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년필에 빠지게 되면서 잉크와 펜을 나름대로 수집하다 보니 약간의 과소비를 하게 되었다. 과소비의 패턴은 대략 이런 식이다. ’어라 잉크가 만년필보다 하나 더 많네‘, 이런 생각이 들면 한 일주일 후 만년필 하나가 나도 모르는 새 책상 위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펜 개수가 잉크 종류보다 많아 ’만년필도 많은데 좀 더 다양한 잉크를 써 볼까?‘ 이런 생각이 들면 어느새 새로운 잉크가 만년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수집욕이 고개를 들기 전에 잉크와 만년필 개수를 똑같이 맞춰서 구매할 수밖에 없는 핑계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게끔 차단을 해 놓은 상태다. 만년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과정을 겪는다는데 욕망의 개미지옥이 따로 없다.
과소비를 막는 개인적인 비결이 있다면 일대일 대응을 잘하는 것과 ’네가 아니면 안 돼‘, 이 두 가지다. 일대일 대응은 예를 들면 빈티지 파커 51에 파커 큉크 블루 잉크를 쓴다거나 하는 식이랄까. 이 펜에는 이 잉크가 어울리고 상성도 좋다, 이러한 느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만년필과 잉크를 실험한다는 감각으로 조합을 바꿔가며 시필하다 보면 ‘아, 이거다.’하는 느낌이 찾아온다. 잉크의 흐름이나 닙 종류와 상태 등 ‘나만의 만년필’을 찾아가는 데 있어 일반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는 있겠지만 만년필과 맺는 연은 결국 다분히 개인적인 느낌에 기반해서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또 묘한 매력이다.
‘네가 아니면 안 돼’는 물건보다는 물건을 사용하는 상황과 관련된다. 만년필의 경우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만년필과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만년필이 다르다. 요즘은 얇은 선으로 형태를 좀 더 명확하게 잡아 형태의 이해도를 높이고 싶어 플래티넘 사의 센츄리 SF 같은 세필을 쓰고 있다. 역시 세필은 일본제 만년필이 좋다. 센츄리 SF는 처음에는 너무 사각거려서 ‘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가.’하고 손을 별로 안 대고 있다가 그래도 돈이 아까워 습관적으로 쓰다 보니 나름 길들여진 상태다. 길들여지고 나서는 어떻냐고 물어보신다면, 솔직히 말하면 푹 빠져 있는 상태다. 선화(線畫)용으로는 센츄리 SF만한 녀석이 없다. 충분히 얇은 선이 나오면서도 굵기 조절도 편하다. 선의 굵기가 필압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선에 대한 감각을 섬세하게 유지하기에도 좋다. 만년필은 역시 세필보다 태필이다,라는 말에 적극 공감하긴 하지만 나에게 센츄리 SF는 그림을 그릴 때만 쓴다고 하더라도, 몇 년이 지나도 버릴 수 없는 세필이랄까. 그만큼 소중하다.
그러나 그림이 아닌 글을 다룰 때는 역시 굵은 촉을 선호하게 된다. 글을 쓸 때도 어떤 글을 쓸 것인가에 따라 선택은 당연히 달라지기 마련. 시를 필사할 때는 운율이나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므로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할 수 있게, 리듬이 끊기지 않게 부드러운 필감을 가지고 있고 쓰는 맛이 있는(필기할 때 리듬이 저절로 타지는) 펠리칸 소버린 라인이나 몽블랑 마이스터스튁을 쓴다. 에세이나 소설에 대한 습작을 할 때는 장시간 필기 시 부담이 없게끔 무게 중심이 잘 잡혀있고, 적당히 사각거리지만 필기의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는 워터맨 사의 까렌을 쓰는 중이다. 물을 가르며 쭉쭉 뻗어나가는 요트 같은 디자인이 매력적인 친구인데, 필감도 디자인처럼 소소한 저항 속에서 뻗어나가는 느낌이 좋다.
브런치 글과 함께 올리는 삽화들은 전부 파이롯트 캡리스 데시모 매트블랙, 잉크는 파이롯트 나미키 블루를 사용해 그리고 있다. 에세이를 처음 쓸 때부터 이 둘의 조합을 쓰기로 정했다. 1년 후, 2년 후에도 이 결심은 변치 않겠지. 캐주얼한 창작물에는 캐주얼한 재료를 써야 하지 않을까 해서 골라보았다. 일상에서 쓰기 좋은 캡리스 데시모와 정말 무난한 파란색이라는 표현이 걸맞은 나미키 블루의 조합은 예상대로 이렇게 평범한 내용을 다루는 글과 어울린다. 다른 펜과 다른 잉크는 또 다른 글과 인연이 닿겠지. 앞으로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정해지는 것들이 늘어날 것 같다. 모쪼록 과소비를 안 하는 스스로가 되었으면 하고 기도해 본다(일대일 대응을 잘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