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필립 로스, 『에브리맨』
Written by 이의성 / 시일 북스앤웍스
시일로 출근하는 길을 걷다 보면 ‘임대’를 써 붙인 가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이용했던 멋스러운 인테리어의 카페와 인증 사진이 연이어 올라오던 식당들이 그중에 있었다. 과자를 사러 방문한, 작업실 인근의 작은 구멍가게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다 우연히 그 실체를 전해 들었다.
사장님도 인테리어 업자들을 통해 건너들은 사실이지만, 그 브랜드들이 모두 생각보다 큰 적자를 감당하고 있었다고.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내놓았더라는 풍문을 전해 듣는다. 그런데 가만, “사장님은 그러고 보니 꽤 건재하시네요?” “나야 동네에서 10년 넘었으니까, 그냥 버티는 거지. 별다른 수가 있나.“
“아니, 근데 벌써 10년이 넘으셨어요?”
경기 불황이라는 풍랑엔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힘이 있다. 몸집이 크건 작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불어 닥친다. 큰 배는 큰 배대로, 작은 배는 작은 배대로 위태롭기 그지없다. 경기는 부침이 있어 등락을 거듭하게 마련이다.
얼마나 큰 성공을 찍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또한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 경기 침체로 향하는 위기의 항로에서 새삼 느낀다. 강한 것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게 강한 것이라는 사실을.
억겁의 시간을 거쳐 살아남은 누군가의 시간은 감히 ’브랜딩‘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생존의 철학은 눈에 띄지 않고 멋스럽지 않을 수 있으나 가장 강한 힘이 있다. 나 역시 이야기의 힘을 믿는 자로 브랜딩의 필요를 역설할 때 많지만, 브랜딩의 끝이 생존이라는 명제에 연신 고개를 조아리게 된다. 저 유명한 저잣거리의 뜨고 지는 핫 플레이스들보다 동네 어귀에서 수년째 자리를 지키는 미용실, 이름 없는 노포, 슈퍼마켓에 경외감이 드는 요즘이다.
과거,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브랜드들 중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브랜드를 지속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억에 남는 경우는 더 극소수다. 호시절, 그들도 연단에 올라 비법을 설파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공들여 받아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비법엔 책임까지 따르지 않는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듯 시절 지나 자연스레 잊혀진다. 우리는 간과한다. ‘생존‘에 쌓인 힘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생존‘보단 멋과 장식, 드러내지 않는 은근한 철학보다 확신하고 단정 짓는 언어에 현혹된다.
지금도 스스로 성공을, 근사한 브랜드 철학을 말하며 연단 위를 오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몇 년이 지난 후 그때도 건재한 이들일까, 나는 의구심이 든다. 여전히 누군가의 성공 비법을 열심히 받아 적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출구 없는 브랜딩의 역사는 그렇게 반복된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