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 찍었다가 다시 못 돌아가는 건 슬프잖아요

1. 야너두 요가 가르칠 수 있어

by 도선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ttc 첫째 날.

나에겐 새벽 같은 9시에 일어나

약수에 있는 요가원으로 향했다.

원래 아침엔 뭘 안 먹지만...

그리고 오전엔 몸을 안 쓰는 수업이지만…

배가 든든해야 한다는 생각에

단백질 쉐이크를 마시고 요가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고요한 요가원 계단 앞에서 예기치 못한 향냄새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거지. 딱 이 냄새에, 이 분위기를 내가 좋아했지.

작은 감동으로 여는 첫 시작이었다.

(언제나 어려운) 자기소개로 수업이 시작되고,

요가의 기원, 인도의 간략한 역사와 힌두교 그리고

요가가 육파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여기서 재밌는 상식

: 요가는 산스크리트어 '유즈'가 어근으로

'멍에를 씌우다' '하나로 만들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몸/마음 혹은 세상/나,

브라만(순수의식)/지바(절대자아)의 조화를 뜻한다.

흥미롭다!


이론 수업은 2시간으로 예정되었으나 점심시간까지 침범하여 3시간가량 이어졌고...

(이 자리를 빌려 원장님께 서운함을 표합니다...)

배고팠지만 수업은 흥미로웠다.

메타인지 같은 '아트만'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나를 관찰하고,

수행을 통해 브라만(우주의 근본원리)과 합일되어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용어가 어려울 뿐 불교철학과 비슷해서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


짧은 점심 이후 시작된 실기 수업.

무려 4시간 동안 요가를 한다니! 벌벌 떨었지만

동작을 직접 하는 것보다,

동작에 관해 듣는 시간이 더 길었다.

기지개를 켜는 듯한 자세(하스타아사나)들이나 좌법, 테이블 자세 등

워밍업 동작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어떤 것이 완벽한 자세인지보단,

어떤 몸에는 어떤 접근법을 써야 하는지

해당 자세가 무엇에 도움 되는지에 더 집중해서

설명해 주셨고

그만큼 필기도 고등학생 때처럼 열심히 불태웠다...

불태운 필기의 흔적…

어떻게 몸을 써야 하는지 터득할 뿐만 아니라

'디스크 있는 사람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지?'

'무릎 통증 있는 사람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수업시간을 꽉꽉 채우다 보니

4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렇게 몸의 작동에 대해 계속 생각한 탓인지

요가가 하고 싶었고

집에 와서 하타 수리야나마스카라

(그냥 요가를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를 야매로 하면서

진짜 끝내주는 요가의 날을 보냈다.



그리고 노을 보면서 저녁을 먹는데,

문득 이론수업 때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차라리 해보기 전에 부상당하는 게 나아요.
예전엔 됐었는데,
지금은 안 된다는 생각은 괴로워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보다

인고의 수련 끝에 겨우 얻어낸 자세가,

부상 혹은 노화로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때

더 괴롭지 않겠냐는 말씀이었다.


사실 나는 무집착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가질 수 없다면, 가지지 않는 것으로 괴로움을 피하고

할 수 없다면, 하고 난 뒤의 허탈함과

쇠퇴와 몰락(?!)에 대해 생각했다.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평안에 이르는 길이라고.

그리고... 만일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더랬다.

(우울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성적인 결론이다.

만일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의 아름다움도, 괴로움도 모를 테니 더 이득이다!)

누구는 이런 마음을 정신승리라고 부를 테지만

그렇게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엔 수많은 괴로움이 있고,

그중엔 피할 수 없는 괴로움도 너무 많으니

파동을 애초부터 일으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으니까.


얼마 전엔 나의 모친께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다시 남자를 만나 발리를 떠나는 결말이

납득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하셨더랬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 행복한 거지, 왜 다시 돌아가?'

그때 나는 생뚱맞게도 '미워도 다시 한번'이 떠올랐다.

그래도 다시 한번... 그래도 다시 한번....

그때는 이 말이 무엇인지 형용할 수 없었지만

오늘에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노을은 한순간에 생겼다가 사라진다.

절정인 줄도 몰랐다가 지나고 난 뒤에야

절정임을 깨닫는다.

노을이 끝난 뒤의 상실감이 더 클 수 있다.

그 뒤엔 밤이 찾아오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노을 보기를 포기하진 않는다.

근데 노을도, 삶도 똑같은 것 같다. 그리고 요가도.

가장 찬란한 순간을 향해 가다가 그 직후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가장 찬란한 시기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기에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하늘을 물들인 붉은빛에 감탄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두면

해가 진 후에도 사진을 보며 추억할 수 있듯이,

매번을 충실하게 기억하면 지나고 나서도 여운이

지속되지 않을까?

그러니... 정점이 다가오길 거부하고 피하는 것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순간순간을 음미하며

사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인생엔 정점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끝나더라도 다시 한번, 미워도 다시 한번.

또다시 세상이라는 바다에 미친놈처럼 뛰어가

다이빙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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