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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탄광이 있는 거 알고 있어?

by 도시관측소
“그들의 시간 속에서 탄광은 이미 사라졌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Written by 양하진 / 용인외대부설고등학교


image.png 지난 6월 30일 문 닫은 도계광업소. 이로써 우리나라의 국영광업소는 전부 폐광하였다.


“우리나라에 탄광이 있는 거 알고 있어?”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 대부분 잘 모른다고 답했다. 대답을 한 친구들이 객관적으로 역사에 무지한 편도 아닌데도 말이다. 오히려 파독광부는 교과서, 남해독일마을, 영화 국제시장 등으로 접한 적이 있어 알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TMI: 파독광부를 훈련한 곳이 위 사진의 도계광업소다!)


요즘 세대에게 “탄광”은 낯설 수밖에 없다. 교과서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20세기말의 역사는 대체로 빠르게 지나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석탄은 환경에 해로운 자원이라고 배워온 세대이기에 탄광을 긍정적인 맥락에서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한편으로, 오랫동안 탄광촌을 구성해 온 거주민들은 탄광에 대해 터부 시 한다. 과거 광부에 대한 인식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제목의 물음은 단순한 사실 확인이 아니라 세대 간 인식의 간극을 드러내는 질문이었다. 젊은 세대에게 탄광은 게임 맵 속에나 존재하는 낯선 단어일 뿐이다. 그들의 시간 속에서 탄광은 이미 사라졌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았던 존재였다.


반면 광부 세대에게 탄광은 지워지지 않는 현실이다. 그것은 생계를 책임지던 일터이자 동시에 몸과 공동체에 남은 상흔이다. 그러나 이 기억은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품고 있기에 쉽게 꺼내놓기 어렵다. “나는 광부였다”라는 자기 고백에는 자부심과 동시에 낙인이 따라붙는다.


결국 두 세대는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한쪽은 모른 채로 묻지 않고, 다른 쪽은 알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는다. 무지와 침묵이 맞물리며 대화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그 사이에서 오해만 깊어진다.


이 간극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 발전과 상생의 과정에서 지역의 기억과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 되지만, 탄광의 기억은 여전히 터부로 남아 공유되지 못한다. 젊은 세대는 지역을 낯선 땅으로만 바라보고, 노년 세대는 사회·경제적 이유로 참여를 주저한다. 그 결과 세대를 잇는 공동의 서사가 부재한 상태에서 정책과 개발은 ‘현재만을 위한 계획’으로 흘러가기 쉽다.


상생의 토대가 되어야 할 기억이 침묵 속에 묻히면서 도시 발전 역시 반쪽짜리 그림이 되고 만다.


내 할머니가 살고 계신 삼척시 도계읍 전두시장 안에는 도계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가 있다. 폐광 이후 지역 재생사업을 맡은 기관이다. 도시재생에 관심이 있던 나는 호기롭게 센터를 찾아가 현직 실무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예상치 못한 학생의 방문이 당황스러웠을 법도 한데 팀장님은 친절히 답해주셨다.


현재 계획은 강원대 도계캠퍼스를 시내로 이전해 대학생과 거주민 간의 교류를 도모하고, 탄광 유산을 활용해 문화시설과 관광 자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그 계획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시행하는 것보다도 실무자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들의 의지 부족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며 자신만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주민들, 탄광 호황기에 맞춰져 여전히 높게 형성된 물가, 방학과 주말이면 떠나버리고 취업 후에는 돌아오지 않는 대학생들. 여기에 도계캠퍼스 설립 과정에서 얽힌 갈등 탓에 주민과 학생들 간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말하자면 ‘박힌 돌과 빠진 돌’의 관계였다.


도시재생의 기반이 되는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여러 역량 강화 교육을 열어도 실제 지역 경제의 주체보다는 시간이 남는 일부 주부들만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결국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람이었고,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지역도 여전히 침체된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다. 문화도시의 타이틀을 가지고 시민 기록단을 꾸려 주민 주체의 문화자산 기록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영월’, ‘정선’ 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삼척시의 폐광지는 앞으로 어떤 모습을 꾸며질까? 대한민국 유일의 광업소인 경동상덕광업소(민영)를 잘 활용할 수 있으면 좋을 듯하다.




도계는 강원대 도계캠퍼스가 있음에도 대학가처럼 활성화되지 못하는 모순적 풍경을 안고 있다. 2009년 폐광지역 활성화와 교육 여건 개선을 목표로 폐광기금 1200억 원을 들여 도계에 캠퍼스가 설립되었지만, 이 캠퍼스는 해발 약 893m의 육백산 정상 부근에 자리 잡아 국내 최고(高)의 대학의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열악한 접근성을 자랑한다.


가파른 산자락에 위치하여, 폭설이 발생하면 학생들은 캠퍼스에 정말로 고립된다. 학교의 출입 통로가 하나뿐이고 시내와 거리가 10km 떨어져 있어 도보로 3시간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걸어서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처럼 지형적 제약이 캠퍼스의 물리적 단절을 초래하는 동안 도계의 지역소멸 위험은 점점 실체가 되었다. 초기에 기대한 “대학가”가 형성되기는커녕 인구는 1만 명보다 적어졌다. 이마저도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20대, 즉 대학 학생들 덕분에 유지된 숫자일 수도 있다.


도계가 대학가로 기능하지 못하는 핵심 요인은 공간 구조와 생활 인프라의 분절이다. 대학 캠퍼스가 산등성이 위에 떠 있고 학생들은 주로 기숙사에 거주하며 밖으로 흩어진다. 캠퍼스와 읍내 상점가 사이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면서 학생들의 소비 활동이나 문화 활동은 읍 중심부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주민들과 학생 사이에는 ‘여기는 잠깐 있는 곳’과 ‘여기가 삶의 터전’ 간의 거리감이 남는다. 도계는 ‘생활의 도시’가 아니라 ‘통학의 경유지’로 기능한다.


이에 도계 캠퍼스가 도시 활성화의 동력이 되려면 대학이 지역과 상호작용하며 ‘대학 중심 도시’로 기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대학도시” 구상을 추진하며 시내에 오픈캠퍼스를 조성하여 지역경제와의 융합을 높이려고 한다. 다만, 이러한 구상은 토지이용, 교통 접근성, 재정지원, 제도적 뒷받침 등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그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느낀 점을 덧붙이자면—아직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가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대학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학생들의 삶을 좌우하고 더 나아가 지역 애착에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신촌, 홍대 등 서울 대학들이 밀집된 대학촌부터, 내가 재학 중인 고등학교가 위치한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운동 때문에 자주 방문한 용인대, 그리고 강원대 도계캠퍼스 등.


서울, 용인, 강원도의 대학가는 모두 다른 모습을 띠었다. 학령인구감소의 시대 속에서 대학교와 대학가는 어떻게 변화되고 활용되어야 할지도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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