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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Jul 16. 2023

맥주 슬러쉬를 마시는데 비는 멈추지 않고

추억에도 잠겨 보고

과학을 가르치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을 제법 많이 만나게 된다. 실험을 하거나 직접 체험을 할 수 없는 내용이 그렇고 어느 정도 제대로 이해를 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 지식의 수준이 너무 높아 가르치기 힘든 내용도 그렇다. 이 경우는 가르칠 때 사용하는 용어도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또 학습 내용 안에 담긴 스토리가 학생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기 어려워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다.


그냥 그런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제일 밋밋한 이야기. “그냥 그런 이야기야.”는 제일 자극적이지 않은 스토리텔링. 물론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의 이유를 항상 묻고 따지면 인생이 매우 피곤해지겠지만 적어도 과학만큼은 (학생 때는, 나도 많은 학생들이 그랬듯이 매우 재미없게 과학을 배운 입장에서) 그냥이라는 단어를 빼고 “이런 이야기야.”라고 말하면서 가르치고 싶었다.


흥미를 가지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각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당연한 지점에서 학습은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약 10년 동안 이런저런 수업에서 학생을 지도해 왔지만 마음에 와닿게 가르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당연한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뻗어나가는 이해를 목표로 한다면 과학 수업에서 경험과 그로부터 나오는 감정의 도움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교육봉사를 나가며 과학을 가르치던 시절 하루는 비가 오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야 했다. 비가 오는 이유야 물론 ‘내가 우울해서 비가 오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일단 과학 시간이고 정식으로 맡은 수업이다 보니 중학교 때 배우는 빙정설과 병합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빙정설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온도가 같은데 어떻게 하나는 물이고 다른 하나는 얼음이에요?“ 과냉각은 아이들에게 어려운 개념이었다. ‘실제로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어.’는 너무 성의 없는 답변이고, 오늘 같은 장마철에 진행한 수업이라 다들 축 쳐져 있어 이번 기회에 (과냉각에 대해서도 가르치기보다는 보여주고) 기분 전환 삼아 시원한 슬러쉬나 마시기로 마음먹고 아이들과 같이 냉장고의 탄산음료를 몇 개 흔들어 냉동고에 넣었다.


그동안 다른 과목도 가르치고 나이가 많이 어린 학생들과는 놀아주기도 하다 2시간 정도 지난 시점에 냉동실에 넣어 둔 탄산음료를 꺼내 보니 액체 상태를 유지한 채 아주 차갑게 식어 있었다. “봤지. 액체 상태인데 아주 차갑잖아. 이런 상태가 과냉각 상태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만져보게끔 하는 것이 첫걸음. “와.” 다음에는 “그런데 슬러쉬가 아닌데요?” 탄성 후에 금방 이어지는 또 다른 탄성. 역시 가르치는 것은 힘들다. “잘 봐. 이제 금방 슬러쉬 될 거니까.” 뚜껑을 열고 압력이 낮아진 탄산음료를 컵에 부었더니 그대로 조각조각 얼어버린다. 훌륭한 슬러쉬의 완성.


“다들 봤지. 충격을 줘서 액체 상태였던 음료가 방아쇠 당기듯이 순식간에 얼어버린 거야.“ 몇은 내가 말하거나 말거나 마시느라 바빴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그냥 원래 있던 음료를 재치를 발휘해 교육 소재로 사용한 것이지만 아무튼 교육봉사여서 가능했던 시도였다. 배우는 것도 딱딱한 내용이라 죽겠는데 시원한 음료라도 마셔야지, 하는 마음(사실 가르치는 사람도 죽겠다). 슬러쉬가 맛있다는 기억밖에 남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일단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개념으로 개념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어렵다. 어른도 어려운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다. 개념의 토대가 단단하지 않을 때는 항상 현실로, 스스로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믿음. 빙정설과 병합설도 각각 하나의 이론들일뿐. 비가 오는 것을 보고 빙정설과 병합설을 떠올리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오늘은 우울하니까 비가 내리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하늘에서 비를 내려도 좋다. 그러나 과학을 배워서 얻는 장점은 보편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좋아진다는 것. ”세상은 그렇게 생겨먹은 거야.“라고 누군가는 공허하게 말을 내뱉지만 과학을 배우면 ”세상은 그렇게 생겨먹은 거야.“라고 똑같이 말해도 생기에 찬 눈으로, 조금은 확신에 찬 어조로 차분하게 세상과 마주 볼 수 있다.


 간단한 슬러쉬 제조 방법은 , 음료수, 주류를 포함해 다양한 음료에 적용할  있지만 탄산이 들어가 있는 음료의 경우 성공률이 좋다.  이유는 탄산이 주는 압력 조작을 이용할  있기 때문이다. 냉동실에 넣기  흔들어서 압력을 높이면  낮은 온도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할  있고 냉동실에서 꺼낸  뚜껑을 열면 압력이 낮아지면서 과냉각 상태의 액체를 쉽게 얻을  있다. 교양 수업으로서 교과 과목 수업은 결과적으로 삶에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서의 수업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번의 과학 수업을 통해 배운 내용을 어른이 되어서도 떠올려서, 덥고 습한 장마철에 맥주 슬러쉬를 먹으면 그만이랄까(사실 본인도 어릴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내용이라 아직까지도 써먹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또한 글을 쓰다 오랜만에 맥주 슬러쉬가 마시고 싶어서 제조해서 먹다가 몽롱해진 정신에 글 정리가 되지 않아 연재일을 어긴 것 또한 비밀이 아니다. 죄송한 마음을 대신하여 여름철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슬러쉬 제조에 대한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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