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우광준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처음에는 이 애니메이션을 볼 생각이 없었다. 제목부터 진입장벽이 있다.
‘케이팝’도, ‘데몬 헌터스’도 내 취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달이면 인기가 시들하겠지 싶었는데, 세 달이 지난 지금도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조회수 3.25억을 기록하며 역대 1위에 올랐고, 음원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서울시와 여러 문화시설에서도 케데헌을 활용한 홍보와 마케팅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어찌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시문화에 관심 있는 연구자로서 이제는 안 보면 안 되는 지경에 다다랐다.
그래서 결국 시간을 내어 케데헌을 보았다.
이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케이팝 아이돌들이 사실은 악마를 사냥하는 헌터라는 설정 속에서 서울을 무대로 활약하는 이야기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종합적 평론은 전문가들이 이미 충분히 하고 있을테니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을 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이야기해 나가는지를 중심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서울은 두 세력이 갈등하는 무대로 그려진다. 인간세상을 지키려는 ‘선’을 상징하는 헌트릭스와, 이를 무너뜨리려는 ‘악’을 상징하는 사자보이즈가 대립하는 구도이다.
이 두 그룹은 서울이라는 공간을 수직적으로 명확한 대비 구조를 이루며 사용하고 있다. 먼저 헌트릭스를 보자.
선은 전통적으로 ‘빛(밝음)’으로 상징되며, 빛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성질을 지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존재는 종종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묘사된다. 애니메이션 속 헌트릭스 역시 비행기에서 낙하하며 강림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평상시에도 높은 타워에 본진을 차리고 서울을 내려다보는 식으로 표현된다.
반대로 사자보이즈는 악을 대표하며, 어둠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들은 땅속 깊은 지하세계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마지막 공연무대에서 사자보이즈가 위로 공중부양하는 것도 이러한 상승성과 관련 있어 보인다.
즉, 헌트릭스가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존재라면, 사자보이즈는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오는 존재로 대립한다.
한편, 동양 철학에 천지인(天地人)이라는 말이 있다. 만물을 창조하는 두 주체인 하늘(天)과 땅(地)에 의해 인간세상(人)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를 대입하면 하늘은 헌트릭스를, 땅은 사자보이즈를, 그리고 그 사이에 인간세상이 서울로 그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헌트릭스의 전성기에 불리는 노래 ‘Golden’에서는 하늘의 햇빛이 유추되고, 그룹의 몰락을 가져온 ‘Take Down’라는 노래에서는 윗 존재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하강성을 강조한 것도 이와 관련되어 보인다.
앞서 본 수직적 공간의 대립 구조는 시간의 대립, 그리고 더 나아가 수평적 공간의 대립으로 확장된다. 사자보이즈는 과거라는 족쇄에 얽매여, 한과 미련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
반면, 헌트릭스는 과거보다는 현재, 더 나아가 미래(”혼문을 완성해야!”)를 살아가려는 집단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대비를 가지는 두 세력은 서울의 어느 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어울릴까?
헌트릭스는 미래지향적 이미지로 대표되는 신도심(특히, 송파구)에 있는 서울의 가장 높은 건물(롯데타워처럼 묘사되는 건물)에서 거주한다. 이들의 첫 등장이 송파의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사자보이즈는 과거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구도심(종로구, 중구) 아래에 있는 서울에서 가장 낮은 지하세계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이들은 본진과 가까운 (어쩌면 바로 땅 위 공간인) 명동거리에서 데뷔를 한다. 결국 이 작품은 두 그룹 간의 대립을, 서울 내 공간들의 시공간적 대비로 형상화한다.
두 그룹이 서울 내 서로 다른 거점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 사이 공간에서는 필연적으로 여러 차례 충돌이 일어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청담대교 전투(!)다.
청담대교 아래 7호선 선로에서 강남에서 출발하는 현재의 열차와, 강북에서 내려오는 과거의 영혼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충돌한다. 이때 한강은 단순한 강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경계공간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강남의 현재 vs 강북의 과거. 다리 하부 공간이라 밝음과 어둠이 공존할 수 있다. 강남의 루미가 강북의 진우에게 회유당한 공간도 재미있다. 진우가 루미의 세계인 강남으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루미가 진우의 세계인 강북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이다.
이는 루미가 과거의 기억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그 아픔에 동화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루미는 강북의 공간들 속에서 억눌린 영혼들의 상처를 공감하게 된다. 이때 북촌마을은 과거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낙산성곽길은 과거(성 안)와 현재(성 밖) 속에서 고민하는 경계의 공간으로 설정된다.
루미가 이러한 공간을 체험하고 감응하는 과정은, 그녀가 단순히 헌트릭스의 배신자가 아니라, 과거를 이해하는 인물로 성장했음을 드러낸다.
최종 전투의 무대는 서울 N타워(남산타워)다. 이곳은 하늘과 땅으로 대표되는 두 세력이 팬(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으로 맞붙는 공간이다. 수직적으로는 하늘과 땅이 가장 가까이 닿는 지점이며, 수평적으로는 서울의 한가운데 자리한 요충지다.
다시 말해, 이곳을 점령하는 것은 곧 서울 전체를 지배한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송신탑이라는 구조물 자체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서울 N타워는 하늘과 땅을 잇는 건축물이자 전파를 멀리 퍼뜨려 세계와 연결되는 상징적·기능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창작자는 실존하지 않는 거대한 스타디움을 설정하면서까지 서울 N타워를 최종 결전의 무대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헌트릭스는 이곳에서 귀마와 사자보이즈를 물리치며 마침내 승리를 거두고 서울은 다시금 ‘빛’의 공간으로 회복된다.
그러나 표현에서 아쉬운 공간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한의원이다. 이곳은 진료를 제대로 하지 않고 엉터리 처방만 내리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벽에 걸린 연예인과의 인증 사진은 조작된 것이며, 한약은 실제로는 단순한 포도농축액을 포장만 바꿔 판매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귀마의 공간인 저승세계도 표현이 아쉽다. 이곳에 등장하는 문은 높이 치솟는 처마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중국식 처마이다. 또한 귀마는 무형의 존재이고, 거처는 거대한 신전처럼 묘사된다.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를 연상케 하는!)
그러나 한국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염라대왕은 인간과 유사한 유형의 존재로 그려지고, 거처는 가정집 속에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고증을 한다면 이렇게 했어야)
즉, 이 작품은 한국적 공간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분명히 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표현이 과장되거나 다른 문화적 요소와 혼재되면서 한국 고유의 맥락과 어긋난 장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케이 팝 데몬 헌터스로 인해 한국의 문화가 많이 사랑받고 널리 알려지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몇몇 잘못된 표현으로 문화적 오해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케이 팝 데몬 헌터스> 속 서울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선과 악의 대결 구도를 시공간적 대비로 풀어낸 무대였다.
서울을 주요 배경으로 한 대결구도의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서울의 주요 관광지들을 이렇게 그룹핑하여 대비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구나 하는 점이 신선했다. 몇몇 공간은 오해의 여지가 있게끔 묘사가 된 것이 아쉽지만, 우리나라 도시공간의 매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애니메이션이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