활 근거지로써 이상촌을 구상했다. 장리욱은 안창호가 임시정부를 이끌면서 애민정신을 이상촌 건설 사업으로 끌어 올렸다고 생각했다.

안창호는 그의 측근들에게 만주동포를 구휼하는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곤 했는데, 한번은 단소에서 한승곤과 장기를 두면서 이런 말들이 오고 갔다. “대한의 군사력이 집중되어있는 만주, 만주를 살려야 해. 경신참변을 또 당할 수는 없지.” “우리가 기지개척자금을 모으고 있는데, 그건 이상촌 기금이야.” “이상촌 기금이 임시정부에서 폭탄 사고를 수습하는 데 쓰여 위기를 벗어났지만, 우리는 계속 기금을 동맹 저축해야 해. 앞으로 이상촌 기금은 만주 동포 구휼 사업에 크게 쓰이게 될 것이야.” 안창호의 말을 듣던 한승곤 이사부장이 수를 두면서 무심코 말했다. “이상촌이라.... 거참 좋은 말이오! 허허.” 안창호가 장기 말을 받아 “이강도 이상촌이라고 했지.” 하고 응수했다. 이후로 흥사단에서는 토지 구매 자금을 이상촌 기금이라고 공식 명명했다.


장리욱은 안창호가 메모지에 도시의 지형지물을 상세히 그리는 것을 바라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선생님, 솔트레이크가 마음에 드십니까?”

“나는 말이오, 국치 망명 이후로 참 많이 돌아다녔소. 연해주, 북만주, 시베리아.... 그곳 동포들이 생활하는 집성촌은 형편없었소. 목숨이 붙어있으니 그저 사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비바람을 겨우 피할 수 있는 움막들, 임시 거처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한인들의 생존력이었소. 황무지에 농토를 일구고, 밭에 작물을 심어 정성껏 가꾸어 수확하는 놀라운 힘을 보았소. 더 놀라운 건, 집성촌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이었소. 그들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더이다. 그래서 독립군이 양성되고 그들이 부모와 처자식을 일본군으로부터 지켜내는 놀라운 자생력을 보았소. 난 말이오. 이들에게 문명화된 삶의 길을 열어주고 싶은 꿈을 꾸게 되었소.”

장리욱이 곰곰이 안창호의 말을 되새겼다. “이상촌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렇소. 일종의 이상촌이지. 이강도 ‘이상촌’이라고 했다오. 토지를 소유하고 생산활동을 하면서, 문명개화 의식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가면 좋지 않겠소? 그 땅이 어디가 됐건 어디나 가능하지 않을까? 일본은 구실을 찾아 끊임없이 탄압해 들어오겠지.” 안창호는 꿈을 꾸듯 말했다.

장리욱이 물었다. “해방되면 모두 조국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안창호가 웃었다. “해방되면 오죽 좋겠소? 현재 일구어 놓은 삶의 터전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오. 더 큰 힘을 갖는 것이지. 미국에도 터전이 있고, 멕시코, 쿠바, 러시아, 시베리아, 만주, 필리핀, 동남아시아... 그 어디든 그 토대를 그대로 살려두면 후손들이 선택할 문제 아닌가?”

장리욱도 따라 웃었다. “꿈을 꾸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조국 땅도 솔트레이크같이 아름답게 개발된 도시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바로 그거요. 재외동포가 곳곳에 이상촌을 만들어 그 모델을 해방 조국에 적용하는 것! 이를 준비하자는 뜻도 있소. 주거환경의 문명화, 삶의 질의 문명화! 연대와 약속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자유 문명 공화국, 이것이 내 꿈이오.” 안창호가 꿈꾸는 소년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도 미국에서 살아보니 조국의 문명 근대화를 그려보게 됩니다. 풍요와 문명이 의식의 발전도 가져다주겠지요? 정치의식의 선진화를 말입니다.” 장리욱이 말했다.

“오, 그렇소. 동감이오. 그래서 민족혁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오. 이제 우리의 독립운동은 민족혁명이오. 정치경제와 교육의 평등사회 건설. 장 동지는 교육학 박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지?” 안창호가 힘주어 말했다.

장리욱이 대답 대신 다시 물었다. “해외 이상촌은 소속된 나라의 법을 따라야겠지요?”

안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오. 미국법, 소련법, 중국법 등에 따라야겠지. 이민자들의 삶의 애환이 왜 없겠소. 이 문제 해결은 약소국 동맹이 힘을 갖는 것에 달려 있을 것이오. 평화연대, 인권연대 그리고 열린 민족주의가 인류 공동체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오. 그것이 바로 세계 대공사회이지.”

장리욱도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인류 공동체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를 통찰해야 외교가 되겠습니다.”

안창호는 장리욱이 마음에 꼭 들었다. ‘장리욱은 이상촌을 이해하고 있다.’

“동지들과 북경 근처 해전이라는 곳에 농지 45,000평을 빌렸소. 우선은 안정근이 농사를 짓기로 했지. 산해관을 지나면 금주와 호로도 지역이 나오는데, 그곳에 토지와 기후가 아주 맘에 들었소. 오래된 미래 도시...! 그곳을 탐하고 있다오.”

안창호는 신이 나서 계속해서 말했다. “손정도 목사와 이탁도 이상촌 운동으로 결합한 상태라오. 손정도는 미국 감리교단 지원을 받아 길림 경박호 주변으로 갔지. 양기탁 선배가 가세할 거라 했소. 이들은 길림에서 농민호조사를 결성한다고 했소. 호조사에 가입하는 이주 세대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형성한다는 계획이라오. 이상촌 운동의 첫걸음이라고 해야 하나?”

장리욱은 놀랐다. ‘중국 원동위원부가 이미 이상촌을 시도하고 있다.’ “오, 대단한 일입니다.” 장리욱은 도산의 열정으로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믿었다.

“자, 우리는 이제 서재필 박사를 마중하러 갑시다.” 안창호와 장리욱은 솔트레이크를 벗어났다. 아쉽게도 솔트레이크국민회 사무소는 굳게 닫혀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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